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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May 21. 2019

바라나시를 떠나면서 보내는 편지

[세계여행 Day 51]

 며칠 전에 메시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나보고 부럽다는 말을 했어요. 내 생각, 표현, 시야, 감정, 기운들이 부럽대요.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난 이런 내가 부끄러워 조금은 숨기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 부러움을 받아도 되는 사람일까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질문 하나가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서 도무지 사라지지를 않아요.  


 있죠, 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이 나와 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원했어요.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비로소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바라나시에 되게 오래 있다면서 놀라더라구요. 공감이 안돼요. 나한테는 아직도 내가 여기서 지낸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져요. 그래서 그 시간동안 나와 함께해준, 또는 찰나지만 미소를 보이고 인사를 건네준 당신에게 더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잊지 않을 게요. 아니 잊지 못할 거에요.
 사비나가 들고다닌 예쁜 디아 바구니와 엽서를, 모니카가 그려준 퉁명스러운 헤나를, 로힛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말투를, 라즈의 순하고 착한 인삿말을, 쿠시와 예시카가 보여준 티없이 맑은 웃음소리를, 준페이가 가트에 앉아 들려줬던 피리소리를, 물려 죽은 새끼강아지를 갠지스강에 띄워보내며 글썽였던 남자 아이의 순수함을, 오랜만에 만난 시마가 '왜 이렇게 안보였냐'며 했던 애정섞인 잔소리를, 라훌이 가지말라고 붙잡았던 그 순간을요.
미안해요 선재, 결혼식에 간다고 해놓고 못갔네요. 한밤중에 갠지스강에서 보트를 탄 거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별을 보고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같은 인생얘기를 들려줘서 고마워요. 많이 배웠어요.
 비키, 당신이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날 보며 짓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면서 알았어요. 내년에 새로 여는 카페 꼭 잘되길 바래요. 언젠가 다시 바라나시에 오면 꼭 가서 방명록 하나 쓸게요.
 그리고 나와 무수한 일상을, 밤을 공유했던 한국분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웃음과 슬픔을 나눠줘서 감사합니다. 온 맘을 다해서, 고마워요.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누구나 우러러보는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무심코 지나쳐오고 무시해왔던 가장 낮은 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


 가장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했던 바라나시를 이제 나는 떠납니다.

언젠간 이 지구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걸 알고 있어요.

그 때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살고 있을게요.


 바라나시에서 나와 함께했던 수많은 당신들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김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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