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하나의 트라우마는 어는 날 문득 찾아왔다. 어떤 사건으로 어머니에게 혼쭐을 났는지 기억이 없지만 나는 내가 집에서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단 조건이 있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운동화는 모두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벌은 돈으로 구입한 물품이라서 모두 집에 놓고 나가라는 조건이었다.
결국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강제로 옷은 다 벗겨지고 알몸으로 문밖으로 쫓겨났다.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었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이야기다.
나름 싸늘한 가을 저녁에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하던 때라 알몸으로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1시간은 족히 지난듯싶다. 같은 층에 거주하는 다른 아파트 주민이 지나가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 시절에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하다.
아파트 복도가 아닌 길에서 걷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에도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미어지는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하염없이 시간은 흘렀다. 오히려 문을 두들기며 열어달라고 소란을 피우면 옆집에서 사람이 나올까 봐 두려워 전혀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꼼짝하지 않고 어머니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하염없이 긴장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알몸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다.
그저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지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서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다행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는 한 가지 공포증이 생겼다.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남들보다 심각하게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고, 예상하지 못한 소리를 들으면 극도로 예민해져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인 상태로 지냈다.
그저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싫다는 생각으로만 오랜 세월을 지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트라우마'라는 증상을 알게 되었고, 정신분석을 토대로 지난 과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깊은 상처는 아니라도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주일에 3일은 재택근무를 진행 중이다.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진 만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확실히 늘었다. (좋은 거라고 믿고 싶다... ㅜㅜ)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학교를 1주일간 등교하는 주간( 2.5단계 이전)에 하교할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찍 집으로 귀가했다. 귀가하기 전에 담임 선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꼭 알려달라는 통보였다.
왜 그런지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담임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KF-94 마스크를 쓰고 수업 시간에 말하기가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닌데, 아이가 수업 시간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방해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수업에 방해를 계속할 거면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는 선생의 호령에 그대로 가방에 책을 넣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나는 아이가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내비쳤다. 하교와 똑같이 가방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후에 아이를 방으로 불렀다.
"무슨 일이 있었어? 왜 이렇게 일찍 학교에서 집에 온 거야?" 아이는 울먹이며 억울하다는 말을 꺼냈다. 자신은 수업 시간에 떠들고 싶어도 잘 참다가 한마디 말했는데 때마침 모두 조용한 시기와 맞물려 엄청 크게 들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담임은 계속 떠들었다고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왜 담임의 엄포가 더 이상 떠들면 안 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집에 오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1년 전 담임은 엄중한 벌로 수업에 방해되는 아이를 직접 가방을 정리하고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런 선행 학습으로 담임의 엄포에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방어적인 담임의 전화 통화에 아내는 선생님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아이는 우리가 잘 달래보겠다고 신중하게 대처했다. 이러한 반응으로 담임도 자신이 참지 못하고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 반성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가끔 속마음과 반대되는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그리고 점차 반항심이 생기는 발달 과정은 반드시 나타난다. 이런 반항심이 생기는 시기에 부모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집에서 나가서 살아"라는 말로 아이를 협박한다고 해도 아이는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을 수 있다.
훗날 다 큰 어른이 되어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 이야기하셨는지 물어보는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내가 듣고 진짜 집에서 나갈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알몸으로 나를 집에서 내쫓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서로 간의 오해는 큰 트라우마로 발생할 수 있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한다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며 협박의 용도로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한 마음이 오히려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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