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고전은 헤르만 헤세였다. 꾸준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은 고전 역시 그의 작품들이었다. 왜 하필 헤세였을까 라는 질문이 간혹 고개를 든다.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책들을 쓰면서 내 삶을 살았고, 내 삶을 살면서 내 책들을 썼다.”
헤세 스스로 말했듯, 그의 모든 창작의 본질은 자아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이 작품들에 담긴 세계는 모두 그 자신을 향한 질문과 응답의 기록이었다. 데미안에서 에밀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 내면의 어둠까지도 인정하며 자기 자신을 향해 나아간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말처럼, 헤세의 자아 탐구는 단순한 성찰이 아니라 낡은 세계를 깨고 나오는 고통스러운 탄생에 가까웠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기대에 부응하며 우등생으로 살아가던 한스 기벤라트가, 결국 외부의 기준과 자신 사이에서 찢겨나간다. 그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잘 사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자신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이 작품은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채 타인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비극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싯다르타에서는 내면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주인공이 결국 깨닫는다. 진리는 외부의 스승이나 가르침이 아닌, 자기 안의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그 여정은 외롭고도 길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곧 ‘자신으로 가는 길’이 된다.
그의 소설에는 나의 10대, 20대, 30와 40대, 그 시절마다 뱉어내지 못하고 홀로 삼켰던 그 어떤 답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헤세는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과거의 어떤 일, 그 일이 벌어진 공간, 계절, 냄새,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 그 모든 기억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들여다보고, 곱씹어보았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의 생각은 바깥을 향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만 맴돌고, 스스로를 되비추기만 한다. 덕분에 남과의 경쟁에 매몰되거나 남들이 사는 삶을 무작정 쫓다가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헤매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가슴 안에 갇혀 있다는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나를 자꾸 돌아보는 내가 어느 순간 안쓰럽게 느껴졌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세상 속에서 살아갈수록 나는 오히려 내 안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 안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같은 생각만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아감 없이, 변화 없이, 같은 것만 끝없이 되풀이하는 삶. 나는 지금 그런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헤세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자아를 탐구했을까. 그것은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그를 그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헤세라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리고 끝내 그는, 어떤 명확한 답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건 아니었을까.
나 역시 언젠가 그처럼, 답을 찾기보다는 묻는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헤세는 엄격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의 기대와 억압 속에서 일찍부터 자신을 잃어갔다.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가고 싶어 했던 그는 열네 살에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 요양원에 들어갔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 앞에서, 그는 늘 스스로를 부적합한 존재로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삶은 그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첫 아내의 정신 질환, 가족의 해체, 아들의 트라우마, 그리고 전쟁 속에서의 고립. 그는 조국에서 배신자로 몰렸고, 작가로서의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헤세는 쓰러질 듯 무너졌지만, 그렇게 주저앉지 않았다.
“내 모든 작품은 자서전이다.”
그는 아팠고, 썼고, 그로 인해 살아냈다. 그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언어로 바꾸었다.
헤세는 스위스의 고요한 산속에서 걷고, 정원을 가꾸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았다. 그는 융 심리학자들과 만나 상담을 받았고,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며 내면의 균형을 되찾으려 했다.
그는 삶이 고통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과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모든 글은 상처의 흔적이자, 치유의 지도였다.
그는 끝없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것이다. 홀로 산책하고 자연을 바라보고, 그리고 썼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의 곁에 있던 그 아픔들이 찬찬히 사그라들지 않았을까
나는 밖으로 뻗는 삶을 꿈꿨는데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내 안으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수록 그 힘이 자연스레 밖을 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