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의 힘이 커졌다. 이 작품 자체에서 기대한 언론의 작동 방식, 그 안에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흥미롭게 진행되는 갈등의 양상 등이 극의 재미를 형성하고 그 결과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가 실제로 언론을 통해 마주하는 것들과 목격한 것들을 상기시키며 작품성까지 건드린다. 그렇다고 이번 회차의 단점이 전부 가려질 정도는 아니다. 매번 리뷰에서 언급해온,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그간 보아온 것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거나 일회성 짙은 감성의 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캐릭터들의 몇몇 돌출적인 행동이나 대사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카레
모든 회차들에서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음식들을 이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음식들이 전부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퇴장하지는 않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던 회차가 존재했던 것도 맞지만, 작품이 선택한 특징 중 하나이며, 선택한 음식을 초반에 몇 초 동안 화면으로 비추기에, 해당 회차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며 그만큼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몇 가지 경우(장어, 고기)만 빼고는 전부 감정이라는 축에서만 그 발버둥 친다. 매번 다른 음식이기에 회차마다 다른 조리 방식이 필요하다. 그게 어렵다면, 한 번은 서사적으로 그다음은 캐릭터 또는 그들의 관계를 설득하기 위한 감정을 위한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도 대안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 그 방식은 후자였을 뿐 아니라, 음식을 앞에 둔 채 설득력 없이 튀어나오는 감정을 통해 장면의 밀도를 높이려 했다.
언급했으면 책임져야 한다. 해당 회차의 독립적인 매력을 발산할 정도의 정체성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존재감은 필요하다. 또한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고 감정 속에서 존재 여부만 인식시키며 단순한 상징이 되어 각본이나 연출의 기술적인 부분으로만 전락하는 것은 절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 회차의 ‘카레’가 그랬다.
출처 - JTBC
카레는 두 번 등장한다.(회차의 전반적인 요소가 아니라, 횟수로 먼저 그 존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 음식의 문제로도 느껴질 것이다.) 이번 회차의 중심 사건이 된 식당의 요리 중 하나가 그것이었고, ‘최경우’가 사는 고시원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일단 묻고 싶다. 왜 다른 음식도 아니고 ‘카레’인가. 제목에 붙었던 ‘3년’은 카레라는 음식에 대한 선택을 설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감정적인 공간을 형성할 뿐이다. 다시 말해 ‘3년 짜장’이나 ‘3년 치킨마요’가 돼도 이 서사는 무리 없이 진행된다. 이전의 ‘치킨’의 경우, 이지수의 과거 기억과 이어지며 ‘술’과 같은 농도 짙은 요소들과 어우러져 존재가치를 설득할만하다. 그러나 11화의 핵심은 ‘하나의 사건을 어디서 볼 것인가’이다. 서사가 감정에 눈을 돌릴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음식으로 대변되는 감정의 필요성이 잘 드러나지 않고 더구나 서사와 어떤 부분에서도 맞물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3년’이라는 축축한 단어에 어울릴만한 음식을 별 고민 없이 가져와 붙인 것으로만 보일뿐이다.(혹시 그것이 간접광고를 위한 것이었거나 편집의 결과라 해도 아쉽지만 변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카레가 등장하는 장면 자체의 필요성까지 낮추고 싶지는 않다. 음식과 함께 늘 감정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시원 안에서 밥을 먹는 ‘최경우’의 모습은 곧 한준혁의 현재 발자취를 따르려는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을 엿보이고, 또한 앞으로 그의 선택들이 다른 갈등들을 어떻게 유발할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계속 좇아온 고수도의 일처럼, 깔끔한 마무리 없이 그저 단순히 감정적인 에피소드로만 끝날 우려 역시 높은 장면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갈등에 대한 취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사실 치킨 배달부와 관련된 사건도 취재가 있었지만, <허쉬>와 비슷한 계열의 장르 이야기들이 지향한 태도로 본다면 이번 회차의 사건이 좀 더 취재다운 취재일 것이다. ‘한 사안을 두고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만을 다루는 게 기자의 몫인가.’, ‘객관은 주관의 집합으로 볼 수 있는데, 오직 객관화된 사실만을 위해 언론이 움직이는 것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등의 다양한 언론 관련 질문들이 존재하며, 11화는 그것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해당 사건을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로만 옮겨쓰거나, 어떤 비밀을 밝혀내는 등의 ‘탐정 놀이’로 전락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지수, 최경우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를 것이라 예상한 듯한 국장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악역을 만들어내지 않고 천천히 더 큰 문제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
출처 - JTBC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사안에서 생기는 갈등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이는 사실을 담은 기사와 함께 여론을 형성한다. 그리고 ‘취재’라는 신뢰성 강한 무기를 사용해 한쪽의 문제를 확실시함으로써 여론이 끓어오른다. 그리고 우리가 11화의 시작에서 본 누군가의 악의에 찬 뒷모습은 그 자체로 장르적인 힘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사에 설득력을 강화한다. 게다가 이것이 처음부터 언론이 의도한 방향이라는 것이 드러나며 사사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결국 ‘문제를 삼기 위해 어떤 문제를 먼저 만들 것인가’이다. ‘No Gain, No Pain’을 확실하게 지우는 방법으로 보였던 ‘물타기’는 단지 시작이었고, 상대진영으로 보이던 곳을 문제 삼은 뒤 ‘진짜 문제는 반대쪽에 있었다’는 것을 감정과 연결해 사실로 만듦으로써 눈엣가시였던 여론을 잠재우는 것이다.
또한 같은 뜻을 가진 듯한 진영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잘 믿지 못하는 작은 긴장감을 형성하며 이후 어떤 갈등이 형성될지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분명 국장과 안지윤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는데, 봉투를 거절하는 방식도 재밌지만, “주신다는데, 손이 작아 못 받겠습니까. 속이 좁아서 안 받는 겁니다.”와 같은 대사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장면뿐 아니라 캐릭터에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안일한 표현들
옥상에 양윤경의 무리가 모여있다. 한준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이것을 알릴지 고민하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김기하가 ‘허쉬’를 통해 내보내기를 원한다. 놀라는 주변 인물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소극적이었던 그의 행동과 분명 반대되는 지점이다. 물론 서사의 흥미는 인물의 ‘변화’를 양분 삼아 자란다. 문제는 그가 갑자기 왜 변했냐는 것인데, 이때 그가 외친다. “나 돌아갈래!” 경쾌한 음악이 시작되며 의기투합하는 그들의 모습이 이어지지만, 이 모습은 변화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해 유쾌함을 방패 삼아 나아가려는 안일한 태도로 보인다.
출처 - JTBC
또한 국장을 포함한 이지수의 주변 인물들의 대사 역시 문제이다. 그녀는 아직 기사를 쓰지 않았다.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기사다운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차원적인 악역을 맡은 이재은이 말한 것처럼 그간 이지수의 글은 논평이나 칼럼에 가깝다. 그런데 그녀의 글솜씨를 칭찬하는 대사들은 분명 ‘이지수’라는 캐릭터의 능력을 이야기로 풀어가기 어려워 다른 캐릭터의 입을 빌려 설득해보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억울하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게 된 누군가의 얼굴은 가장 효과적인 다음 회차의 예고편이 되었다. 덕분에 작품 초반에 15층으로 뛰어가던 한준혁이 이지수로 바뀐 것은 단순히 구조적인 변화로 흥미를 보여주려는 시도로만 보이지 않고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결국 연출 기법이든 상징이든 간에, 선택한 설정 안에서 설득력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들 역시 장점으로 작동한다. 음식이나 시각적인 기술은 그 이후에 필요한 것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