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에서 집순이로

새로운 행복의 발견

by 심주

나는 대학시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참 좋았다. 새로운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맺어지는 깊은 관계들을 통해 내 인생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을 통해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치유하고 내가 찾았던 것은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 조차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너무 친해져 버린, 그래서 상처주기 쉬운 사이들이 버거워지고 힘들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연락이 끊어지면 스스로가 너무나 가치 없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믿었던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는 항상 모임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주인공이 되려 한다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았다.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이나, 수더분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어떻게든 그 모임, 상황을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내가 즐거워서 한 일이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고 즐거워하고 또 그 모임이 지속되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처럼 어느새 내가 재치 있는 사람이 아닌 우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나의 지인들은) 나에게 무례한 말을 툭 뱉어놓고는 '너는 이런 거에 상처 안 받잖아' , '너는 안 삐져서 좋아'라는 말들로 오히려 불편한 기색을 내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사람이 다짜고짜 욕을 했다 하더라도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가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라 상황에 따라 그 말들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인싸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친해도 항상 나를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감사하기는 했지만, 가끔 또 이들마저 나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그들과의 만남도 횟수를 줄여갔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희미해지면서 약간의 공허함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충만함과 행복을 발견했다. 혼자 카페에 앉아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읽기, 운동 하면서 잡생각을 덜어내기, 예능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웃기, 하루에 있었던 조각들을 글로 쓰면서 정리하기. 혼자 하는 일이 생각지도 못했던 충만함을 안겨주었다. 내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느꼈던 행복감과는 또 다른 행복감이었다.


옛날에는 '집순이', '집돌이'라는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집순이로 살아간다. 나를 더 이상 희생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굳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고 충만한 삶. 시간이 지나고 내가 혼자 있어도 더욱더 행복하고 힘들지 않을 때, 누군가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 건강한 관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재 정의하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때를 기다려봐야 되겠다.


사실 꼭 안 들어가도 될 것 같다. 그냥 그때, 그때 내가 더 행복한 상황을 찾아서 가기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