새로운 형태의 유대감
100kg를 한 번에 들 수는 없지만 50kg 두번 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33.3kg씩 세번 드는 것은 쉽다.
육아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조부모와 남편, 엄마, 모두 다 함께 육아를 하게 되면 육아의 난이도는 매우 낮아지는 것 같다. 어쩌면 옛날 시대, 대가족 시절에는 그런 점에서 육아의 어려움을 극복 하였던 것 같다. 대가족이 부러운 부분이다.
삼촌, 이모, 조부모 모두 가까운 곳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있는데, 마침 자매간에 아이들 나이도 비슷하여
사촌들끼리 함께 육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조부모도 함께 모여 같이 아이를 키운다고 하는데, 한 편으로는 그 역시 하나의 성공의 형태인듯 싶다.
학위, 직장, 건강 등에 대해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형태의 성공과 달리, 이러한 가족 공동체 형태의 성공은 아직 널리 인정받지 못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형태의 성공이 아닐까.
물론 쉽지 않다. 고부갈등 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 갈등도 일반적이다. 형제자매갈등 혹은 관계의 소원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고등학교 동창들을 오랫만에 만나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우리 중에는 이미 형제간에 10년간 서로 연락 안해 사람도 있었다. 작은 서운함으로 비롯하여 10년간 서로 연락을 안하였다고. 놀라운 점은, 이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중심이고
항상 크리스마스나 새해때 먼저 연락을 주는 친구 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구성원 중 이민을 가거나, 직업상 이유로 오래 해외생활을 하다보면 더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어디에 책임 소재가 있다기 보다, 그냥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큰 부러움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부분이 육아를 시작하며 더 크게 와닿았다. 단순히 육아의 난이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더 다양한 인간관계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형, 누나, 동생, 삼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유대를 쌓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내가 노력해도 내가 망고에게 되어 줄 수 있는 형태는 제한적이다. 내가 노력해도 "아빠한테 혼났을 때 전화하면 같이 짜장면 먹으면서 하하 웃을 수 있는 이모"가 될 수는 없다. 신체 사이즈가 비슷해서 더 공감이 가고 소속감을 느끼며, 더 공감하면서 이것저것 알려 줄 수 있는 형도 될 수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르쳐달라고 하고 따라주는 동생이 될 수도 없다.
이러한 부분을 최대한 채워주기 노력하는 찰리에게 많이 감사한 마음이다. 망고에게도 이러한 소중함에 대해서 더 잘 알려주고, 망고가 그러한 관계를 잘 구축해나갈 수 있도록 나 스스로도 많이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