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의 여름 나들이
폭염 주의보가 발행된 다음날 일요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더위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오늘은 잠을 푹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일찍 잠을 깨운 날씨가 원망스러웠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이미 뇌는 잠들기 힘든 상태였다. 그저 눈을 감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 아들이 잠에서 일찍 깨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빨리 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들려왔다. 얼마나 놀고 싶으면..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어제는 캐리비안베이 워터파크로 나들이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남들에게는 매우 특별하지 않은 워터파크 물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여름의 물놀이는 조금 특별했다. 작년 5월의 일을 회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약 1m 정도의 높이에서 장난을 치던 중 낙마하여 이마를 크게 다쳤다. 코피도 상당히 많이 쏟았고, 바로 응급실로 이동했다. 그래도 의식이 없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서 마음의 안정을 금세 찾았다. CT 촬영 결과 이마의 미세한 골절과 미세한 뇌출혈이 발견되어 약 1주일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다. 아무래도 뇌출혈이 있다 보니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은 뇌파검사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고, 중장거리 외출은 삼가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은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녀온 정기검진에서 미세한 뇌출혈이었고,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으니 이제 특별한 어지러운 증상이 없다면 병원 검진을 오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제 외출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번 물놀이는 아들에게 2년 만에 온 기쁨이었다. 아들은 출발하기 전부터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전날 준비한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아들과 나, 둘의 물놀이를 사실 다녀본 적은 없다. 항상 아내와 같이 온 가족이 함께 다녔다. 하지만, 격주 토요일마다 나에게 독서모임의 자유를 허락하는 아내에게 일요일의 한가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시도하기 두려워 아들과 둘의 여행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형 사고방식을 장착하여 시도해보았다. 역시나 처음 시도하는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나름 무난하게 보냈다.
자동차를 갖고 다니는 사람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차가 아닐까 한다. 캐리비안베이에 도착하니 역시나 주차가 문제였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목적지와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다른 이동 수단을 거치면 근심 걱정이 늘어나고 시간을 사용해버리니 당연하다. 자동차를 4번 주차장에 주차하고 (그나마 다행..) 에버랜드 셔틀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긴 행렬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개미들이 일렬로 땅속의 굴로 들어가는 형국과 비슷해 보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캐리비안베이로 입장하는 순간까지 30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빨리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아들은 보챌 만도 했는데 잘 견뎌냈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부모가 자제력을 소모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아들은 나름 자제력이 뛰어나다. 물론 인내심을 적절히 향상시키는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그냥... 절대로 그냥 향상되지 않는다.
입장과 동시에 흥분한 아들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혼자 아이를 감당해야 하는 날이기에 더더욱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람이 많이 있는 장소에서는 혼자 돌아다니면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 있으니 혹시라도 아빠와 떨어지더라도 "XX에서 만나자"라고 당부했다. 예전에 마트에서 흥분한 아들을 놓쳐버려 당황했지만, 아들은 울먹이면서도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찾아가 아빠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조금은 믿음직했다. 그래도 잃어버리면 걱정인 건 사실이니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라커룸에서 탈의하고 구명조끼를 장착한 아들은 기운이 펄펄 넘쳤다. 그래도 내 손을 놓지 않고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처음 방문한 캐리비안베이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선 가장 넓고 탁 트인 파도 풀로 향했다. 오션월드의 경험으로 파도 풀의 재미를 알고 있었다. 물을 발에 살짝 적시고 아주 짧게 준비운동을 했다. 아들은 하는 둥 마는 둥 마냥 신나 했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에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생처음 마주하는 파도 풀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그렇듯 아들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그래도 처음부터 무조건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삶의 목표를 이루는 방법과 같다. 작은 목표에서 조금씩 성취감을 맛보고 위대한 목표로 점차 나아가는 방법 말이다. 무릎까지 오는 물높이에서 파도를 맞본 아들은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허리의 물높이, 더 나아가 목까지 오는 물높이까지. 자신의 발이 바닥에 닿는 곳에서 몇 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유수풀로 이동했다. 캐리비안베이 유수풀은 물살이 빠르게 변하는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으로 나뉘어있다. 수심이 1m가 최대여서 아들은 아주 마음껏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 쳤다. 입장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의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빠. 뭐 좀 먹자." 그렇게 3시간 만에 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캐리비안베이는 베이코인 시스템이 있다. 먼저 베이코인으로 결제하고 시설 내에 존재하는 서비스를 코인으로 이용한다. 아들은 무려 닭꼬치를 두 개, 소시지 한 개를 흡입하고 다시 파도 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물놀이를 하면 허기질 것이 뻔했기에 아침 식사를 든든히 했지만, 모두 소화시켜버릴 정도로 에너지 소비가 대단했다. 평소에 음식을 잘 먹지 않던 아들이 대식가처럼 보였다. 아무튼 다시 즐기는 파도 풀에서 아들의 도전 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신의 발이 닿지 않는 수심 1.5m까지 전진했다. 아빠의 발이 닿는 수심에서 몇 번의 파도를 즐기더니 파도 풀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수심이 가장 깊은 곳까지 이동했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서 몇 번의 파도를 맞본 아들은 너무 재밌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 너무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사실.. 난 물놀이를 하면 온몸의 기운이 빠져서 매우 힘들다...)
파도 풀의 한 타임을 끝내고 집으로 이동했으면 좋으련만 다시 유수풀로 향했다. 점점 다크서클이 눈가에 생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에너지 넘치는 아들의 회포를 최선을 다해 받아줬다. 얼마간 신나게 논 아들이 다시 출출하다는 말을 했다. 또다시 분식을 먹고 집으로 향하지 않고 유수풀로 이동했다. 슬슬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전 9시 반에 출발한 오늘이 벌써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30분만 더 물놀이를 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고 아들에게 언질 했다. 놀고 싶은 만큼 신나게 놀았는지 "그래-!" 하며 쿨하게 반응하는 아들이 고마웠다.
캐리비안베이의 샤워 공간은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다. 미리 얻은 샤워 공간의 정보를 토대로 타월을 준비해서 무리 없이 샤워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아들이 많이 성장해서 혼자 해결하는 일이 많아 덕분에 힘이 덜 들었다. 그렇게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아이가 충분히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배려한다. 거의 녹초가 될 정도로 아들은 실컷 논다. 집으로 출발하는 자동차 안에서 아들은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안전벨트 해제 신호음에 눈을 뜬 아들은 "벌써 집에 왔네.."라며 단잠을 반증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반. 9시간 동안 아들과 단둘의 여행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빠 노릇 제대로 해서 아주 뜻깊은 하루였다. 수고했다며 아내의 오이팩 서비스를 덤으로 받는 귀한 하루였다. 아들은 잠자리에 들며 한마디 했다. "아.. 파도 풀..." 아무래도 다음번 물놀이도 파도 풀로 가야 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