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열정페이)
결혼 후 1년 6개월 뒤에 아이가 태어났다.(2010.03 생)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와 맞물려 회사의 업무는 굉장히 바쁘게 돌아갔다. 게임 개발의 막바지에 이르러 매달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 그와 더불어 몇 달 후에는 대대적인 홍보를 위해 SK 문학 야구장으로 이동하여 개발한 캐릭터를 야구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3년 동안 치열하게 개발하며 한 가지 충격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개발 과정이고 아직 서비스로 매출과 영업 이익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게임 출시만을 바라보며 숱한 야근을 토대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잠을 줄여가며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도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지 않았고, 자차를 이용해서 조금 늦은 퇴근길에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개발 회사들이 모두 일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조금 늦은(?) 12시를 넘긴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연봉협상에서 발생했다. 보통 협상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통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협상은 서로의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 간극을 조정하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연봉을 이렇게 책정했으니까 서류에 사인을 하라는 식이다. 이런 행위가 통보가 아니고 어떻게 협상이라는 건지 이해불가다.
한 사람씩 대표실에서 연봉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이 시무룩했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은 연봉 인상률임에 틀림없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대표실로 노트를 한 이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고 현재 연봉에서 10%가 넘는 금액을 인생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봐야... 연봉이 낮으니까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물론 누군가는 10%면 엄청난 금액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첫해에는 연봉 동결로 다음 해부터 조금씩 오르던 상황이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매우 고된 작업으로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두 번이나 치르며 '게실염'이라는 스트레스 장염이라는 질병까지 얻어 10일간 금식 치료를 했었다. 이전 직장에서 보낸 1년 미만의 경력은 연봉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취업을 해야겠다 마인드는 대표이사의 말에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전에 다니던 회사와 동일한 연봉에 사인을 해버렸다. 그 후로 회사에서 3년을 열심히 일하며 개발의 초기 과정부터 서비스 단계까지 차분히 프로세스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이가 태어난 만큼 나의 연봉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면 힘이 더 날 듯 보였다. CEO에게 올해 아이도 태어나고 베타테스트로 업무 외 근무도 상당히 많이 해서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안 되겠냐고 약간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지금 이렇게 상향한 금액도 아이가 태어난 상황을 고려하여 인상한 금액이라고 CEO는 대답했다. 팩트인지 모르겠지만, CEO의 입에서 그런 배려 모습이 나타나서 군말하지 않고 수긍하여 계약서에 사인했다. (너무 순진했나...)
연봉 협상을 모두 끝내고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웠다. 그러면서 다들 연봉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물어봤다. 사실 연봉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사내 규칙을 어기는 행위라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연봉이 어느 정도 상승했는지 정도는 공유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들의 연봉 인상액은 나와 동일했다.
"아니.. 나에게 아이가 태어나서 신경 써준 금액이라고 했는데 너희와 똑같은데?"(크게 배신감을 느낀 동등한 연봉 인상액)
순간 깊은 빡침을 느꼈다. 입에 발린 말로 나를 그저 안심시키려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하며 변명한 CEO의 모습이 너무나 야속했다.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모두에게 비슷한 연봉 인상 금액을 결정했다고 했으면 오히려 더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봉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에는 마치 나를 전적으로 위하는 것처럼 행세를 하더니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금액으로 연봉을 인상한 상황이었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각자의 맥락이 있고, 누가 더 정성적으로 회사에 기여했는지 정량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더 신경을 쓴 것처럼 교묘하게 연기를 했던 CEO의 행태에 불만이 폭발했다.
연봉 협상의 비하인드스토리를 듣자마자 직원의 사기는 꺾어지기 마련이다. 개발한 게임의 론칭이 다가오는 중요한 커리어 시점을 악용한 사례가 틀림없었다. 중요한 커리어 시점에 연봉의 불만으로 퇴사한다면 오히려 손해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커리어의 정점인 게임 서비스까지 버텼다. 어떻게 보면 그 CEO는 열정 페이를 논했던 게 아닐까.
열정 페이는 취업하지 못한 젊은 층에게 일부 악덕 고용주가 열정을 근거로 어뷰징 하는 케이스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그렇지만 열정 페이는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회상에 관한 용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은 5인 이상의 기업에서 야근하는 연장 근무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건 근로기준법 56조 위반이라고 문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근로 상의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이었기에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열정 페이라는 단어는 2011년부터 인터넷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다. 이와 더불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악덕 업주의 당연한 행태에 불만을 표시하는 각종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널리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지옥과 조선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기본적으로 사상의 밑바탕으로 자리 잡아서 사회 문화가 어디서부터 변화해야 할지 상당히 어려운 지점에 봉착했다. 더군다나 더욱 어려워진 취업 준비생의 일자리 얻기는 사회의 엄청난 인력 낭비로 나타난다. 기업은 직원 노동의 합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물론 개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고, 그 결과의 이익을 공유하는 바람직한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센티브 제도 자체가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주인의식이라는 신념을 심어주기는 부족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에 투명한 경영방침과 재무제표를 공개하여 일개 사원에게도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는 회사의 운영을 보면 소속감을 누군가는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회사에 많이 지면 다른 회사로 이직 확률은 분명 줄어들고 근속연수를 점차 늘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환경을 구축하려고 노력할지 모른다.
투명함은 기업에게 굉장히 필요한 덕목이다. 단지 리드 그룹이라는 한정된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말단에 위치한 사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서 주인의식을 느끼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자신은 모든 권한을 손이 쥐고 있어서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조직을 운영할지 훤히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을 공유하지 않으면 당연하게도 일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 공유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각자의 상황에서 회사의 운영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위기 상황이라고 언급하면 사기 저하가 될듯하여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공유하지 않는다면 주인의식은 절대 사원의 내면에 생길 리 만무하다.
우선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며 앞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갖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이겨낼 수 있다는 말 한마디는 조직의 운영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원이 사기가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현실로 위험이 코앞에 나타나면 직원들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배신감이 내면에 가득 찬다.
직원의 주인의식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투명한 조직의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비전과 방향성으로 나아갈 것인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여러 의견을 듣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주인의식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직원의 내면에는 언젠가 떠날 회사라고 생각하여 타성에 젖어 회사를 다닐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과연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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