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뉴스 기사를 보며 가장 마음이 아려오는 기사의 제목에 언제나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나도 한 때 염세적이어서 세상에 대해 원망을 많이 했다. 세상이 내게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불평불만을 입으로 배설했다. 그러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은 후였다.
책을 읽으며 편협하고 당위적인 나의 사고가 박살 났고, 불평불만할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나아 보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커리어를 토대로 업계로 진출하려고 시도하는 취업 준비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은 마음은 행동하게끔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그리고 우연히 구직 사이트에서 소셜 멘토링 잇다라는 기업을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정말 나에게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감히 잇다 멘토를 신청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자존감이 매우 낮아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의 멘토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신청한 멘토 심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났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도움을 받은 대상이 좋아하는 감정과 더불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존재했다. 그 당시에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기적인 마음이 맞다. 거기에 더해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 문화가 헬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도 다분히 들어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제 어떻게 도움을 줄지가 관건이었다. 잇다에 멘토 프로필을 만들고 질문이 오기를 기다렸다. 잇다에 멘토로 가입하면 멘티에게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멘티는 멘토를 검색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현업 멘토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 엔씨소프트, 넥슨과 같은 대기업이 아니어서인지 멘티의 질문은 도착하지 않았다. 뭐. 질문이 도착해도 걱정이긴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이 도착했다. 미용업에 종사하는 멘티의 질문이었다.
#멘티의 질문
서비스업 3년가량 그리고 미용업계에서 2년가량 일을 하고 있는 스물네 살 직장인입니다. 게임을 너무 좋아하고 관심도 굉장히 많습니다. 최근에 일을 하다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해 보았는데 게임 기획이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전공도 생뚱맞은 미용에 인정받은 대학도 아닌 전문학교 졸업생입니다.
게임 기획 일을 하려면 학원을 다니는 게 가장 좋다고 하던데 집이 조금 형편이 어려워서 제가 일을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기가 힘들고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을 쉴 여건도 못되고요. 그래서 알아본 것이 QA나 GM으로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아는 게 생기면 기획 쪽을 도전하는 것인데 이게 괜찮은 방법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전문 지식이 없어 QA GM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쪽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취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다른 분야로 가겠다고 힘들게 마음먹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주변에 아는 분도 없고요.. 제 상황에서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것은 무리일까요? 아니면 제 상황에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글이 두서없고 정신없지만ㅜㅜ 저에게 멘토님의 답변이 꼭꼭 필요합니다.
답변을 남기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글쓰기 역량은 그 당시만 해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멘티의 입장에서 생각도 깊게 해 봤다. 결국 내 그릇 안에서만 가능한 고민거리지만 그래도 최대한 답변을 정갈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대략 답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용업에서 게임업으로 분야를 바꾸려면 일단 게임 개발 분야가 어떤 직군이 있고, 각 직군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고 적었다. 게임 기획 직군을 희망하고 있는 멘티에게 게임 기획 직군의 세부사항을 알려주고 QA와 GM의 업무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멘티의 질문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져,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렇게 첫 멘티의 질문으로 잇다 활동이 이어졌다. 여러 명의 질문을 받고 첫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오프라인 모임에서 느껴졌다. 꾸준히 멘토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첫 질문을 남긴 멘티에게서 다시 질문이 도착했다. 그런데 질문이 아니라 취업에 성공한 감사의 편지였다. 미용업에서 게임 개발업으로 전직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전문 기술직이 아닌 품질관리팀으로 입사했지만, 멘티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나를 전율케 한건 바로 내가 근무하는 건물의 바로 옆 건물이었다는 점이다. 그 순간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회사 1층 로비에서 멘티를 만나 취업 스토리를 들었다. 나의 조언을 듣고 자신이 2년 동안 즐겨했던 게임을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제작하여 여러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려 세 곳에서 면접을 진행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스펙? 학력? 물론 중요하고 필요해 보이지만 어느 하나에 깊게 몰입하여 얻는 능력을 따라가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취업이 어렵다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스펙 하나 변변하지 못한 멘티가 다른 업종으로 직장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는 자존감이 낮은 나에게 멘티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세명의 멘토에게 같은 질문을 보냈지만, 할 수 있다고 도전해보라고 대답해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멘티가 말해주었다. 그 점을 가장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나는 타인에게 할 수 있다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전하면서 스스로 고정형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멘티의 도전을 보며, 시도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깊이 반성했다.
멘티의 성공적인 이직을 축하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타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멘티가 도움을 받고 무언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가 얻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타심은 결국 나의 뿌듯함을 채우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적절히 조합하면 궁극적으로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감정이다. 누군가를 돕고 그 대상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같이 즐거움에 전염되는 이기적 이타주의자! 헬조선을 헬로조선으로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많이 늘어나 아이가 활동하는 시대에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