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기억들

by Erasmus Kim

어떤 기억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은 채,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머문다. 말끔히 지워지지도, 또렷이 되살아나지도 않은 채로. 그런 상태로 평생을, 누군가의 삶 곁을 떠돌기도 한다. 해소되지 않은 채로.

반면 어떤 기억은, 포기하지 않고 조심스레 바라보면 비로소 그 윤곽을 드러낸다. 흐릿했던 장면들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고,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조용히 깨어난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우리 가족은 아빠와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다. 아빠는 고향에서 혼자 공무원 생활을 하셨고, 엄마는 형의 교육을 위해 강남 8 학군 인근 반포로 이사를 결심했다. 서울살이의 이유는 분명했다. 형의 성공.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한 엄마의 단호함.

서울에서의 다섯 해는 흐릿하지만, 외로움의 그림자만큼은 또렷하다. 집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엄마는 형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늦은 밤까지 가게에서 일하셨고, 나는 주로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주말이면 아빠가 올라오셨지만, 기다림이 반갑기만 하진 않았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그 소리는 늘 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그 공기의 결을 기억한다. 낮게 깔린 긴장감, 자칫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말릴 수 없고, 그렇다고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는 애매한 거리. 나는 늘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말없이 숨을 죽였다. 눈치라는 감각을 처음 배운 시간이었다.

형을 위한 이사였지만, 나 역시 자연스레 반포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하지만 내 교육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다니는 주산, 태권도, 피아노 학원을 따라다녔지만 금세 흥미를 잃었고,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집에 아이템플 학습지가 쌓여 있었지만, 풀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놀이는 여전히 시골에서 하던 방식이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할 친구들도 있었지만 해 질 녘이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친구들이 돌아간 뒤엔 아파트 벽에 공을 던지고 뛰어가서 받으며 혼자 놀았다. 나 혼자 세상을 구성하고, 혼자서 모든 역할을 연기했다. 함께 웃던 순간보다, 그 긴 저녁의 혼잣말이 더 또렷하다. 외로움은 그럴 때, 말없이 스며들었다.

학교에서는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장난을 칠 때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움츠러들었고, 점점 더 작아졌다.

방학 숙제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새 학기가 가까워질수록 밀린 숙제를 떠올리며 불안해했다. 어떻게든 과제를 내긴 했지만, 아이들이 가져온 점토, 프라모델, 그림, 화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지금도 주변을 과하게 의식하는 건, 아마 그 시절의 감정이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막연했던 과거의 한 조각을, 나는 오늘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흐릿함은 차츰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랬었구나’ 하는 작고 단단한 위안 하나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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