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드라마의 사고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무의식적으로 도로를 달리다,
신호에 맞춰 차가 잠깐 멈춰 섰다.
분명 앞에 멈춰 섰던 차는 다른 색, 다른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속도를 줄이고 차가 멈추기 전까지
어느새 다른 차 한 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무심결에 앞 차를 보다
후미 창에 붙어있는 스티커 하나가 내 눈에
강력하게 꽂혔다.
'위급상황 시 아이부터 구해주세요.
여아 B+'
갑자기 목구멍이 답답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있을 여아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고들.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내 아이만은 살려달라는 울부짖음.
아이를 향한 부부의 간절함.
119 구급대원이 이 스티커를 목격하고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부터 구해낸다.
부부는 차량 밖으로 안전하게 대피되는 아이를 보면서
스티커를 붙었던 그날을 회상할 것이다.
신혼부부에게 축복처럼 아이가 생겼고,
두 사람은 사랑으로 배 속에 아이를 열 달 동안 지켜내 세상과 만나게 했다.
부부는 아이와의 편안한 이동수단을 위해
SUV를 장만하고,
아동용 카시트를 부착하는 날, 덜컥 겁이 났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런데도 위급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 아이만은 지켜내고 싶은 부부는
고심 끝에 고르고 골라
이 스티커를 구입하고,
타인에게 잘 보일 수 있게
고심해서 붙였고,
그 일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 그 순간 안도했을 것이다.
운전하다 보면, 식은땀을 흘릴 때가 종종 있다.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듯 위험천만하게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부부도 그런 위험을 즐기는 이들에 호되게 당해봤기에
우리만 안전 운전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면,
제발... 제 아이만은.....
머릿속 상영관에 엔딩 크레디트가 채 올라가기도 전에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머쓱하게 내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가을이니 감정이 풍부해진 것인 게다
스스로를 정상 범주로 옮겨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3차선 도로에서 직진하니 사거리가 나오고,
좌회전을 했더니 2차선이 나오고,
직진했더니 속도위반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그것도 60!
오늘따라 이 도로 위, 차들은 왜 이리 급브레이크를 밟아대는지.
목을 빼고 이리저리 도로 위를 보니
한 대의 차량이 차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일명 칼치기 묘기를 펼친다.
왜?
어차피 그렇게 한들
자유로가 아닌 이상,
도시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신호에 걸려 가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 시간이 달라지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묘기를 펼친다.
속도위반 카메라까지 무시하며.
도로 위에 오늘따라 같은 회사, 흰색 차량이 즐비하게 놓여있어
헷갈릴 뻔도 한데,
그 불법을 자행하는 차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위급상황 시 아이부터 구해주세요.
여아 B+'
분명, 차 안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스티커를 붙이고, 오히려 타인을 위험하게 만드는가?
운전하다 보면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붙여놓은 차들이
더 험악하게 운전을 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아이가 타지 않고 있으면 질주본능이 깨어나는 건가?
적어도,
자신이 보려고 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붙인 스티커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자가 운전석에 오르기 전에 심신의 안정을 찾길 바랄 뿐이다.
가끔 화가 치밀면 다른 때보다 운전 습관이 과격해지는 사람.
가슴에 손을 얹고 혹여 나도 그런 사람이라면
제발
그때는 운전대를 내려놓기를.
나는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자만을 영원히 내려놓기를.
순식간에 그 차량은 사라지고 없었다.
무탈하기를.
그도 그와 같은 도로 위에 있는 모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