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울싸람 Feb 19. 2021

어김없이 이별을 했고, 어김없이 동교동삼거리로 향한다.

이별의 패턴


이별을 했다.


연인과의 이별이 반복될수록 일정한 패턴을 발견한다.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갖고, 그 호감을 얼마나 표출할지 고민하고, 연인 관계로의 발전을 합의할 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자식이라면, 연애 초반엔 눈에 넣을 자식은 이 사람과 함께 했을 때 탄생할 것 같다. 모든 미래에는 그녀 혹은 그가 포함되며 연인은 그 무엇보다 1순위에 자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순위권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 희미한 경계선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연인과 함께하는 미래를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이 사람이 내 마지막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그 확신 없음을 들키며 신뢰와 관계는 무너진다.


이 패턴에 익숙해져서일까. 점점 절절한 헤어짐이 드물어간다. 이번도 그랬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로 각자의 감정과 입장을 평소보다 진솔하게 공유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서로의 접점이 없다고 판단하는, 철저히 이성적인 사고를 거쳤고, 그렇게 만남처럼 이별에도 합의했다. 돌이켜보면 그날따라 흔하게 먹던 술 한잔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냉정한 판단이 가능했을지도. (평소처럼 편의점의 싸구려 와인이라도 마셨다면, 그래서 조금 더 감정적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면, 그 관계가 끝나지 않았을까?)


이별 패턴을 발견했다 해도 슬픔과 공허함은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20대 초반처럼 재회만 한다면 어떤 것도 바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관계가 끝나야 하는 이유를 짚어봤고, 이를 상대와 함께하는 공기를 통해 느꼈기에, 이별을 받아들이고 재회를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곱씹는 능력이 향상했다.




어김없이 이별을 했고, 어김없이 동교동삼거리로 향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별은 힘들다. 덤덤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듯해도 이성이 절대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은 혼자를 무너뜨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후유증에 대처하고 싶을 때면 동교동삼거리로 향한다. '연인'이라는 단어는 우선순위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을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말이다.


상경 후 처음으로 마련했던 보금자리는 고시텔이었다. 보증금도 없었을 당시 자본을 모으기까지 최적의 선택지 었다. 방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다녀올만한 여유는 없었고, '홍대입구역 고시텔'이라는 단어로 인터넷 검색 후 전화로 계약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방 사진들을 보니 가격에 비해 방이 깨끗했고 커 보였다. 무엇보다도 계란, 김치, 라면, 밥을 공짜로 준다니! 첫 자취에 들뜬 촌놈을 꼬시기에 그보다 더한 옵션은 없었다. 그렇게 동교동 삼거리에 위치한 고시텔은 생에 첫 번째 자취방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분명히 홍대입구역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다. 지하철역 하나에 뭔 놈의 출구는 이렇게 많고 그마다 거리가 먼지 원.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약 1시간을 헤맨 후 겨우 고시텔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기쁨도 잠시. 사진으로 보던 넓고 깨끗한 방은 없고, 겨우 몸을 뉠 수 있는 작은 매트리스와 낡은 방이 반겼다. 포토샵이 방 크기까지 넓힐 수 있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더군다나 고시텔이 모텔 정도의 준비된 숙소로 생각했던 촌놈은 캐리어에 속옷과 옷가지만 대충 챙겨갔었는데, 퀴퀴한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고 뒤늦게 이불과 베개를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시텔을 선택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인 공짜로 준다는 계란은 어떤가. 사람들이 후라이를 해 먹을 때마다 그 냄새가 마치 디퓨저처럼 중앙관리 에어컨 바람과 섞여 들어온 방을 가득 채웠다. 후라이 향에 취해 지저분한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청했던 그날 밤, '빨리 이 방을 벗어나야지'라는 의지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이별에 의한 질책과 피해의식이 극에 달할 때 동교동 삼거리로 향하는 이유는 그 의지를 되살리기 위함이다. 공허함과 슬픔에 쏠렸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고시텔에 있는 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고, 겨울엔 2만 원짜리 열선 매트를 깔고 패딩을 입고 자던 당시를 떠올린다. 동시에 현재는 작은 전세방이지만 보일러를 맘껏 틀 수 있는, 이런 삶을 꾸린 본인을 자랑스럽게 느낀다. 그러다 보면 삶의 원동력은 나 자신에게 있다며, 나는 이 이별에도 거뜬하다고 다짐하면 이별의 쓴맛을 억제할 수 있다.


그 사람과 그려왔던 핑크빛 미래는 어차피 허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작은 고시텔 방에 누워서 되새겼던 나은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워야 한다. 동교동삼거리에 가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플랫폼처럼 순식간에 연인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간다. 다시금 '나'의 존재의 이유라든지 삶의 목적 따위의 사고의 흐름도 동시에 경험한다.


오늘 동교동삼거리를 지나기 위해 신촌역에 내렸다. 이별 후 잡생각이 많을 때면 신촌역에서 합정역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오랜만에 그 길을 되밟았다. 이별 명곡들을 재생 리스트에 가득 채우고 찬바람을 맞으며 걷다, 어김없이 동교동삼거리 고시텔 건물 앞에 섰다. 잠시 벤치에 앉아 다른 생각에 빠지려고 노력했다만, 계획과 달리 오늘은 존재의 이유처럼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진 못했다.


그저 그런, 이별에 허덕이는, 자격지심에 가득 찬, 찌질한 분노와 원망이 깃든,

당신을 만났을 때 아주 잠깐 당신이 내 삶의 목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멋진 미래를 그리기 위해 이제까지의 풍파가 존재했다고 안심했다. 삶의 여정이라는 게 있다면 종착지는 당신일 거라는 진부하고도 특별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역시나, 이제까지의 이별 패턴과 마찬가지로, 당신과는 남이 되었고, 다시 고시텔에 왔던 혼자가 되었다. 당신을 모르던 시절의, 동교동삼거리의 작은 침대에서 패딩을 입고 자던, 그저 자립과 성공이 전부인 혼자.


당신도 어서 빨리 패턴과 데이터의 하나로 남기를. 추억도 아닌 과거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어쨌든 당신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건, 내가 여기에 섰을 때 밝혀졌으니까.

뭐 이러한, 이 글에서 풍기는, 초월한 척하지만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저차원적인 생각들 밖에.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엄마를 퇴직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