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던데요?

by 김한슬



“그냥 이유 없이 싫던데요?“

오늘도 나는 바다에 잠긴다. 두 달이 지났다. 사직서를 내던 그날 이후부터 난 이 작은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문을 닫고 불을 끄면 이곳은 바다가 된다. 차가운 물이 목덜미까지 차오르며 숨을 쉬는 방법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처음에는 그냥 휴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쉬면 이 마음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방은 점점 깊어져만 갔고 어느새 발이 닿지 않는다. 누군가가 뱉은 말 한마디가 지나가는 까만 그림자 하나가 파도로 변해 나를 덮치고야 만다.

탕비실 앞에서 들리던 비릿한 비웃음과 나를 슬쩍이 통과하던 그 눈빛. 그 모든 것들이 짠물처럼 내 안에 남아 아직도 쓰라린다. 쾌쾌한 냄새가 잔뜩 흘러나오는 네모 한 작은 공간에서 힘이 빠져 허우적대는 무릎을 두 팔로 단단히 끌어안아 잔뜩 젖어버린 얼굴을 닦아냈던 그날의 내가 떠오르곤 한다. 그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보려 하지 않았다. 아니. 과연 아무도 몰랐을까. 그저 조용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공기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낸 용기는 종이 한 장이었다. 그렇게 쉬울 줄 알았다면 흉터 위에 계속해서 상처를 내지 못했을 텐데. 이 방은 안전하다. 안전할 것이다. 문을 열면 다시 현실이겠지만 말이다. 그 현실은 여전히 나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먼지 섞인 햇살에 궁금해지기도 한다. 혹시 이 바다에도 끝이 존재할까. 그렇게 오늘도 천천히 가라앉고야 만다.

억겁의 시간 끝에 받은 합격 통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핸드폰 화면 위로 보이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스크린샷으로 저장해두고 밤새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가족 단톡방에 합격 소식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기쁨의 술도 마셨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던 옷들을 큰 마음먹고 결제하기도 했고 친구들의 손을 보며 부럽기만 했던 네일아트를 하기도 했다. 드디어 사회에 나간다는 설렘. 그런 벅참이 온몸을 헤집어 놓았다.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찬 팔 하나도 내 마음대로 펼 수 없는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이고 핸드폰을 꺼내 회사 주소를 확인하고 첫인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참을 머릿속에서 반복해 보기도 했다.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뜨거움이 가득 찬 날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적응을 잘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편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태도를 되짚어 보고 고친 부분을 거울 앞에서 연습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며 더 조심스럽게, 더 낮은 자세로 굴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에 발 벗고 나서 늦게까지 남아 업무를 보고 눈치를 살피며 재밌지도 않은 농담에 억지웃음을 보탰다. 지워지지 않는 기척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깎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툭 떨어진 가벼운 말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섞여 나온 그 말 끝에는 짧은 웃음과 상처가 붙어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모든 의문이 한데 섞여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이유가 없는 마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선언. 변명의 의지가 없는 배제. 하루하루가 고문을 받는 것처럼 아프고 끝나지 않는 지옥이었다. 사람의 얼굴이 구별이 가지 않았다. 세상과 처음으로 부딪힌 순간. 하지만 세상은 이토록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새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길거리를 지날 때 들려오는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끔은 위협으로, 가끔은 상처로 느껴졌다. 그냥 이유 없이. 식은땀으로 차갑게 젖어버린 등 뒤로 들려올까 봐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다.

바닷물이 넘실거리며 차오르며 눅눅해진 공기가 싫었다. 그저 답답해서 걷던 길 끝에 작은 분수가 보였다. 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물줄기가 하늘로 높이 솟았다. 따뜻한 햇살을 잔뜩 머금은 물방울들이 허공에서 찬란하게 터졌다. 그저 물이 오르고 떨어지는 단순한 반복 현상이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그걸 보니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분수를 보고 나와 속이 허해진듯한 기분에 눈앞에 보이는 작은 분식집에 들어섰다. 괜한 어색함에 쭈뼛거리며 계산하고 받은 떡볶이 그릇 위로 주문하지도 않은 바삭한 김말이 하나가 올라와 떡볶이 국물에 스며들어갔다. “서비스예요.” 통통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향하는데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를 마주했다. 땀이 잔뜩 난 두 손을 바지에 슬쩍 닦으며 감사하다는 인사와 황급히 사라지려는데 “고마워요. 오늘 하루 행복하길 바래요.” 작고 우연한 말이 들려왔다. 의도도 깊은 뜻도 없는 말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사소한 말이 ”그냥 이유 없이“라는 말보다 훨씬 힘이 있게 느껴졌다. 해치지 않는 다정한 눈빛과 그저 지나치지 않는 손길. 그렇게 아주 조금씩 나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고 다시 믿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실패한 삶을 살지 않았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부족했던 것은 없었다. 누군가의 감정 속에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던 것뿐이다. 방은 여전히 바닷물이 차있지만 예전처럼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깊이가 아니다.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분수는 오늘도 같은 시간에 물을 뿜고 있을 것이다. 김말이 튀김 하나와 할머니의 인사는 아마 다시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내 마음 한 편에 천천히 말라가던 눈물 자국 위로 작은 햇빛처럼 스며들었다. 이제 조금은 믿어보려고 한다.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아무 이유 없이 무너졌지만 이유 있는 회복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파도 속에서 잠기지 않고 떠오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