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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Apr 28. 2020

경쟁이 싫다며 왜 초라함을 느끼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의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가 쓴 책 중에 [RUSH 러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경쟁 혐오증’에 맞서 경쟁의 의미를 주장한다 일과 스트레스를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사람이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며, 우리는 항상 도전하고 경쟁하며 바쁘게 움직일 때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유수연의 독설






20대에는 경쟁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한명 한명의 특별한 사람들을 서열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인간화와 동의어라고 생각했다. 열정과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력서를 넣고 필기시험을 볼 때였다. 이 회사에서 내가 어떤 능력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사회공헌팀에 들어가서 바자회를 열고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겠다고 적었다’. 내 전공은 도시공학이었다. 그 회사는 봉사활동을 하는 NGO가 아니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직능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회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니 나같이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뽑아달라고 징징댄 꼴이었다.

 

그때 함께 원서를 넣은 대학원 오빠는 합격해서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다. 필기시험 중에 애국가 4절까지 쓰는 문제가 있었다. 그 오빠는 그걸 다 적고 나왔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걸 준비할 생각을 했지? 사회가 요구하는 게 이런 거였어? 참 병맛같네~ 사람을 이런 문제로 평가하는 이런 회사는 나도 싫어!'라는 마음으로 불합격에 대한 불쾌한 마음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소위 말하는 대기업, 즉 레드 오션은 스펙만을 원한다. 안정적이고 보장된 만큼 거대한 구조 안에 부품처럼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변화, 개혁 같은 단어가 일개 개인의 입에서 나오는 걸 싫어한다. 반면 영세기업, 즉 블루 오션은 불안정하지만 활발하게 움직인다. 서류 스펙보다는 하루 열다섯 시간 근무할 수 있는 패기와 열정, 도전을 원한다. 서류 점수보다는 인턴 경력, 아르바이트 경험, 공모전, 적극성이 스펙이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데 스펙이 부족하다는 사람을 만났다. 면접에서 받아만 준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얘기했단다. 헛웃음만 난다. 대기업 면접에서 내가 비록 서류 스펙은 안 되지만 열정만큼은 자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뭐하자는 건가. 

- 유수연의 독설



내가 비양심적이었던 것은 이런 것이다.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직장을 포기하기는 싫으면서 그에 맞는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불합격하고 나서는 사람 볼 줄 모른다고 평가해버렸다. 그나마 나이 38살이 되니 이런 눈이 생긴 거지 그때는 내가 비양심적인 줄도 몰랐다. 세상이 진심은 볼 줄 모른 채 경쟁구도 속에서 사람을 평가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양심은 있었던 게... 아예 그쪽 길로 나서겠다고 도전한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2년 동안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국제협력분야 NGO나 연구재단 등에 원서를 넣었다. 이제는 내가 어느 정도 스펙이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모두 불합격했다. '이봐~ 좋은 일 하는 곳이라고 하더니… 내가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도 뽑아주지도 않네. 결국 너네도 원하는 건 스펙인 거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쪽 전공을 했는지 말이야.'


철이 들었는지 알았는데 나는 끝까지 철이 안 들었던 것이다. 국제협력 NGO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영어다. 유창한 영어실력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봉사활동 다녀왔다는 그 진심 하나를 알아달라고 들이대는 꼴이라니… 이제 와서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회사를 관두고 아프리카로 갔을 때처럼 사회가 평가하는 잣대를 거부하고 내 신념대로 살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당신이 조금 부족한 삶, 즉 사회적인 만족감, 존재감, 경제적인 여유 등에 빈곤한 삶을 살아도 정신적인 자유와 나만의 가치관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스펙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시 스펙이나 노력 없이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달라는 뻔뻔스러움은 용납되지 않는다. 

- 유수연의 독설




아프리카 다녀와서 취업 준비하다고 잘 안되니 약대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대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내 친구들이지만 하나같이 참 잘 살고 있었다. 세계적인 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전문직에 합격해서 종횡무진 전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육아와 일 모두 똑부러지게 하는 친구도 있었다. 사회가 알아주는 직업 대신 자신이 선택한 학자의 길만을 걷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초라함을 느꼈다. 나는 내 신념이 맞는 줄 알았다. 경쟁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 마음이 정답이었다면 나는 초라하지 않았어야 했다. 진심으로 친구들의 삶을 축복하고 내 삶을 축복할 줄 알았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참 이중적이었다. 경쟁이 싫다면서 속으로는 그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고 있었다. 


'경쟁을 싫어한 거 맞아? 마음 속에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고 친구들과 네 자신을 계속 비교하고 있던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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