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혼인 신고 잠시 미루자..

그녀가 건넨 말.

by 곽준원

아내와 나는 소개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색다른 계기로 서로 만났다. 큰집 형수님의 소개로 연결점이 닿아 아내를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한참 새로운 나의 반쪽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 차례 시도하다 지쳐가는 찰나에 찾아온 기회였다고 본다. 한 해 동안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시던 이모님의 소개가 번번이 실패하면서 집안 어른의 소개는 더 이상 받지 않고 내가 직접 원하는 여성을 찾으려고 선언하던 시기였다.


"형수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한 번 만나는 봐라"


어머니에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고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내 짝을 찾겠노라고 언급했다. 어머니도 이번에도 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름과 키, 전화번호가 정갈하게 적혀 있는 명함을 어머니로부터 건네받았다. 항상 연락처를 받으면 왜 남자부터 연락해야 하는지, 그게 왜 매너인지 모르겠지지만 우선 시키는 대로 먼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며 연락했다. 회사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전화하는 통에 빠르게 만남 시간을 약속하고 업무를 하려고 했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약간 적대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안녕하세요. XX 씨 전화 맞나요?"
"네. 맞는데 누구신가요?"
"이번에 소개로 연락하게 된 XX입니다."
"네? 저는 그런 연락받은 적 없는데요."
"네? 이야기 못 들으셨나요?"
"네.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뚜뚜뚜...

그녀와 처음 통화한 내용...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굉장히 적대적으로 통화를 했던 상대방이 야속하기도 했다. 꼭 그렇게 전화를 받았어야만 했을까. 상당히 까칠하게 전화 통화를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분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가 없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니? 잠깐만 기다려봐라. 알아보고 연락하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해 보라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상황이 인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아무리 그래도 형수님이 신경 써서 주선해 준 소개라서 어느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언제 만날까요?"
"토요일 점심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그때 뵙죠"
"네. 알겠습니다. 점심 2시에 XXX에서 뵙죠"


그렇게 소개를 받은 그녀를 만나기로 매우 손쉽게 약속했다. 전화를 걸었던 날이 수요일이었으니 바로 그 주 토요일에 만남을 성사시켜 버렸다. 그녀도 나도 지겨운 소개로 인한 만남을 되도록이면 빨리 해치우고 마음 편히 자신의 짝을 찾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래도 둘 다 기대감이 제로인 채로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1514012.jpg?type=w1

약속한 토요일에 나름 세미 정장을 차려입고, 약속시간에 늦는 걸 매우 싫어하는 타입이라 20분 일찍 도착하여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으로 얼굴을 확인하지 않은 터라 약속 장소에 기다리는 여성이 있으면 설렘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니 도착하면 전화가 오리라 예상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인사를 짧게 건네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길을 거닐었다. 간단하게 서로의 소개를 마치고 우리는 오후 2시에 만나 점심 식사는 하지 않고, 카페로 이동했다. 각자 마실 차 한 잔과 조각 케이크로 하나 주문하고 어색함을 이겨내고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르바이트생이 주문한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한마디



그런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 생도 급여를 받고 일하지만 고된 일임에 틀림없어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생활했다. 그런 나의 태도와 말에 그녀는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소개로 만난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꺼낸 사람이 없었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첫 만남부터 이야기꽃을 피우고 서로 1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주고받았다. 지금 기억으로 자주 함박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첫 만남부터 호감을 갖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다.




결혼을 금방 해버렸어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도 삼천동을 손잡고 함께 산책하다가 불현듯 꺼냈다. 그녀는 매우 당황하면서도 흔쾌히 '좋다'라는 반응으로 대답했다. 누군가는 멋진 프러포즈 이벤트를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평생 화젯거리로 등장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뜬금없이 이야기해서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벤트 회사에 연락해서 무드 있는 레스토랑이나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며 프러포즈를 했다면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빠르게 상견례를 마치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와 나의 사고방식은 대한민국의 결혼제도에 불만이 많았던 터였다. 그래서 서로 예물과 다양한 행사를 제쳐두고 간단하게 식장을 예약해서 결혼식을 진행하자고 합의했다.

1513819.jpg?type=w1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자리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이 가장 귀하다. 그래서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동안 공들여 키운 자신의 딸이 대접받기를 원한다. 어디가 부족해서 그런 대접을 받느냐는 식의 욕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역시나 아들의 결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처가에서 대접받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서운해한다. 서로가 원하는 수준의 차이가 발생하면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어떻게 정확히 반반으로 나눠서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 어느 하나가 채워지면 다른 하나가 부족해지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 부모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그 합의를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만이 있지 않았다. 그녀와 결혼 준비를 하며 다양한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열심히 신혼여행지를 알아보던 그녀는 나에게 왜 자기만 알아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현했다. 나는 내가 직접 알아보면 꼭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가면 분명 싫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양보하는 거라고 나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런 말을 듣고 그녀는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고 이해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서 나오게 되었다. 드디어 결혼식이 끝나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감에 그대로 한참을 수면에 빠졌다. 신혼여행지로 휴양지를 택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약간의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피곤한 몸을 휴식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다. 후회 없는 휴양지에서 보낸 신혼여행이었다.



혼인 신고를 미루자는 아내...

g21dedc89aa88ceb0dd96bbfd5f4326c2e997d4c97750b8f1d5978f4ae2625c6a3f8cf0580c3.jpg?type=w1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 본격적인 부부 생활이 시작됐다. 연애하던 시기와 다르게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건 여러모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30년을 넘게 자란 탓에 누군가는 치약을 앞에서부터, 누군가는 뒤에서부터 짜는 습관조차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소함이 모여 갈등은 시작한다.


평소에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부엌에 아버지가 서 있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둘이 끼니를 해결해야 할 경우에도 요리라고 하기도 민망한 라면을 항상 내가 끓이곤 했다. 아버지는 부엌 일이라곤 절대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힘들게 밖에서 경제활동하는 아버지의 역할에 선을 긋고 부엌일은 홀로 도맡아 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에게 부엌일은 아내의 몫으로 당연해 보였다.


이런 '당위적 사고'는 서로의 갈등을 일으키기 게 충분했다. 각자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한집에 모인 우리에게 저녁 식사 준비는 아내의 몫이었다. 물론 설거지와 집안의 청소는 나의 몫이었다. 어느 정도 집안의 일이 분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힘들어하는 아내의 말에 대꾸한 나의 말이 화근이 되었다.



"아니. 그거 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 한마디



증권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내는 야근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나에게는 야근이 디폴트였다. 그래서 야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저녁 식사 준비가 힘들다며 투정 부리는 아내의 모습이 마뜩잖았다. 그런데 내가 한 말 한마디에 아내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신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과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나에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couple-4641033_1920.jpg



"우리 잠시 혼인 신고는 당장 하지 말고 생각해 보자"

신혼 초에 아내가 건넨 말



신혼여행을 다녀와 1주일이 지난 시점에 혼인 신고를 하려던 찰나에 아내가 청천벽력의 말을 꺼냈다. 속으로 그게 그렇게 크게 마음 상할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어색하게 며칠을 지내고, 주말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잠깐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건의했다.


아내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함께 맥주를 마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야근하면서 내가 많이 지쳤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이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내도 우리가 아직 알아가는 단계라서 그런가 보다며 이제 막 시작하는 신혼부부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현재는 13년 차 부부로 살면서 서로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 배려하며 익숙해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잦은 말다툼과 오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배려하지 못한 경우도 존재하지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다 함께 살아가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평생을 함께 할 정도로 중요한 선택을 내린 만큼 이렇게 하면 내가 손해 아닐까라는 생각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더욱 내가 먼저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게 몸소 실천이 안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나의 생각대로 아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최선을 다해 자신을 아껴준다고 느끼고 있고, 그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도 아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다른 환경에 자란 사람이 함께 만나 살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신혼부부 #치유글쓰기 #혼인신고 #이해 #배려 #감정일기 #이상한마음서재 #호두앤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집에서 나가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