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찾기

by Erasmus Kim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이해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내 머릿속은 늘 질문으로 가득했다. “이건 왜 이럴까?”, “이 장면의 의미는 뭘까?”, “이 말은 나에게 무슨 뜻일까?”

이해하지 못하면 불편했고, 명확한 이유가 없으면 불안했다. 이해는 나에게 일종의 안정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된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영화라는 것을 ‘줄거리를 추적하는 게임’처럼 대했다. 이야기의 구조, 인물의 동기, 결말의 방향…

그것만 알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 여운, 표정, 숨결 같은 것들은 내 관심 밖이었다. 줄거리를 파악하면 끝났고, 그 뒤로는 더 볼 이유를 못 찾았다.

요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넷플릭스다. 다들 어떤 시리즈를 봤는지, 어느 드라마가 재밌는지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나는 조용히 웃고만 있다.

사실 나는 넷플릭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특히 외국 영화나 미드는 더 그렇다. 물론 간혹 흥미로운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영어 자막을 주의 깊게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정작 화면에 담긴 표정, 감정선, 여운은 놓쳐버리기 일쑤다. 언어를 따라가느라 마음이 놓을 자리가 없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나다운 감상 방식이었다. 느끼기보다 해석이 먼저였고, 멈춰서 보기보다 이해하려는 습관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나는 감정을 피하고 있었구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게 아니라, 느끼기 전에 해석해 버린 거였다.

불편한 감정이 찾아오면 나는 “왜 이런 기분이 들지?”라고 분석을 시작했다. 그 분석이 끝날 즈음엔, 감정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나는 ‘이해’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감쌌다. 너무 꽉 조여서, 감정이 들어설 틈도 없이.

그러던 중, 한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감정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데이터입니다.”
— 수전 데이비드, '감정이라는 무기' 중 —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지금까지, 그 데이터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나를 알려주는 것이 감정이라면, 나는 얼마나 오래 나를 외면해 온 걸까.
그래, 해석하지 말고 그냥 느껴보자. 잘 모르겠어도 괜찮다고, 아직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느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돌아왔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때로는 울컥함이었고, 어떤 날은 말도 없이 오래 남는 여운이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예전만큼 급하지 않다.
조금은 흐릿하게 살아도, 조금은 알 수 없어도, 그 안에 머무는 내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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