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반복되는 부익부 빈익빈

문화 속 반복되는 양극화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by 승승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되고, 이후 잉여생산물이라는 것이 생겼다. 똑같이 농사를 지었는데, 어떤 땅에서는 100 이 생산되었다면, 어떤 땅에서는 150이 생산이 된 것이다. 남아 있는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토기가 생산이 되었고, 격차가 발생했다. 남은 사람은 토기에다가 곡식을 보관했지만, 오히려 곡식이 부족한 사람도 존재했다. 질투와 시기가 발생했다. 똑같이 가축을 길렀는데, 어떤 집은 가축이 새끼를 치면서 재산이 불어났지만, 어떤 곳은 가축이 병에 걸려 줄어드는 집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집은 가축을 기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청동기 시대에는 살고 있는 지형에 따라 부족 간에 심각한 불공평이 제기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혹은 질투심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불공평 함을 고착하기 위해 지배계층은 자신들을 신격화하기 시작했고, 자원을 바탕으로 청동기를 독점하고 청동거울과 청동방울로 자신들을 특별한 계층으로 포장하고, 제사를 주관하며 피지배계층을 지배한다. 계급이 생기고, 다른 부족을 쳐들어가서, 사로잡은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그 노동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더욱 불려 나간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크게는 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의 두 계층의 사람들의 삶이 공존하며 그러한 문화가 고착화되어 간다. 청동기 시대였지만, 피지배계층은 여전히 농사를 짓는데 반달돌칼과 같은 돌을 사용했다. 농경문화가 자리를 잡고, 이 농경 (agriculture)는 문화(culture)를 만들어 낸다. 문화의 시작에서부터 이러한 양극화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역사를 거쳐가면서 양극화는 더욱 발전해 간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 노예들을 취하고 자원을 갈취해 가고, 라티푼디움을 바탕으로 그들의 부를 쌓아간다. 나라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배를 당한 족속과 부족들은 계속 가난 속에 허덕이며 먹고사는데 급급한 상황에 처한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상황조차 이용해 가며 그들의 부를 확장해 갔다.


국가가 곡식을 빌려주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최초의 제도는 고구려 고국천왕의 진대법이다. 재상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된 진대법은 빈민구휼을 목적으로 무이자로 시행되었으며, 국민복지의 최초의 개념이라며 중대한 의미를 지녔다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좋은 의미가 언제까지 지속이 되었을까? 고려의 의창, 조선의 환곡에 대한 기록을 보면 처음에는 무이자로 시작되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결국 이자를 받기 시작해서 고리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결국에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계속해서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자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공정했어야 했을 나라의 제도가 이러했을 진데, 일반 양반이나 고위 관료가 개인적으로 빌려주면서 갚으라고 했던 고리대는 과연 몇%로의 이자를 매겼을까? 그 이자에 허덕이며 고달픈 피재배계층의 삶을 힘들게 이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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