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들, 변해야 하는 것들.
한껏 축축했던 물기가 사라진 느낌이다. 그건 분명 매번 특정 음식으로 시작하며 그 요소가 등장하는 순간마다 함께 마주하는 감정들이 줄었기 때문이리라. ‘장어구이’와 ‘고기’, 이 두 음식이 해당 회차 전체를 관통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맡은 역할은 정확히 해내고 퇴장한다. 사실 회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로서 그 가치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매번 언급했듯 감정에만 치중되어 그 선택이 그리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여전히 제목으로 음식을 앞세우는 것이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작품의 중반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진짜 이야기들이 시작되며, 그 상징들이 힘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 음식들은 이번 두 회차의 음식보다 상대적으로 가격과 그 접근성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작품은 음식의 차이, 즉 변화를 보여주며 이야기의 정서적 차이뿐 아니라 진행에서도 볼 수 있는 그 변화를 좀 더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다시 말해 이야기가 중반에 들어서며 원래 하려던 얘기, 즉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익숙한 감정, 다른 모습
그렇다고 이번 두 회차에 감정의 순간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라진 구석이 있다. 한준혁은 친구인 검사를 만난다. 그는 준혁에게 진실을 말하고 옷을 벗겠다고 말한다. 그간 보아온 갑작스러운 감정의 분출이 예상되지만, 해당 장면은 밀도가 높고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그 ‘이유’가 다르기 때문일 텐데, 지난 회차들에서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늘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감정이 앞섰다. 그러나 이 술자리에서 그 내적 갈등은 우리가 해당 작품에서 기대해온 직업윤리와 그 신념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감정과 이성의 설득력 있는 충돌과 함께 깊이를 만들어낸다.
물론 비슷한 감정의 순간들 역시 존재한다. 다행히 심히 과잉된 모습으로 발생하진 않았지만, ‘간편한’ 또는 ‘단순한’ 방법으로 또 한 번 마주했다는 점이 아쉽다. 인물이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과거 연장자로부터 삶의 지혜나 그 의지를 재충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텐데, 이 때문에 캐릭터는 입체성을 잃고, 이야기는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그 인물들은 ‘내부고발 교사’, ‘권리를 위해 투쟁한 노동자’와 같은 인물이다.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늘 (장르적으로)정답을 찾아주는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의 심적인 변화에 대한 설득이 필요한 경우, 이를 통해 그 고민을 덜어주는 해결사로 등장하며, 이야기가 의도에 맞게 진행되더라도 긴장감은 떨어지게 된다.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후배들에게 시비를 거는 이재은(백주희)와 같은 캐릭터 역시 일차원적인 캐릭터로서, 그녀가 잘못에 대해 꾸지람을 듣는 장면을 통해 잠시 쉬어가는 순간만 만들며 기능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새로운 캐릭터와 돌출
새로운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기능적인 역할만 해내고 사라지거나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늘 발신자로만 존재하다 10화에서 처음 등장한 ‘구기자’의 경우 이지수의 ‘조력자’일지 ‘적’일지 아직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녀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어떤 갈등을 가져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한준혁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그저 오해할 여지만 던지고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존재감을 나타낸 새 인물은 분명 브이 뉴스의 대표 ‘안지윤’이다. 한준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완전히 믿음을 준 건 아닌 듯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을 만들어낼 캐릭터로 보인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 영향력이 해당 캐릭터의 위치 덕분인 것도 맞지만, 상당히 돌출되어 보이는 표현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연기’의 문제로 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건 상당 부분 ‘연기 연출’의 문제로 보인다. 언급한 것처럼 새로 등장한 그녀의 존재감이 필요하다. 15층이라는 무대가 드러나고 단순하지 않은 공간이어야 하기에 캐릭터를 통해서도 그 긴장감이 필수적이다. 마냥 즐거워 보이면서도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인지 과장된 캐릭터의 모습은 어느 순간 연극적인 느낌마저 전달한다. 물론 이 역시 나름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단순히 옷이나 변화한 톤으로 변화를 준 한준혁이라는 캐릭터의 어색함을 가리려는 의도 역시 일정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그녀가 한준혁의 ‘구원투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다른 인물처럼 소모적인 역할만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당구장과 언론, 그리고 고기
“당구공은 이 네모난 당구대라는 세계관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거다.” 당구와 기사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좀 갑작스러워 보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장면 속 대사엔 설득력이 있고, 이어질 내용을 위해 필수적인 장면이라는 점에서 분명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프레임 안에서만 이리저리 배치되는 기사들은 당구공과 달리 그 밖에서도 영향을 행사하며 이것이 바로 언론이 만들어내는 여론이라는 설명은, 감정에 기대지 않고 그 작동 원리를 쉽고 흥미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 장면에 힘을 부여한다. 그간 아쉬웠던 언론에 대한 묘사를 어느 정도 해소시키는 동시에, 한준혁이 이지수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지 의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15층에서 보여준, ‘No Gain, No Pain’을 지우는, 정확히는 그 영향력을 분산시키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흔히 말하는 ‘물타기’ 방식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이론적이기보다는 명료하고 언론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 역시 쉽게 이해 가능하기에, 이후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이번 두 회차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상징을 언급하고 싶다. 이미 언급한 ‘고기’에 관한 것이다. (‘육즙’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대사는 전달하고자 하는 게 명확하기에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준혁과 안지윤이 돼지고기를 먹는 반면, 양윤경의 무리는 소고기를 먹는다. 일단 이 상황 자체가 보여주는 역전된 모습(가격 차이가 나는 고기)에서부터 각본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안지윤은 70년대에 있던 ‘소고기 파동’을 얘기한다.
소고기의 값을 하락시키기 위해 돼지고기의 인식을 변화시킨 당시 정부의 방식 역시 언론이었다. 이 시퀀스는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번 두 회차에서 가장 좋은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안지윤이 소고기를 먹자는 한준혁에게 돼지고기를 먹자고 말한 건 일종의 ‘선 지키기’로 보인다. 호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무조건적 신뢰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라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신뢰로 뭉쳐있는 양윤경의 무리와도 비교되게 장면을 배치한 의도 역시 드러난다.
또한 돼지가 소보다 영양가가 높다는 논리를 펼쳐 여론에 변화를 만들어낸 역사를 언급한 것은, 돼지고기를 앞에 둔 한준혁의 목적이 겉으로 보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메시지를 함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를 온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시간 문제로 보이는 안지윤은 ‘돼지고기가 맛있으니 그걸로 됐다’는 듯 말하고, 이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그녀의 부정적인 미래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전환점과 태도
16화라는 회차의 길이는 아무리 미니시리즈 드라마라도 이야기 설정에 있어서 모든 회차에 힘과 설득력을 겸비시킬 만한 진행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작품의 전반부는 주요 이야기를 위한 초석과 그 진짜 목적을 위해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과정이라 해도 초반에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계획이 되고 만다.
일일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시작한 뒤 2주 정도가 지난 드라마라는 장벽의 높이는 쉽게 넘어설수 있는 그것을 넘어선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보여준 것이 ‘안일한 해결 방식’이나 감정에 치우쳐버린 ‘설득력 낮은 갈등’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이후의 관심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허쉬>의 이야기는 이번 주부터 좀 더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의아한 장면은 존재하고, ‘고수도 사건’ 역시 15층의 존재감으로 인해 몇 번의 언급이나 플래시백을 통해 그 역할을 힘없이 끝내버릴 것 같은 걱정이 생긴다. 치킨과 관련된 에피소드 역시 그렇게 소모 전력이 있기에, 떡밥을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이 해결해야 하는 지점이다. 부디 그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