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슬기 Oct 08. 2023

유니폼 사인 자수 하러 가는 길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17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그간 격조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던 한 달 여 간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야구장을 찾아 주구장창 야구를 보고 있었다. 창원, 대전, 인천, 서울 잠실·고척 등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추석 연휴에는 사랑하는 내 둘째 고양이를 잃었다. 그리하여 "왜 살아야만 하지?" 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봉착했을 때도 나는 밥을 먹고 라디오에 나가고 야구장에 갔다. 그래서 어느새 밥을 먹고 밥벌이를 하는 최소한의 삶을 위한 기초적인 루틴 한가운데에, 야구가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어엿한 직장인인 Y가 '취뽀' 기념 밥을 사겠다고 했다. 메뉴로는 서울 장충동의 중앙아시아 음식 전문점 '아시아'가 거론됐다. 6월의 끄트머리, 걸으면 더운 땀이 등에 송골송골 맺히던 초여름에도 나와 Y는 '아시아'에 가서 중앙아시아를 먹었었지. 먹고 난 후에는 근처 한옥카페에 갔다가 도보 30분 거리 동대문 방산시장에 들러 밥 먹기 전에 맡겼던 유니폼 사인 자수를 찾아왔었다. 그래서 자연히, '아시아'를 떠올리자 방산시장이 생각났고, 지난 9월 19일 잠실 두산전에 앞서 용찬 선수에게 사인을 받았던 내 NC 홈 유니폼이 생각났다. 그의 150세이브 기념 굿즈로 구매한 열접착 패치도 아직 유니폼에 붙이지 못해 뒹구는 상태였다. 자수집에 맡기면서 한큐에 해결을 한다면? 근 한 달 가까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갈 것이었다. 


10월 7일 점심. Y를 만나기에 앞서 유니폼과 패치를 고이 접어 챙겼다. 근 4달 만에 오는 동대문 방산시장 '리라자수'. 방산시장 B동의 2층에 가면 자수집들이 즐비한데, 그들 각자는 야구·농구·축구 유니폼 등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다.(그 가운데 항상 '리라자수'에 가장 사람이 많다.) 스포츠팬들 사이에서는 유니폼에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아다가 그 선을 따라 실로 자수를 박는 게 불문율이다. "선수들 손길이 지나간 사인 위에 뭐하러 굳이 자수를 박아?" 싶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강력한 마카나 매직으로 사인을 받더라도 오랜 시간 세탁을 반복하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라 자수로 박는 게 훨씬 오래 '그의 흔적'을 남기는 길이다. 게다가 방산시장 자수집의 솜씨는 천의무봉이라 글자 획의 굵기 등도 미세하게 재현하는데다 이정후처럼 많이 취급(?)해 본 사인 같은 경우는 아예 줄줄 꿰고 계셔서 유니폼 위에 제대로 획이 그어지지 않았더라도 사인 정자 그대로 재생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인 하나에 만원, 들이는 공력 대비 저렴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가격이라 야구팬 이하 스포츠팬들은 자수집에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니폼 뒷면에 선수 이름, 등번호를 마킹하는 대신 선수에게 직접 써달라고 해서 그대로 자수를 박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난 6월에 한 번 들러서는 NC 충무공 유니폼에 이용찬 사인을, 원정 유니폼에 손아섭 사인을 자수로 박은 적이 있다. 그 때 뒷면까지 말끔한 퀄리티를 보고 적이 만족했었다. 사인 자수를 박을 때 제일 고민되는 점은 어떤 색실로 박을까다. 흰색 홈 유니폼이면 무난하게 블랙을 선택하는 경우도, 화려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면 금사나 은사가 박힌 실을 고르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무조건 유니폼 포인트 색을 따라가자는 주의다. 적당히 조화로우면서도 유니폼 배경색과 대비돼 자기 주장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블랙 충니폼에는 베이지색실을, 원정니폼에는 흰색 실을 선택해 자수를 박았다. 


엔팍에서의 충니폼 이용찬.


이번에 가져간 홈니폼도 직원분 추천에 따라 등번호 색상인 NC 특유의 네이비에 청록색 한 방울쯤 떨어뜨린 색깔로 골랐다. 150SV 기념 패치는 유니폼 앞면 NC 로고 오른쪽 하단에 달기로 했다. 타팀 유니폼의 가슴 배번, 혹은 NC의 캡틴 로고가 붙는 자리쯤이라 이물감이 없었다. 또 다른 패치 명당(?)이라는 소매에 하기에는 이미 패치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기 때문에(어센틱 유니폼이기에 기업들 광고가 붙어 있다) 선택의 여지없이 오른쪽 가슴 아래를 택했다.


유니폼을 맡기고, 주말이라 3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래도 상관없다는 얘기를 하고 Y를 만나러 '아시아'로 향했다. 낮 12시,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가게 안에서 식당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마도 내가 그곳의 첫 손님인 듯 했다. Y가 오기에 앞서 지난번 코스 그대로 주문을 했다. 샤슬릭으로 양고기 하나 돼지고기 하나, 찐만두 하나. 음식이 나오기 직전에 Y가 왔다.


'아시아'는 소싯적 장충동에 살았던 요즘 대세 김대호 아나운서가 유튜브에서 소개해 알려진 집이다. 아마도 중앙아시아 현지분들이 하시는 거 같고, 그래서 주문할 때 의사소통에 살짝 버퍼링이 걸리고, 꼬치구이인 샤슬릭을 시키면 어디선가 매캐한 단백질 타는 연기가 불어오고, 그런 점이 저렴한 값에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에 다녀온 듯한 기분을 주어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가격이 저렴하다. 8000원짜리 찐만두에는 양고기 소가 가득 든 만두 5개가, 각각 8000원(양고기), 7000원(돼지고기)하는 샤슬릭은 꼬치 하나 당 고기들이 뭉텅뭉텅 6~7개는 꽂혀 있다. 도합 2만 3000원쯤에 여자 둘이 든든하게 요기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흡입하다시피 접시를 비운 뒤, 거기서 또 도보 10분 거리의 장충단공원 언저리에 있는 한옥 카페인 '하우스 커피 앤드 디저트'에 들렀다. Y와 나의 올타임 페이보릿인 아이스 카페라떼를 하나씩 시켜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을 쐤다. 여기도 지난 6월에 우리가 개척한 루트다. (Y의 말에 따르면 이제 루트 아닌 루틴이다.) 장충동은 NC의 용찬이와 명기(송명기)가 나온 장충고가 있는 동네지. (2024 드래프트 7라운드 65번으로 NC에 오게된 원종해 선수도 장충고 출신이다.) 야구 얘기로 날밤 정도는 쉽게 까는 Y와 내가 다른 얘길 하다가도 언제든 야구 얘기로 돌아올 수 있는, 한마디로 재료가 많은 동네다. 이날까지 6연패를 기록하던 NC가 오늘은 이겨야만 한다, 오늘은 이기지 않겠나, 그런데 뭔가 이기는 법을 까먹은 것만 같다, 그래도 이겨야만 한다, 라는 얘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갔다. 그렇게나 가을야구를 염원했는데, 우천취소된 경기를 뒤늦게 소화하느라 말그대로 가을에 야구를 하고 있음에도, NC가 속한 3~5위가 혼전 양상에 접어들고 NC는 6연패 내리막을 걸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가을야구는 가능할지 가을의 한복판에 앉아 연신 떠들어댔다. 


우리가 이렇게 가을야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만약 NC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오로지 NC만을 따라다녔던 올해의 지난 세월이 부정당하는 거 같은 기분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내 말에 Y는 크게 끄덕이며 공감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까닭은 그 가운데서도 이기는 놈이 있어 누군가는 포스트시즌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NC는 올시즌 시작 전 그 누구도 가을야구 진출을 예상치 않던,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었다. KBO 10개 구단 가운데 관중 동원이 꼴찌(50만 7358명으로 1위인 LG와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10월 7일 현재)이며, 자구단 출신 해설위원이 한 명도 없어 늘 중계를 할 때면 편파 해설에 시달리는 NC의 팬으로 사는 것은 설움의 연속이다. (경남 출신이라고 하면 '롯데팬이냐'는 오랜 클리셰와 더불어…) 그런 팀을, 전국 9개 구장을 돌며 한꼬집 원정팬으로서 응원하던 세월을 건너 명실상부 3위팀으로까지 올려놨는데(내가 올려놓은 기분이다) 막판에 미끄러져 가을야구에 못 가게 된다 하면 그 비통함이야 뭐에 비할 수 있을까.


얘기는 흘러흘러 이틀 전 중계 방송에 잡혔던, NC의 김수경 투수 코치의 눈물에까지 이르렀다. 마무리 이용찬 등판 이후 더그아웃에서 잡힌 김 코치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해 눈알 전체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부득불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었다. 79년생 김수경 코치의 나이는 마흔 넷. 회사에서 만났던 남자 차장들이 저 나이였지. 어느 중년 남성이 회사에서 회삿일로 눈물을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일과 삶이 저토록 심각하게 결부돼 있으면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모르겠다. 예전의 나라면 단연코, 일은 진심이어야만 할 수 있다고, 일과 삶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을 거다. 그러나 프리랜서 만 1년에 접어드는 지금에 와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일=삶'인 사람은 일이 힘들 때 삶으로도, 삶이 힘들 때 일로도 도망칠 수가 없다. 내 고양이가 연휴새 아프고 아파서, 결국에 고양이별로 떠나고야만 직후 나는 내 고양이와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해 쓰리라 마음 먹었던 일거리 하나를 놓아버렸다. 언젠간 쓰겠지만, 지금은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과 삶이 붙어 있어서, 그 모두가 흔들릴 때 어느 하나 의지가지 할 곳이 없겠다고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2시간 가까이 생각이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다 맛있으면 바나나' 처럼 길어지다가, 자수집에서 얘기한 3시가 되어 다시 방산시장으로 향했다. 도착했더니 KBO 페넌트레이스 1위에 빛나는 LG 팬들이 저마다 LG 우승 소식이 1면에 실린 스포츠신문과 유니폼들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맡긴 이용찬 유니폼은 작업 직전이었다. 덕분에 기술자께서 유니폼에 드르륵 미싱으로 사인 자수를 박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미싱이 지나간 자리, 기존의 획 위에 색실로 그의 사인이 새롭게 피어났다. 힘주어 그은 획은 두껍게, 힘이 살포시 빠진 부분은 매직의 획 그대로 힘이 빠져 보이는 게 미싱으로 어떻게 구현 가능한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가슴팍에 달 패치 위치까지 꼼꼼히 상의한 뒤, 그것 또한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주셨다. 


이윽고 완성품을 들고 앞뒤로 살펴봤다. 패치에 사인 자수까지, 그것은 유꾸(유니폼 꾸미기)의 총 결정체라 할 만 했다. 가슴팍에 붙은 그의 사진과 '150SAVES'라는 글귀가 자못 자랑스러웠다. '내가 150 세이브 투수의 팬으로 보이나요?'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 됐다. 토탈 가격은 만 원. 자수 하나 당 가격이 만 원인데, 패치 부착값은 공짜로 해주셨다.



나만의 DIY 유니폼을 손에 그러쥐고, 방산시장을 총총 빠져나왔다. 그 유니폼을 손에 넣은 것 만으로, 버섯 먹은 마리오 마냥 힘이 세지는 기분이었다. 얼른 이 유니폼을 들고 또 직관하러 가고픈 마음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은 이토록 힘이 세지. 그래서 좋아하는 것만 자처해서, 일로써 삼고 살아온 게 내 삶이었다. 가끔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좋았던 것은 어디 가지 않겠지. 그저 좋아할 뿐 뒷일은 걱정하지 말자고, 좋아한 세월 자체가 내겐 자산인 거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일도, 삶도, 사랑도.




매거진의 이전글 '노 키즈 존' 시대의 '예스 키즈 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