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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Feb 04. 2017

딸, 엄마, 여자 '줄리에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오라는 말은 없었는데,
그 편지가 마치 초대장 같았어요.


부족할 것 하나 없어 보였던 그녀에게 풀어야  숙제가 남겨져 있다. 그녀의 마음속 한 구석에 늘 자리 잡았던 판도라의 상자. 수십 년간 애써 모른척하면서 살아왔던 또 다른 그녀의 존재. 이 모든 것은 우연히 딸의 친구를 만나고 나서 시작됐다.



갑자기 행방불명된 딸에게 자신이 못다 한 말을 써 내려가면서 줄리에타는 현실과 과거를 오고 간다. 영화 속 내내 마치 평행선을 이루듯 그녀의 짧은 머리는 그대로지만 그녀가 마주한 상황은 180도 다르다. 자유분방하지만 때론 신중했던 어린 줄리에타, 그래서 더 거침없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줄리에타는 그저 박스에 쓰인 문구처럼 fragile, 즉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그녀가 연약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변치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의 그런 심리적 상태를 완충시켜준 건 남편 혹은 남자 친구 즉, 남자라는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보호자 혹은 지지대 역할을 해줬던 '남자'에게 역풍을 맞고도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고지순하게 자신만을 바라봐줄 거라고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외가에 갔을 때, 외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격분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하러 나간다. 여기서 줄리에타에게 남자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분신을 위한 어쩌면 하나의 수단으로 말이다. 물론 약간의 비약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어떻게 이 둘이 함께 살아나가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나올 정도로 둘의 관계가 마냥 계산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상당히 모순적인 것은 자신의 본가에 가서 또 다른 '남자' 즉,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꿰뚫게 되고 남자라는 존재에 불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추후에 그녀가 두 가지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그녀의 딸과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이다.



영화 속에서 초점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은 그녀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엄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그녀가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감금한 채로 유유자적 돌아다닌 아버지와 그의 새로운 도우미의 관계 속에서 기차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당시 혼수상태에 있었던 전부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것과 동일하게 봐야 한다. 그러나 그녀 또한 한낱 사람이다. 어머니를 대변했을 때, 줄리에타는 철저히 아버지를 배척하고 딸의 입장에서 여자인 어머니를 우선시한다. 자신이 행했던 행동은 잊은 채 말이다.



하지만, 딸 앞에서 그녀는 또다시 달라진다. 줄리에타가 관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딸과의 관계에서 딸은 집착으로만 여겨왔다. 그렇게 성인이 되던 날, 딸은 그녀를 떠나가 버린다.


그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부재를 딸에게서 찾으려고 했다고 그녀도 뒤늦게 시인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의지할 곳은 딸뿐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더 나중에 깨달은 사실은 남보다도 더 딸을 몰랐다는 것이다.



줄리에타의 조력자로 나오는 두 인물 즉, 딸과의 관계 회복에 도움을 준 이들도 여자다. 딸이 그토록 가기 싫었던 캠프에서 만난 친구, 베아트리스. 그 친구가 결정적으로 딸의 근거지 및 정보를 알려준 제공자가 되면서 동시에 줄리에타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줄리에타의 친구이자 한 때 남편과 외도했던 아바. 그럼에도 남편이 죽었을 때 가장 먼저 전화한 이다. 그런 그녀가 아픈 와중에도 마지막 유언처럼 줄리에타의 딸이 그녀를 두고 떠난 이유를 알려준다.

여기서 딸은 예전 자신의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 고기잡이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아버지를 사지에 내몬 것은 엄마라고 여긴다. 이는 물론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도우미 아줌마의 말만 듣고 생각한 것이지만, 그녀의 선택으로 우리는 감독이 신선한 결말을 초래할까 의문이 들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는 오픈 엔딩이다.


딸의 편지를 받고 줄리에타는 남자 친구와 함께 그녀를 만나러 떠나면서 끝이 난다. 약간은 코믹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아이를 잃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엄마한테 못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고 쓴다.  아무리 집착하고 힘들게 했어도 결국 마지막 종착지는 엄마?  모녀 관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하나인 셈이다.


감독과 두 줄리에타


감독의 대다수 작품 속에서 여자라는 존재는 상당히 변화무쌍했다. 하지만 '줄리에타'처럼 오로지 여성에 여성의 여성을 위한 작품은 없었다고 본다. 게다가 감독이 가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장면(영화 '내가 사는 피부')도 없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다지 감독의 작품을 즐겨보지는 않았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색감, 스토리 및 출연진들이 좋았다.


단지 하나 아쉽다면 결말이 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감독은 우리가 지속하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 늘 새롭지만 동시에 오래 지속될수록 그들의 소중함을 잃기 마련임을 상당히 고차원적으로 표현해냈다고 본다. 엄마와 딸이라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보편적이면서 당연시 여겨왔던 관계를 한 번 조각내면서 그 둘의 관계 회복 과정을 통해 줄리에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개봉한 지 오래됐음에도 꿋꿋하게 리뷰를 쓴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2016년도 최애 작품이기 때문이다. 비록 '라라랜드'도 좋았으나, 우리가 흔히 찾아볼 수 없었던 여자라는 주제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단순히 영화가 다룰 수 있는 꿈, 희망, 그리고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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