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준원 Apr 08. 2021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해도 무기력한 이유

어린 시절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동네 시장을 돌아다니는 기억이다. 어머니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셨고, 삶의 힘듦을 역으로 해석하셨다. 고생하는 그들과 다른 풍족함은 커다란 편안함뿐만 아니라 마치 죄인이 된듯한 감정이었다. 베풀며 살아야 하는 삶을 매번 강조하셨다. 그리고 지금의 편안함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정작 어머니의 삶에서 느끼는 아픔은 절대 표현하지 않으셨다. 자신보다 훨씬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골다공증으로 오랜 기간 병원을 다니셨어도 아들인 나에게 아프다는 취약성을 내비치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더욱 잘해야 하고 역지사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부모님의 양육은 오히려 내 자아를 고립시켰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무언가 부족하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잘할 수 없지만, 잘하는 척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오히려 이런 행동으로 타인에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인식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언제부턴가 주변에 사람이 점차 사라지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인격이 아닌 내면에 자리한 고유의 마음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파악한 사람들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지금도 오랜만에 연락해도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매우 극소수의 사람뿐이지만 말이다. 직장을 옮기거나 자주 만나는 상황이 아니면 점차 멀어져 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새벽까지 업무 연장에도 괜찮았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기운이 남아 있으면 언제나 괜찮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에게 피해 주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버텨주지 못하는 신체가 되어버리자 죄책감은 더욱 짙어져갔다.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생겼다.


<괜찮다는 거짓말>에서는 이처럼 완벽한 모습을 이상향으로 가치를 둔 사람들의 심리를 파헤친다. 완벽주의에 가려져 보살피지 못한 자아는 분명 외롭고 우울하다. 이러한 내면의 모습을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고 30대에는 그야말로 사회적 괴물로 살았다. 가족을 돌보는 가장의 무게감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홀로 짊어지고 압박을 이겨내려 했다. 때로는 압박감에 힘겨워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해버리면 잊어버리겠거니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표현하지 않고 쌓여있는 내면의 고립, 우울, 상처는 차츰 하나둘씩 금을 깨고 울타리를 벗어나려 했다.


이러한 심리 상태를 자각하기까지 그리고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 정신과 육체는 괜찮지 않았다. 힘들면 타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쳐야 했지만, 그 한마디가 너무나 내뱉기 힘들었다.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마치 모든 사람이 비난하고, 내 곁을 떠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우울한 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그들은 떠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곁에 남았다. 이러한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고, 낯설었다. 그들이 한편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조금씩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비난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최선을 다했다. 사실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강한 욕구가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거짓말을 파헤치기


<괜찮다는 거짓말>에서는 이처럼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우울과 불안에 대해, 그리고 이런 증상의 다양한 표출 방식을 설명하여 통찰력을 심어준다. 현대 사회는 정신질환의 시선에 변화가 생겼지만, 정신과 진료라는 기록은 사회생활에 어두운 낙인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대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러한 불안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자신의 이야기에 이름과 새로운 얼굴을 입혀야 한다.


특히 지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고 남기는 행위가 치유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과거의 상황과 함께 감정을 표현하는 글쓰기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감정 상태를 점검하는 에세이,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는 일기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준다. 이런 과정이 바로 자신의 숨겨진 우울을 발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 이해하기

<괜찮다는 거짓말>에서는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의사나 상담사가 내릴 수 있는 진단명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DSM-5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찾아볼 수 없어서 정신질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증후군으로 복합적으로 특정한 장애나 문제를 암시하는 여러 특징이다.


완벽주의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사람들은 그 불가능한 무언가를 이루려고 기력을 소진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고통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강한 자아비판이 뒤따라온다.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어떤 일을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주의자는 실패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악순환은 자아를 탈진 상태까지 몰고 간다.


게다가 휴식을 얻고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걱정이 뒤따른다. 걱정은 통제 욕구를 부르고, 통제 욕구는 다시 더욱 거대한 책임감을 부르며, 결과적으로 정신과 육체는 지쳐버린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숨겨진 분노와 억울함이 겉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생각에 도움 요청을 뒤로 미룬다.


세상엔 나보다 훨씬 힘든 사람들이 많아
<괜찮다는 거짓말>


물론 역지사지의 정신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동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간을 할애하여 알아내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연민이다. 건강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슬프거나 속상한 감정을 견디는 방법을 배운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자기 자신을 달랠 줄 안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우울증이 활력 결핍 상태라면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자기수용이 결핍된 상태다. 자신의 다양한 상태를 면밀히 바라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의 치료제는 자기수용이다.


<괜찮다는 거짓말>에서는 완벽주의의 세 가지 유형을 언급한다. 자기 지향적, 타인 지향적,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가 있다. 가장 증상이 심각한 유형은 바로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태로, 잘하면 잘할수록 더 잘할 거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한다.



나의 꿈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욕심이 끝이 없던 부모님 밑에서 어디까지 해야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진 꾸지람에서 흘린 눈물도, 성적을 받아온 날 아버지의 한숨 섞인 표정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도 왜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가족 그 누구도 어떤 기분인지 알려주지 못했고,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지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렇게 40년을 넘게 살아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다시 기운을 차리면 또다시 타인을 만족하려는 완벽주의로 정신과 육체는 피폐해졌다. 그리고 다시 깊은 무기력에 빠져 주말 시간에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휴식을 취했다. 통제하려는 욕구는 더욱더 강력해졌지만 육체는 나이가 들수록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무기력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동기 부여 영상을 만났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혜와 지식이 담겨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 분야를 알게 된 이후 오랜 세월 진짜 자신을 숨기면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게 되었다. 왜 마음속에 공허함이 가득하고 상실감이 몰려왔는지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역지사지의 정신은 훌륭히 이어나갈 신념이다. 그런데 타인을 생각하며 베푸는 만큼 스스로에게도 자기 연민이 필요했다. 여전히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나의 꿈이다. 그 꿈의 영역인 사회에는 타인도 존재하지만, 나 역시 사회에 포함된다.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방향도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 근육을 단련해본다. 이러한 변화, 성장, 치유는 과정이다. 어떤 목적지가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기에 여정이라고 부를 것이다. 함께 여정을 떠나보면 어떨까.



참고 도서 : 괜찮다는 거짓말

저자 :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

출판 : 북하우스

발매 : 2020.09.21.



#괜찮다는거짓말 #마거릿로빈슨러더퍼드 #북하우스 #심리학 #이상한마음서재 #독서모임 #위아크 #WeArC #서평 #완벽주의 #강박 #역지사지 #자기연민






이전 02화 마음이 공허하여 흐르는 눈물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