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해에 태어나 28세에 요절한, 시인 기형도
광명에 자주 다닌다. 갈 때마다 다음 버스 정류장이 <기형도 문학관>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항상 궁금해하면서도 가지 못했다. 어제는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어 기형도 문학관을 찾아갔다.
시인 기형도에 대해서는 아이들 가르칠 때 「엄마 걱정」이라는 시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가서야 시인 기형도가 내 나이임을 알게 되었다.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대학 생활을 했고, 격랑의 한국사회를 살다 1989년에 요절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기자로 있으면서 시집 출간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기형도 문학관에 가기 전 오전에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나는 1978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던 세대였고, 고등학교 때까지 반공이 아니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범생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유신정권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워야 했다. 집안이 어려워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내가 모르던 세계에 대해 알려고 <금서>를 접했으며 <탈반>에서 탈춤을 배웠다. 79년에 박정희 암살, 79년 12. 12 사태, 80년 5. 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대학에서 겪었다.
그랬으면서도 사실은 12. 12 사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아득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울 한복판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하긴 5. 18도 모르긴 했다. 계엄령을 겪었고, 친구들 사이에 쉬쉬 하면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그 실상에 대해서는 사실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택시 운전사>나 다른 매체를 통해 5. 18의 처참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봄>은 12. 12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시기를 살아온 사람도 역사의 진실을 알고 경악할 일인데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오늘 영화가 400만을 돌파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영화 말미에 있었던 구경꾼들'처럼 보고만 있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역사는 쓰이고 있다. 눈과 귀를 닫고 싶은 현실일지라도 눈과 귀를 열어 사실을 보고 듣는 행위만큼은 멈추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