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기억하진 못한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본인들이 뼈저리게 느끼셨던 조언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셨을 것이다.
나를 스쳐간 수 십 명의 선생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틈틈이 건네주셨던 조언들도 분명 차고 넘칠 텐데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삶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절실하지도 않았고, 간절하지도 않았고, 흥미롭지도 않았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래만은 잊히지 않았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처음 들었던 것 같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마음속에서 곱씹는다. 어느새 그것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질문이 되어 있었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한 글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어릴 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가사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또렷해진다. 내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노래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이런 것들에 과연 우리들의 행복이 있을까."
나는 꽤 괜찮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기업, 억대 연봉, MBA 졸업, 결혼, 예쁜 딸. 그런데도 문득문득 생각했다.
“왜 앞이 이토록 캄캄하지?”
매일 마주하는 회사 동료들과의 대화는 뻔한 주제들이 쳇바퀴 도는 것처럼 여겨졌다. 맛집, 신상카페, 새로 온 능력 없는 임원, 주식, 부동산, 아이 학원.
강남, 분당, 대치동 같은 지명들이 주는 정보의 무게와 상관없이,
그런 이야기에 점점 흥미를 잃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신해철의 그 노래를 마음에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단 걸.
‘나에게 쓰는 편지’는 누가 쓴 노래가 아니라,
내가 평생 스스로에게 건네고 있는 이야기였다는 걸.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이 한 줄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답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주변 지인들을 보면 주눅이 들기도 한다. 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 입지 좋은 곳에 분양을 받았다며 으쓱해하는 사람들. 대치동으로, 분당으로 아이들 셔틀을 해주는 게 힘들다면서도 뿌듯해하는 사람들. 그럴 때면 내가 지금껏 이룬 게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회사는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 노래를 되뇐다.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작게 읊조리며, 오늘도 나는 나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