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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Jan 22. 2021

엄마가 엄마를 퇴직했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워킹맘은 '맘'이라는 엄마를 포함하는 데도 불구하고,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야 하는 '엄마'와는 엄연히 다른 인물을 지칭했다. 다시 말해,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는 매일 집 청소와 식사를 도맡아 하거나 준비물 챙기기를 도와주는  '엄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끄럽지만 자식인데도 유난히 엄마에게만 육아와 가사를 모두 떠넘기는 건 매한가지였고, 때문에 일상에서 대부분 불평불만은 엄마를 향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늘 20분 일찍 서둘러 김밥집에 갔다. 은박지에 싸인 김밥 두 줄과 슈퍼에서 생수 하나를 사서 검은 봉지에 넣으면 소풍 도시락 준비가 끝났다. 친구들은 잡곡밥이 들어간 김밥이나 다진 야채가 골고루 섞인 유부초밥을 싸왔고, 전날 얼린 보리차 얼음물에 손수건까지 돌돌 말아왔다. 볼품없는 도시락에 위축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너네 엄마 대단하시다!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전혀 못하는데!" 라며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그래도 내심 친구들이 부러웠는지,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친구들 도시락을 일일이 묘사하며 검은 봉지 도시락과 비교를 했다. 호탕한 성격을 물려준 우리 엄마는 "엄마가 바빠서 그렇지~ 미안해! 그래도 맛있는 친구들 도시락 많이 뺏어먹었지?"라며 애교 섞인 미안함을 내비쳤다.


도시락뿐이겠는가. 빨래통에서 숙성된 체육복을 꺼내 입은 날, 지저분한 집이 창피해 친구를 데려오지 못했던 날, 며칠 저녁을 라면으로 때운 날에도 모두 엄마 탓을 하며 투정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고 엄마 잘못이 전혀 아닌 일들에도 엄마는 애교 섞인 사과를 했다. 사실 크게 속상하거나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도, 어린 마음에 그렇게라도 바쁜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투정을 부릴 때마다 돌아오는 엄마의 애교 섞인 미안함과, 그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나 보다.


그렇게 바쁘기만 했던 엄마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으며, 일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참에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신나게 놀겠다는 그녀를 서울에 초대했다. 학생 때보단 금전적인 여유도 생겼고, 나름 알게 된 서울의 명소를 소개하며 그녀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작은 동네에서 일만 했던 그녀에게 밴드에 올릴 자랑거리를 만들어주고자 다짐하고, 5성급 호텔 뷔페, 청담동 오마카세 예약, 운치 좋은 레스토랑 따위를 계획했으나..  코로나 3차 대유행이 발발했다.


"엄마 다음에 온나. 나도 연말이라 회사 일도 많고, 재택 하다 보면 집에만 있어서 어디 가지도 몬한다."


"그러면 니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겠네. 집에 반찬도 없제? 니 바쁘니까 내가 가서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줄게."


"됐다. 기차나 버스 타는 것도 위험하고, 내 밥은 배달시키면 되는데 뭐."


"괜찮다! 마스크 단디하고 가면 된다. 찝찝하면 차 운전해서 가면 되지. 니 일하는데 방해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거라."


"내 어릴 때 엄마 필요할 때는 잘 챙겨주지도 않았으면서, 다 크니까 그라노 괜찮다니까." 걱정을 하는데도 서울에 오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엄마에게 괜히 입이 삐죽나와 볼멘소리를 했다. 걱정은 무시하고 그녀는 홀로 4시간을 운전해서 서울에 왔다.


하지만 미친 듯이 바쁜 연말, 생각보다 일이 너무 휘몰아쳐서 주말까지 반납해야 했다. 외출은커녕, 좁은 동네에서 온 그녀는 넓은 서울에 와서도 좁은 자취방에 내리 갇혀있었다. 그녀는 재택근무에 행여 방해될까, 볼륨을 한참 낮추고 티브이를 본다든지,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들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와중에 밥시간이 되면 밥상을 뚝딱 차려주고, 입이 심심할 때쯤엔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챙겨줬다. 그렇게 바람직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주일, 괜히 일에 방해되는 것 같다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녀가 돌아가는 날. 휴가를 냈는데 회사에서 비상상황이 생겨 휴가를 토해내야 했다. 전화와 온라인 미팅이 번갈아 계속됐고 말 그대로 엉덩이를 한시도 떼지 못했던 상황. 나설 채비를 마친 그녀가 방문을 살짝 열더니 입모양으로 “엄마 갈게. 다음엔 제대로 놀자.”라며 손을 흔들었다. 통화를 하다가 “엄마, 미안”이라고 입만 벙긋했다.


한 4시간 지났을까.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물 한잔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안이 가득 차서 냉장고가 미지근한 지경이었다. 각종 밑반찬을 비롯한 과일과 생전 보지도 못했던 간식거리는 기본이요, 냉동실에는 녹여서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국거리와 고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집을 둘러보니 방에서 일하는 동안 뚝딱뚝딱 할 수 있는 집안일은 다 한 듯했다. 화장실에 휴지걸이가 떨어졌었는데 그것까지 어느새 새로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 도착했나? 뭐 그렇게 음식을 많이 해놓고 갔노. 좀 있으면 재택도 끝나는데"


"집에 있을 때라도 제대로 챙겨 먹어야지. 맥주도 그냥 먹지 말고 안주거리 사놨으니까 같이 먹어레이, 알았제? 속 버릴라."


"그러게 오지마라니까. 서울 오면 내가 좋은 데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사줄라고 했는데 이게 뭐고. 이제 좀 쉴라 했을 건데 장거리 운전만 하고 집안일만 다하고."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든데? 이번에 니 많이 챙겨줘서 뿌듯하다. 이제 엄마가 어릴 때 못 챙겨줬던 거 다 챙겨주면 되겠다. 자주 올게. 니 이제 옛날에 내가 못 챙겨준 얘기 못할끼다!"


씩씩한 그녀는 그렇게 서울에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4시간을 운전해서 다시 좁은 동네로 내려갔다.


왜 그녀는 반백살이 훨씬 넘어, 어릴 적 내가 바랐던 '엄마'가 이제야 되려는 걸까.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 시절에 여자로서,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얼마나 힘들게 밖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린 나는 우리 엄마가 '엄마'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자식과 생계를 위해 전장에 뛰어든 우리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엄마'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라도 그녀가 본인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서울에 와서 재밌게 놀기만 했으면 좋겠다.


본인 인생보다 엄마라는 직책을 달고 계속 살아온 그녀가 이젠 그 직책을 놓았으면 좋겠다.


자식은 서울에서 혼자 잘 먹고 잘 산다며, 이젠 그녀 삶을 살라하지만, 아직 볼멘소리나 하는 철 안 든 자식을 보는 엄마에겐 아직 퇴직할 때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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