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드는 여름
여름이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간 지도 몇 년이나 됐다. 이제 여름에서 태풍의 지분은 줄었고, 몬순 기후의 소나기와 열기가 급격히 지분을 늘렸다. 그중 열기가 돋보였다. 재작년에는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처음으로 셔츠 한 장만 걸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더 얇게, 더 짧게.
여름에 들어서면 나는 무기력했다. 무참히 열기에 녹았다. 내 열정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생활도. 싱가폴의 박정희, 리콴유가 말하길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에어컨이 없는 집이 아닌,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그 말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녹아버렸다. 내면의 감정도, 성숙도, 이윽고 관계까지. 그동안 쌓아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여름이 주는 감각을 감각기관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계절이 여름의 턱에 걸릴 때부터 발이 걸린 것처럼 짜증만이 가득했기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발 걸린 문지방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하긴, 멋쟁이가 되고 싶어 한여름에 긴바지와 카라 있는 셔츠를 고집했지. 누가 시킨 지는 몰라도 말이다.
다행히 이번 여름은 가볍다. 공기도 예전처럼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두른 상쾌한 아쿠아 향 여름 향수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달궈진 도로 위에서의 걸음이 값지다. 땀도 흘리고. 끈끈하지만 흠뻑 젖어 미끄러움이 주는 쾌감도 발견했다. 동생의 여름밤 기타 소리에서 열정이 읽혔다.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여름이 보였다.
어딜 가든지 사람들이 에너지가 넘쳤는지 발산하고 싶어 했다. 추태가 늘고, 폭력이 늘고, 그 반동으로 투쟁이 늘고, 발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인간관계의 결도 보이기 시작했다. 관계의 여러 꼬리표 중 욕망의 대상으로 사귄 사람들의 꼬리표가 보였다. 여름 한가운데 놓인 내 모습이 부분, 부분에서 전체로 축소되어 보인다. 한 가지 기쁜 일은 자리가 아닌, 진심으로 대한 관계에서 서로 유익함이 보인 것. 아. 플라스틱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