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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Jun 25. 2023

야구 직관과 수련회의 공통점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6: 광주 이틀차

2023년 6월 18일(일)


수다 떨다 늦게 잤건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의 응원 여파 때문인지, 삭신이 쑤셨다. 급한대로 호텔 침대 위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Y도 금세 일어났다.


호텔 조식 대신에 주변에서 크로아상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정도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열심히 검색했건만, 오전 8시에도 여는 카페는 없었다. 지역에서 일찍 여는 카페란 대개 스타벅스 밖에 없다. 여기까지 와서 스타벅스냐 싶지만, 실패가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땀이 덕지 덕지 묻은 어제의 유니폼을 스타일러에 돌려 놓고, 5분 거리의 '스타벅스 광주상무DT점'으로 향했다.


카페에서는 각각 파스트라미 햄 & 치즈 샌드위치와 아이스 카페라떼 그란데 사이즈를 시켜 먹었다. 분명 마음은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크로아상이었는데, 막상 스벅에 도착하니 크로아상은 크로아상 주제에 4900원이나 하며 너무 비쌌고, 따뜻한 커피를 먹기에는 내 마음 속이 너무 들불이었다. 처음 먹어본 파스트라미 햄 & 치즈 샌드위치에는 적양배추로 만든 사우어 크라우트가 잔뜩 올라갔는데, 느끼한 햄과 치즈와 맞닥뜨려 제법 개운했다. 커피는 Y가 샀다. Y와 나는 커피 취향이 똑같은데(둘다 라떼파다) 그 맛있는 아이스 라떼를 그란데 사이즈로 먹으니 한껏 기분이 올라갔다.


부른 배를 안고는 산책을 했다. 도보 10분 거리에 5.18 기념공원이 있었다. 20만 제곱미터나 되는 공원을 다 돌아볼 여지는 없어서, 초입에 있는 무각사엘 먼저 들렀다. 무각사는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다섯 전시관 중 하나였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가 이번 비엔날레의 전체 테마였다. 5년 전, 9월 내가 출장차 방문했던 광주비엔날레가 생각났다. 나는 당시 막 문화부로 발령 받았는데, 발령 받자마자 비엔날레 측에서 참석 의사를 묻는 연락이 와서 꽤 당황했었다. 내가 미술기자를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부인에게 먼저 얘길 들은 셈이었다. 그렇게 얼레벌레, 당시 비슷한 시기 이어서 했던 부산비엔날레와 묶어서 함께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전남도청 회의실, 옛 국군광주병원, 전일빌딩 등 도심 곳곳이 모두 전시관이어서 출장 첫 날만 1만 6000보를 걸었다.


무각사 입구의 비엔날레 전시장인 '로터스 아트 스페이스'는 소담했다. 무각사에는 도합 6명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장 한 켠에 놓인 스틸 이미지 영상, 거대한 움짤 같은 작품인 다야니타 싱의 <모나와 나>가 있었다. 흡사 한 여성이 병상에 누워서 울부짖는 장면 같다고, 추측하며 가만 시선을 마주치는데 언젠가 엄마의 마지막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슬퍼졌다. 작품 설명을 찾아보니 신문사 사진기자였던 다야니타 싱은 1989년 우연히 모나 아메드를 만났고, 몇 시간에 걸쳐 촬영이 이어졌지만 젊은 트랜스젠더였던 모나는 그 사진들의 신문 게재를 거부했다. 이 우연한 만남은 평생의 관계로 이어졌고, 해당 영상은 2013년 모나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를 듣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고. 아마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심각한 장면까지는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내 눈엔 왜 그렇게 보였을까. 나는 그 눈이 참 슬프다고 생각했다.


전시장에서 나와 경내를 한 바퀴 둘러봤다. 부처님이 계신 불당에 들어가서는 절도 올렸다. 딱히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서 절 올리는 건 좋아하는 편이다. Y와 나란히 서서 10번 정도 절을 올렸다. 최근 지병을 발견한 내 고양이 해울의 안녕과 가족 모두의 건강을 빌었다. 나에 대해서는 '사는 대로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본성을 역행하지 않는 선에서. 어제 하루 종일 불이 붙었던 마음에 다소간 '쿨링'이 되는 것 편안했다. 불당을 나오며 Y는 "NC 다이노스의 승리를 기원했다"고 해서 나의 웃음을 샀다. NC에 빠진지 불과 2주차지만, Y는 나보다도 훨씬 NC에 진심이다.


숙소에 도착해 후딱 씻고,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에 맞춰 나왔다. 아직 파스트라미 햄 & 치즈와 아이스 라떼 등으로 배가 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밥 대신 카페에서 핸드폰 충전도 할 겸 한 타임 쉬어가기로 했다. 도보 15분 거리에 '에스프레소 수묵'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일요일에도 비교적 일찍 문을 여는 반가운 카페였다. 따뜻한 에스프레소가 주력 상품인듯 했지만, 급격히 달달구리가 땡겼기 때문에 친구도 나도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그라니라떼를 시켰다. 한 입 먹는 순간, 이 세상 온갖 행복이 내게로 몰려왔다.


2시간쯤 지나 점심으로는 근처 식당에서 육전을 먹기로 했다. 왜냐면 NC 유튜브에 지나가듯 출연했던 기아의 양현종이 "광주 오셔서 육전 드시면 되죠"하고 바이럴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시즌, 기회가 된다면 전국 9개 구장을 모두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 때마다 각 구단 유튜브에 올라온 선수 추천 맛집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전에 두 번 들린 광주에서, 육전은 먹어보지 못한지라 눈 앞에서 갓 부쳐준다는 육전은 꼭 먹어보고 싶었다.


육전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어르신 한 분이 길을 물어오셨다. 이 근처 쿠우쿠우를 아냐고. 지나가면서 언뜻 본듯도 했다. 도심에 쿠우쿠우야 흔한 일이니까. 네이버 지도로 찾아보니 우리가 가려던 육전집 근처라 어르신과 함께 걸었다. 내가 "어디서 오셨어요?" 했더니 어르신은 금남로 쪽에 사신다고 했다. "저희 경상도에서 왔어요~" 했더니 "그려? 내가 경상도 아가씨한테 길을 다 물어보네" 하시면서 "이쪽은 잘 몰러"하셨다. 하긴, 현대 사회에서 길은 네비나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가 다 알지. 도심에 새로 생긴 쿠우쿠우를 어르신이 아시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르신을 배웅하고 '육전 한옥'이라는 곳엘 들어갔다. 한우 아롱사태 육전 1인분과 키조개전 1인분에 곁들임 식사로 나오는 청국장과 연잎밥을 시켰다. 도라지, 연근, 오징어숙회 등 찬부터 쭉 깔렸다. 전라도는 확실히 상차림 스케일이 다르다. 경상도는 맛없다, 전라도는 맛있다 이런 일반론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기본 상차림 자체가 다른 것은 '팩트'다. 원래 식당 가서 밑반찬은 잘 안 먹는데, 이 날은 꼼꼼이도 음미해가며 집어먹었다. 남도의 음식들은 재료가 양념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게 특징인데, 나는 그게 그렇게나 좋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은 직원분이 직접 눈 앞에서 부쳐주는데, 짭쪼름하게 간이 잘 된 고기가 야들야들하니 입에 착 붙었다. 개인적으론 키조개 관자 전이 더 맛났다. 관자를 얇게 포로 떴는데, 냉동 관자에서 느껴지는 질겅질겅이 아니라 쫄깃쫄깃 야들야들이었다. Y랑 나랑 '1 모금 1 감탄'해가며 먹었다.



부른 배를 안고 다시 한 번 챔필로 향했다. 오늘은 기아 팀스토어에 가보기 위해 어제보다도 더 일찍 채비를 서둘렀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인 오후 2시, 챔필에 도착했다. 설마 줄서서 들어갈까 걱정했지만 팀 스토어는 비교적 한산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올 시즌 아이앱스튜디오가 기아의 유니폼 및 의류 제작을 맡아 기대가 된 참이었다. 유니폼도 선수용 아이싱 티, 후드, 반팔티 기타 등등이 탐이 나서 눈이 돌아갔는데 그런 나를 Y가 적개심에 불타는 눈으로 쳐다봤다. 어찌 감히 적군의 옷을 사려느냐는 듯. 최형우의 최다 2루타 기념 티셔츠와 레드 바탕에 심플하게 기아 로고만 달려 있는 티셔츠 둘 중 고민하다 최형우 티셔츠는 일상에서 입기엔 좀 과할 거 같아 '심플 이즈 더 베스트'만 데려왔다.


팀스토어 구경을 마치곤 다시 주차장 앞에 섰다. NC 선수들 출근길을 기다리기 위해서. 이날은 전날과 달리 햇빛이 더욱 노골적이어서 정수리가 타들어가는 듯 했고, 그래서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전날보다 적었다. 대강 투수들 버스인 3호차가 설 법한 자리, 버스 출입구 바로 앞 정도 될 것 같은 자리를 가늠해 자리를 잡았다. 어제 못 받은 이용찬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펜스에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걸고 서 있는데, 이 나이에… 이럴 일일까… 싶은 온갖 회한이 밀려 왔다. 양옆으로는 모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서 있었는데, 30대 중반에 하기에는 만용이 아닌가 싶어 약간(하고도 아주 많이) 부끄러워졌다. 10m 옆에는 Y가 서 있었다. 2호차를 타는 야수 박건우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서 있는 시간 30여분이 너무 아까워서 헤드폰으로 타방송 모니터링도 할 겸 시사 라디오를 들었다. 한층 더 현타가 왔다.


낮 3시, 뙤약볕에 밀려오는 현타...


3시쯤 됐을까 이윽고 버스가 왔다. 창문 너머로 맨 앞자리에 앉은 그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고, 뚜벅뚜벅 내 쪽으로 걸어왔다. 말없이 내가 건넨 마카를 쥐더니 유니폼에 슥슥 사인을 했다. "'슬기'도 적어주세요." 놓치지 않고 내가 얘기했고 그는 오른손으로 오른쪽 귀에 꽂힌 이어폰을 떼며 "뭐라구요?" 했다. "'슬기'도 적어주세요." 멈칫하며 그가 'TO. 슬기'를 쓰고는 유유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껏 상기돼 그 사이 박세혁 선수에게 사인을 받은 Y에게 자랑했다.


이윽고 들어간 경기장은, 용광로 그 잡채였다. 예매한 1루 내야석 앞에서 세번째줄 자리에 앉아 있다간 녹아내릴 거 같아서 야구장 처마(?) 쪽으로 자릴 피했다. 육전 덕에 배는 부른데 커피는 고파져서 라떼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챔피언스필드에는 유독 라떼 파는 곳이 귀한데(아메리카노는 곳곳에 있다) 카페를 겸하는 펍 두 군데에서 '뺀찌'를 먹고 3루쪽 2층 'HOT DOG & COFFEE'라는 곳에서 기어이 아이스 라떼를 찾았다. 한 입 쭉 했더니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광주 직관 이틀째에서야 기아 선수들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기아 선발이었던 '대투수' 양현종의 피칭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어서 기대가 됐다. 특유의 하이키킹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는데, 저 정도로 매번 발을 높이 들어올리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날 NC 선발 이용준은 제구가 흔들리며 투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때문에 실점을 먼저 한 건 양현종이었지만 보기에 위태로운 건 이용준이었다. 결국 이용준은 4실점 뒤 4회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후 강판했고, 양현종은 7이닝까지 9피안타 5탈삼진 2피홈런 4실점으로 이닝 먹방을 이어갔다. 선발 대결에서는 이용준 패였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타자의 시간이었다. 특히나 요즘 '아섭이햄'을 따라 청교도 같은 금욕의 삶을 산다는 NC 타자 서호철은 맹타를 휘둘렀다. 올 시즌 초만 해도 서호철이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었는데, 어느 순간 타석에만 들어서면 '믿고 보는' 선수가 됐다. 상대적으로 홈런이 귀한 NC인데 이 날은 5회 박건우 솔로포, 7회 김성욱 솔로포, 8회 윤형준 투런포 등 적시에 홈런포가 '쾅쾅' 터져나와 속이 시원했다. 특히나 8회 대타 윤형준이 방망이를 공에 갖다대자마자 '딱'하고 넘어갈 때의 쾌감이 엄청 났다. 대타로 나와서 '한 방'을 치는 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기아를 놓고 봐도 이날은 타자의 시간이었다. 특히나 전날 KBO리그 통산 최다 타점 타이 기록을 세워 이날 신기록에 도전하는 4번타자 최형우가 나올 때마다 기아 팬들의 환호가 엄청 났다. '오오오~' 내지는 '승리를 위해', '날려버려' 정도로 돌려막기 하는 듯한 응원가 가사들 가운데 오직 최형우의 응원가에만 '해결사'라는 튀는 가사가 들어있는 것만 봐도 기아 팬들이 그를 얼마나 끔찍히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겐 해결사지만 상대 편인 나에게 자객 같은, 그가 나올 때마다 마음 졸였다. 이날 최형우는 대기록을 앞두고 기습번트를 대서 더욱 칭송 받았다.


이날 우리의 응원은 더 초라했다. 전날엔 옆에 김해에서 온 NC 가족팬이 있어 함께 소리도 지르고 든든했지만, 이날은 우리 구역에서 소리 질러 응원하는 NC팬은 나와 Y뿐인가 싶게 외로웠다. 전날엔 앞에 앉은 꼬마가 내가 응원할 때면 '귀틀막'할 만큼 크게 소리 질렀었는데, 오늘의 화력은 형편없었다. 이날 우리의 자리는 전날보다도 NC의 응원단 '랠리 다이노스'가 있는 곳으로부터 더욱 멀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다가도 결국 토요일도 아니고 일요일이라(다음날인 월요일 일상을 살아야 하는) 비교적 먼 거리에 사는 NC팬들은 많이 오지 않았구나 하는 결론에 치달았다.


8회 3점을 거두며 NC가 기아를 7:5까지 밀어부쳤고 9회말 마무리 이용찬이 등장하자 '아, 오늘도 승리겠구나' 하는 감이 왔다. 나와 Y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세등등하게 '삼구삼진' 등을 외쳤다. 경기를 포기하고 속속 퇴장하는 기아 관중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아니한 것이 야구라던가. 2아웃 상황에서 볼넷, 안타가 연이어 터져나오더니 이우성이 2루타를 터뜨려 기어이 기아는 7:7 동점을 만들었다. 점점 기세가 올라오던 기아 관중들이 기립을 시작했고, 나와 Y는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연장전에 돌입하자 나와 Y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 때 시각이 이미 밤 9시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광주송정역에서 10시 30분 KTX를, 같은 시각 Y는 서울 가는 버스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Y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됐고, 거리가 먼 광주송정역까지 가려면 난 당장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직 경기는 진행 중이었고, 분위기는 과열됐고, 다 이긴 줄 알았던 경기가 연장을 향해 치닫는 상황을 보는 우리의 몸과 마음도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윽고 Y의 폰이 꺼졌다. 이제는 선택해야했다. 일단 자리부터 '랠리 다이노스' 코앞으로 옮겼다. 더 이상 외로운 응원을 이어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기존의 표를 모두 취소하고, 밤 11시 20분 서울로 출발하는 프리미엄 버스를 끊었다. 그 정도면 연장 12회까지 가도 넉넉한 시간이었기에 막차 걱정 없이 응원에만 집중하기로, 나와 Y는 결의했다.


연장부터는 '난장판 그 잡채'였다. 10회부터 NC에서는 2군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 된 투수 전사민이 올라왔다. 한 마리 왜가리 같이 곧고 하얗고 긴 그가 마운드에서 피칭을 이어가는데, 요상한 비감이 나를 휘감았다. 이기고 있다가 동점을 허용했고, 연이은 연투로 NC 불펜엔 그 외에 나올 만한 이가 없던 상황이라 마운드에 홀로 서 있는 그 자태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립'이었다. NC 응원석에는 중고교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4명이 우리가 '홈런'을 외치면 '삼진'을, '삼진'을 외치면 '홈런'을 외치는 식으로 훼방을 놨다.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 더더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정도 응원은, 초등학교 때 진해시 전체로 열렸던 학교 대항 육상대회 이후로는 처음 해보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노래하며 춤췄지만, 이러다 방송 카메라에 잡혀 집에 있는 엄빠가 볼까 싶어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기도 했다.


저녁 5시부터 시작한 경기가 밤 9시 45분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장.


결국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7:7 무승부로 끝났다. 기아에게도, NC에게도 올시즌 첫 무승부였다. 나도 직관을 시작한 이래 첨 겪는 무승부였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언니'에게 긴긴 박수를 보냈다. 마른 목을 안고, 터덜터덜 선수들 퇴근길을 보러 갔다. 그러고도 30여분을 더 기다렸는데, 기사 아저씨 말로는 선수들은 그 새 밥도 먹고 씻고 나온단다. 투수차 앞에 서서 옆에 있던 어떤 팬분과 얘길 나눴다. 그는 광주 사람이며 하준영이 기아에 있을 때부터 팬이었는데, 그가 NC에 가고서도 계속 응원한다고 했다. 내 왼쪽에 서 있던 분들은 기아 유니폼에 NC 선수들 사인을 받아도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펜이 없다길래 내가 가진 은색 마카를 빌려드렸다.


이윽고 주위가 어수선해지더니 선수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NC의 어린 투수들은 정말 팬서비스에 진심인데, 그 길고 길었던 경기 후에도 사인과 셀카 요청에 하나하나 다 응해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옆으로 하준영 선수가 나타났는데 나와 같이 기다리던 팬이 "오늘 잘 던졌어요"하며 입장권에 사인 받는 모습이 굉장히 편안해보였다. 나무위키를 탈탈 털어 읽어서 하 선수가 외모에 부심이 있다는 걸 알았던 나는 "선수님 너무 잘생겼어요!" 한마디 했는데, 그가 배시시 웃었다. Y가 가장 좋아하는 박건우의 사인을 받았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캡틴' 손아섭은 팬들에게 오래오래 사인을 해줬다. 그 긴 경기를 같이 지킨 팬들에 대한 의리이리라.


오래도록 사인을 하던 그...


이 모든 소동을 끝내고, 밤도 깊어 터미널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터미널에서는, 한 손에는 캐리어를 들고 NC 유니폼을 입은 몇몇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탈진한 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위무하는 바나나 단지 우유를 하나씩 사 먹었다. 그러고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라 좌석을 한껏 뉘어 잠을 청해보려는데… 이 느낌, 이 기분이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짧은 시간 내 다 겪어 몸과 마음이 모두 탈진할 거 같고, 근데 뭔가 울컥해서 엄마가 보고 싶은 이런 기분. 어디서 겪었더라. 아, 이거 어렸을 때 눈물 콧물 쏙 빼던 수련회에서의 캠프 파이어 직후 같은 느낌인데. Y에게 말했더니 물개 박수를 쳐가며 적극 동의했다. 여중 애들이 교관 선생님들 두고 '원 픽' 정하고, 수련원 입소 직전에 가방 검사하는(경기장 입장 시에도 가방 검사를 한다) 그 모든 패턴들이 수련회랑 '똑닮'이라고. 교관 선생님들이 인생에 절대 불필요한 포인트를 남발하지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감정이입하는 것, 선수들과 같이 교관들도 모자를 좀처럼 벗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고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20여년 세월을 건너 수련회에 다시 다녀온 것인가. 그 당시로서는 정말 왜 가는지 몰랐던 그 수련회는,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이런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비하라고 생겨난 것인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쯤 되어 서울에 도착했고, 경기 고양민인 나는 첫차 시간 직전까지 서울민인 Y의 집에서 뜬 눈으로 지샜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뚫고, 거슬러 집으로 돌아오니 두 마리 고양이들이 눅진해진 똥 냄새와 함께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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