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의 정체: 조급함
그 시기의 저는 늘 답답했습니다. 그 답답함은 외부에서 온 게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조급함에서 나왔습니다.
“빨리 바꿔야 한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 더 나아지지 않으면 우리는 위험해진다.”
저는 계속해서 ‘지금’에 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숨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바라던 건 단순히 개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회사의 낡은 시스템과 코드를 아래에서 위까지 통째로 갈아엎고 싶었습니다. 어디 하나 덜컥거리는 구석 없이, 모두가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재정립하고 싶었습니다. 속도, 효율, 관리 가능성, 유지 보수성은 제가 가진 기준에서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였습니다. 그 '정상'은 공동의 합의가 아닌, 제 기준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쓸 도구라면 제 기준의 '정상'은 곧바로 장점이 됩니다. 하지만 팀 전체, 조직 전체가 같이 써야 하는 시스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가 혼자 0.1초 빠르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안정적으로 계속 쓸 수 있는 게 중요한 겁니다. 말하자면, 저는 '내가 보기엔 이게 답이야'라고 믿었던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이게 답이야'로 너무 빠르게 밀어붙이려 했던 셈입니다.
당시의 저는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혹은 이해해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답했습니다. 왜 이 당연한 걸 모두가 바로 따라오지 않지?라는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 답답함은, 사실 제 안의 조급함이었습니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다.”
“빨리 안전해지고 싶다.”
“빨리 덜 불안해지고 싶다.”
취약함을 약점으로 취급하던 사람
제 안에는 또 하나의 습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인정하면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개발 일을 하다 보면 모르는 게 반드시 나옵니다.
언어 특성부터 OS 레벨의 문제, 네트워크 전달 구조, 렌더링 파이프라인, 해상도 대응, 타사 툴의 포맷, 빌드 환경의 꼬임까지.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모르면 묻습니다.
협업이란 결국 '네가 아는 걸 나에게 나눠줘, 내가 아는 걸 너에게 나눠줄게'라는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약속을 쉽게 맺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모른다라는 말을 약점으로 번역해 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묻는다 = 내가 이걸 모른다는 걸 드러낸다 = 내가 조금 덜 유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 내가 잡힐 틈을 준다.”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건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권고사직 두 번, 구조조정, 팀 해산,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 그런 경험은 저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약하면 잘린다.”
“틈을 보이면 밀린다.”
“회사라는 곳은 네가 흔들리는 순간, 네 자리를 누군가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일종의 갑옷으로 감쌌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처럼 굴려고 했습니다. 저 사람은 강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건 강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두려움의 위장에 가까웠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은 결국 몸을 갈아 넣는 방식이었다
취약함을 감추고 약점이 없는 사람처럼 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겉으로 보기엔 평정심입니다. 실제로는 내부 압력입니다. 저는 점점 더 불안해졌습니다.
불안은 공포로 바뀌고, 공포는 스트레스로 바뀌고, 스트레스는 분노로 바뀝니다. 그 분노는 크게 소리치는 분노일 수도 있고, "왜 이렇게밖에 못 해?”라고 스터디에서 툭 튀어나오는 냉소일 수도 있고, 신입의 자세 하나 보고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라고 쏘아붙이는 날 선 공격일 수도 있습니다.
즉, 밖으로 나온 순간에는 ‘지적’과 ‘통제’의 형태로 보이지만 출발지는 사실 제 안의 공포였습니다. 이 공포는 회사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퇴근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로 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육아에 투입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동네를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시간. 울음을 그치게 하려 안고 흔들어주며 골목을 천천히 걷는 그 시간. 그 시간은 겉으로 보면 ‘다정한 아빠의 모습’ 일지 모르지만, 제 마음속의 서사는 달랐습니다.
“나는 아직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육아는 누가 봐주겠다고 해서 자리를 비워주는 형태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와의 시간은 실제로는 ‘돌봄’이 아니라, ‘전투’에 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아이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전부입니다. 저는 제 감정을 조절할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시간은 없었습니다. 일 끝나고 돌아오면 육아, 육아 끝나면 탈진, 탈진 상태에서 잠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회사. 반복. 이 과정에서 아내와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은 있었지만, 함께 연결되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있었지만,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독박 육아로 점점 말라가고 있었고, 저는 회사의 책임과 압박으로 점점 날이 서 갔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돕고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은 점점 적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다.”
저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제 자신에게 '충분하다'라는 말을 한 번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우리 둘 사이를 소모시키고 있었습니다.
탈출구는 ‘일’이었다
인간은 숨 쉴 구멍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의 저는 숨통을 일에서 찾았습니다. 모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너를 그렇게 괴롭히고 있는 그 일에서?’라고 묻고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상황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맞았습니다.
일은 그나마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집은 통제할 수 없는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원한다고 그만 울지 않습니다. 밤중에 깨우지 말자고 합의할 수도 없습니다. 육아에는 '효율 개선안'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은 다르게 굴러갔습니다. 코드와 시스템은 제 손에서 반응했습니다. 제가 파고들면 반응했고, 파고든 만큼 바뀌었습니다. 버그는 수정되었고, 구조는 정리되었고, UI는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통제 가능성.
예측 가능성.
완료라는 감각.
저는 그 감각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중독에 가까웠습니다.
UI 전면 개편
그 시기에 내부적으로 UI 전체를 뜯어고치는 대규모 이슈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면 개편이었습니다.
문제: 큰 일이고, 복잡한 일이고, 시스템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장점: 제대로 끝내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확실합니다.
쉽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작업. 그런데 제 스타일을 잘 아는 동료 한 명이 저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이거 같이 하자.”
그 동료는 저와 결이 잘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몰입 방식을 알고, 제 속도를 알고, 제가 어느 정도까지 파고드는지 아는 사람. 쉽게 말하면, 제가 과열되어도 겁먹고 물러서는 대신 같이 타주는 타입이었지요. 그 제안은 저에게 거의 구원의 손 같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시스템인데 괜찮겠어?”라는 질문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시스템인데 같이 하면 될 거 같은데?”라는 권유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너는 이 부서에서 여전히 가치 있다'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네가 이렇게까지 몰입하는 방식, 나도 같이 타볼게”라는 동료의 신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말은 제게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5개월 동안의 몰입
우리는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5개월 동안, UI 전체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었습니다. 기존 UI 로직이 쓰고 있던 데이터 바인딩 방식, 그리는 순서, 상태 관리 구조, 요소 간 의존성, 재사용 가능성, 리소스 관리, 퍼포먼스 병목까지 전부 다시 짰습니다. 이건 단순 리뉴얼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사실상 재설계에 가까웠습니다. “비주얼을 새로 입혔습니다”가 아니라 “엔진의 특정 층을 새로 바꿨습니다”에 해당하는 종류의 일.
말만 들으면 대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성과로만 보면 칭찬받을 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기간 동안 제가 어떻게 살았느냐입니다. 저는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다음 날 다시 오고, 또 앉아서 작업하고, 또 검수하고, 또 뜯고. 집에 가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집에 가서도 머릿속은 UI였습니다.
아이는 제 몸에 기대서 잠들었지만, 제 머리는 UI의 상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5개월은 시스템적으로 보면 큰 성취였고, 회사 입장에서 보면 효과적인 추진력이었습니다. 팀 안에서 '저 사람이 있으면 저 정도까지는 밀어붙일 수 있다'라는 신뢰도 쌓였습니다. 하지만 제 가정 안에서는 다른 숫자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체력 고갈.
아내의 고립감.
아내의 외로움.
아내의 피로 누적.
그건 회사의 성과표에 적히지 않는 손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삶 전체로 보면 아주 명백한 손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버텼고, 누군가는 무너졌다
그 시기 저를 보면 이런 말이 가능합니다.
“진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를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버텼다.”
저는 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당연히 힘들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나도 숨 좀 돌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더 벌어야 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구조야'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이건 아내의 현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제 부담을 정당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건 잔인했습니다. 아내는 제 대신 아이를 들고 있었고, 저는 아내 대신 회사의 책임을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무거운 걸 들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얼마나 무거운지까지는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함께 사는데도, 서로는 점점 더 외로워졌습니다. 이 제목은 사실 약간의 역설입니다.
저는 그 시기에 답답함을 이겨냈다고 믿었습니다. 일에 몰입하고, UI 전면 개편이라는 큰 성과를 만들고, 시스템을 갈아엎고, 내 능력을 증명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마치 저는 답답함을 뚫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 위기를 자기 추진력으로 돌파해 냈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다르게 봅니다. 그건 답답함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답답함을 '다른 방향으로 몰아넣은 것'이었습니다. 제 불안, 제 강박, 제 조급함, 제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전부 일로 흘려보낸 겁니다.
그건 잠깐은 유효합니다.
실제로 결과도 냅니다.
성과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금이 갑니다.
몸에, 관계에, 일상에, 사람 사이의 신뢰에.
저는 그 금을 그때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잘 버티는 거지'라고 생각했고, '이건 나 말고 더 누구도 못해'라는 식으로 제 역할을 스스로 정당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압니다. 그건 버텨낸 방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깨지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지쳐갔습니다. 어쩌면 그 ‘누군가’에는 저 자신도 포함돼 있었을지 모릅니다. 몸이 이미 닳아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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