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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신 Dec 28. 2021

내 마음 속의 보석과 자유를 찾아서

100세 시대 라이프쉬프트 (연재 3)

-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연말에 찾아온 인사담당자와 명퇴의 조건을 이야기한지 일주일째 내 마음은 조기퇴직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결국 2년 계약직 근무를 조건으로 명퇴를 결정했다. 2년간의 계약직 기간은 퇴직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계약직으로 신분을 전환하여 한직으로 옮겨왔을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없어서 직장생활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회사 입사 6개월부터 매월 매년 동료들과 순위경쟁을 하였고 특히 관리자 시절은 팀의 책임자로 치열한 승부를 하였기에 과거 십여 년 동안 극도의 긴장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총 27년간의 긴 직장생활이었다. 연수원에서 신입 동기들과 집합교육을 마치고 현장 사무실로 배치 받아서 선배들에게 신고식을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운 좋게 아파트도 구입하였고, 아이 둘도 성장하여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회사 덕분에 잘 살아온 것도 같았다.

회사 조기퇴직을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수명연장과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였다. 

이전 세대는 나이 60세에 정년퇴직 후 손자나 손녀들을 돌보면서 소일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수명 100세 시대의 은퇴자들은 대부분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실제로 정년 퇴직 후에 집에서 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통계상으로도 한국남녀들이 실제로 은퇴하는 나이는 72세이다. 어차피 제2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면 그 시기를 5~6년 앞당기는 것도 좋은 전략 같았다.


나를 설득하러 온 인사팀 후배의 손에는 임금피크가 시작되는 55세부터 매년 삭감되는 급여명세가 계산되어 있었고, 그 수치를 합산하여 명퇴금으로 선반영해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명퇴 요구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달랐다. 당시 회사의 이익은 1조 원이 넘었고, 일부 부서의 경우는 특수직 경력사원을 신규로 채용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일말의 위기도 없었고, 주가도 신고가를 기록하였지만 회사는 먼 장래를 생각해서 조직을 젊게 가져가려고 했다. 마치 젊은 애인을 만나서 조강지처를 내쫓으려는 나쁜 남편과 같았다. 

당시 우리 회사는 국내 대표적인 손해보험회사로서 인터넷을 통한 다이렉트 가입자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 또한 우리 세대가 만든 회사 브랜드 파워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고령자 입장에서는 회사 브랜드가치에 그들의 땀과 지분이 들어있다고 주장할 만하다.  

이런 이유로 남아있는 일부 선후배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기도 하였다. 나는 투쟁보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나는 누군가와 다투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길지 않은 인생에서 회사이든 누구이든 다투고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인사 담당자가 가지고 온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27년간의  직장생활이었다.



- 문 뒤에 문


계약직 2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코로나로 어수선한 12월에 완전 퇴직을 하였다. 내게는 고교중퇴, 첫 직장 사퇴 경험도 있었기에 과거 고비 때마다 내가 이룬 반전을 회상했다. 

새로운 길에는 기존에 없던 도구와 철학이 필요하였다. 내가 SNS랑 친해진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강연을 준비하는 것도 모두 새로운 출발과 관련이 있었다. 

정년퇴직은 단순히 소득만 끊기는 것이 아니다. 출퇴근할 곳이 없어지면 신체 활동과 정신활동이 줄어들고, 핸드폰 통화량도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미국에서는 핸드폰 통화량으로 개인의 신용도를 판단한다고 한다)

코로나 탓인지 동고동락했던 회사사람들과 만남도 거의 끊어지고, 취업 준비생인 딸아이와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간 준비는 했지만 바깥세상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눈에 보이는 작은 언덕에 오르면 더 큰 언덕이 보였고,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문들이 보였다.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중궁궐처럼 또 다른 출입문이 이어졌다. 

시련 속에서 조금씩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동안 내 전공을 살려 자동차사고 보상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고, 책의 내용으로 블로그를 만들고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였다. 보험매일신문사의 요청으로 2년 간 보험 칼럼을 쓰기도 했다.

변호사사무실에서도 근무도 해보고, 비트코인 투자, 문학지 수필등단, 미술칼럼도 써보고 ‘처세의 인문학’ 출판 이후에는 대중 강연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았다. 그것은 마치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과 같았다. 

“제가 회사(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라고




- 실력보다는 마케팅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후 지금은 자동차 부품사를 운영하는 선배님을 만났다. 

‘회사 안에서는 나의 예측이 대략 맞아 들어갔는데, 사회로 나온 뒤에 예측하는 일들은

전부 어긋나고 말더라‘ 라고 하셨다. 선배님 말씀이 옳았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동차사고 보상경력 27년, 손해사정사, 도로교통사고 감정사, 보험신문 칼럼니스트, 보험 유튜버 등으로 활동하면서 퇴직 후 수입을 기대했던 직종은 손해사정 쪽이었다. 

자동차사고 보상업무를 담당하다가 퇴직 후 책을 출판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특히 유튜브 검색창에서 “자전거사고 보상”이라고 치면 최상단에 노출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로 인해 사건을 의뢰받거나 소개받은 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손해사정 업계는 그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기존업체들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업종이 이러해서 기술이나 전문성보다는 마케팅과 영업력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 회사원들이 알 수 없는 일이고 퇴직 후 놀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대와 달리 사고보상에 대한 컨설팅 수입은 없었지만, 퇴직 후 수입은 의외의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퇴직 전후에 쌓아놓은 보험 전문가로서의 이미지 덕분에 보험계약 관련 문의가 간간이 있었고 이를 위해 와이프가 보험설계사로서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자칫 보험가입 권유는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받기 쉽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지인들 특히 고교 동문 선후배님들의 도움으로 굵직한 계약을 받을 수 있었다.

이분들 주위에는 나 말고도 보험영업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왜 내게 연락을 하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게는 매우 감사한 일이다. 평소의 나의 모습과 영향력이 중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시기일지라도 주위를 기쁘게 하고 무언가 베풀려고 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군도 많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 사진: 배근태 작가


 


모든 준비는 무용지물


퇴직을 앞두고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는 27년간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보험신문 칼럼을 쓰면서 자동차보험 관련 책과 보험 유튜브를 만들고 강연을 준비하였다. 

다른 하나는 ‘성장과 처세에 관한 인문학’을 출판하고자 하였다. 나의 경험과 시행착오, 성공자들의 이야기를 타산지석으로 엮고자 한 것이다. 

신문칼럼을 쓰고 책을 출판하는 것은 할만 했으나 강연은 내게 새로운 분야였다. 

코로나로 인해 강연의뢰 건수도 거의 없었지만, 강연은 내용이 좋아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행이 흥미지진하고 에너지가 넘쳐야 했다. 그러나 내게는 경험이 부족했다. ‘강의의 기술’ 저자를 찾아가 강의의 기술과 자세를 배웠다.


나의 최종목적지는 자동차보험 전문가로서 강연하는 손해사정사였지만, 코로나 여파로 모든 강의시장은 휴업상태였다. 

결국 아는 선배의 소개로 퇴직 후 로펌에 근무하게 되었다.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전 직장의 경력을 인정받아서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퇴직 후에 법무법인에서 받는 급여는 전성기의 1/4, 퇴직할 무렵의 1/3에 불과했다. 여기서 이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였던 선배님들을 만났다.

급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선배님들은 여기서도 더 열심히 일하고 행복해 보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사회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암묵적합의가 있다. 그러나 나이에 대한 편견은 상대에 대한 오해가 되고, 우리 자신에 대한 편견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그걸 절실히 느꼈다.



예전 직장에 아직 남아있는 선배님들도 계신다. 그러나 만족스럽진 못하다. 자녀 취업으로

인적공제와 교육비공제 등 공제항목이 없어졌고 세금도 많아졌다. 듣고 보니 선배가 내는 세금이 우리가 제 2의 직장에서 받는 연봉과 견줄 정도였다.

회사를 옮겨온 사람들은 줄어든 소득 탓으로 세금이 미미하고, 업무 스트레스나 긴장감이 예전보다 덜하다. 다행히 아이들 학비는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는다.

나는 더욱 용기를 내기로 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 남들도 과소평가한다. 

이 상황을 기회로 받아들이면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생기면 한 단계 성장한다. 

새 출발에 앞서 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1. 내 마음 속의 보석을 찾아서 목표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다.

2. 큰 그림을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분명하게 상상하는 것

3. 매일 한 걸음씩, 목표로 가는 작은 스텝을 내딛는다. 

4.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에너지

5. 단 1초라도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

6. 성공에 대한 상상과 감사의 마음이다.        끝


이어서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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