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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와샐리 Mar 22. 2024

글을 읽기도 쓰기도 싫어졌다.

나에게 나타난 한 달간의 변화

s2월 11일, 설 명절 연휴기간이다.

나는 2월 25일 하프 마라톤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연휴에 달리기 연습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부모님들도 다 뵙고 왔겠다. 2월 11일이 아주 적당한 날이다.

처음부터 하프 코스를 정복해 버리면 내 몸이 어떤 증상을 보일지 모르니 일단 10km를 뛰어보기로 한다.

사실 나 10km도 한 번도 뛰어본 적 없으면서 겁 없이 하프로 신청을 했다.

몸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왕 뛰기로 했으니 터덜터덜 남편 손을 잡고 공원으로 향한다.

달리기 시작.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 또 별거 아니다.

남편이 페이스를 조절 잘해줘서 나는 힘겹지 않게 10km 달리기를 마쳤다.

기록은 56분 42초.

다 뛰고 나니 나보다 남편이 더 힘들어한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뿌듯함과 함께 턱과 가슴이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긴 거리를 뛰었으니 오늘 저녁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하고 싶어 진다.

그런데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다.

일주일이 미뤄진 생리.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임신테스트기 어디에 있어요?"

내 부끄러움은 신경 쓰지도 않은 남편이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점원에게 물어본다.

사실 나는 조용히 찾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집에 도착했다.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명절음식! 엄마가 잔뜩 싸주신 음식들로 저녁을 차렸다.

육개장, 잡채, 갈비찜, 미역, 각종 나물들

달리기를 오래 해서 그런지 밥이 술술 넘어간다.

저녁 먹기까지 완료하고 나에게는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남아있다.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틈을 타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나의 첫 임신 테스트기.

코로나 이후로 이런 검사는 처음 해본다.

소변을 묻히고 나니 점점 이동하는 테스트기.

가까운 선부터 매우 진하게 붉어진다.

가까운 선이 시약선인지 아닌지도 확실히 잘 몰랐던 나는 5초가 지나고 나서 결과를 확실히 알게 되어버렸다.

두... 두줄이다...!

흐릿한 두줄도 아니도 시약선보다 테스트선이 훨씬 더 진한 두 줄.

(나중에 보니 이것을 역전?이라고 부르고, 이 상태일 때 병원에 가면 아기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나는 물음표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남편에게 임신테스트기를 건넸다.

남편에게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우리는 물론 아기를 가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생각했던 타이밍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먹으려고 했던 맥주를 냉장고에 그대로 두는 것뿐이었다.

결혼하면서 아기를 갖는 순간을 상상했을 때와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본다.

몇 가지 평소와 달랐던 점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1. 평소에는 커피 두 잔도 거뜬했지만 최근 들어 커피 두 잔을 마시면 뭔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2. 나는 평소에 먹고 싶은 게 많지 않아서 남편이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마다 다 먹고 싶었고 "갑자기 옛날에 동네에서 먹었던 순대곱창이 먹고 싶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혼자서 피자를 늦은 시간에 시켜서 4조각을 먹은 일도 있었다.

3. 1월에 재밌게 열심히 다녔던 수어교육이 1월 말부터 너무 피곤해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석도 여러 번 하게 되었고 결국 수료하지 못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임신이 맞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임신확인서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지금까지 잘못했던 일만 떠오르고 걱정만 되었다.

무리한 달리기, 배드민턴, 그리고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와인에 재미를 붙여 최근 들어 와인도 자주 먹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임신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래 둘 다 걱정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손일기도 많이 쓰고 글 쓰는 것도 매우 좋아하는데 임신사실을 알고부터는 글씨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사실 책을 읽으려도 해도 몇 줄 보지 않았는데 멀미가 났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도 쓰면서 멀미가 나서 며칠에 걸쳐 편지를 완성했다.

아가가 분명 남편을 닮은 게 분명하다.


하루하루 생겨나는 다양한 변화들을 겪으며 드디어 내 몸 안에 우리의 아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7주 차에 확인한 아가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불안함보다는 우리의 아가를 잘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사실 지금도 아가가 잘 있나 불안하고 궁금하다.

아직 글을 읽는 건 쉽지 않지만 이제는 글도 적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늘 도전했는데 성공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가와 함께 보내는 남은 임신 기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아빠는 손으로, 엄마는 컴퓨터로 기록하기.


설아, 앞으로 잘 부탁해!

(태명은 설에 발견해서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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