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저는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은 내용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은 씁쓸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생각보다 책과 많이 멀어져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OECD 문해력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10대까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어릴 땐 누구나 책을 읽고, 시험을 위해 글을 해석하고,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문해력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바닥을 향해 가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니, 긴 문장을 끝까지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조금씩 녹슬어 가는 것이겠지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책 읽을 시간 어디 있어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집에 가서까지 머리 쓰고 싶진 않아요.”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비어 있는 좌석을 찾기만 해도 작은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드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집에 도착하면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낸 몸을 소파에 던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고 싶은 마음, 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손이 덜 가는 즐거움을 찾습니다. TV를 틀고, 넷플릭스에서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드라마를 재생하고, 게임을 켜서 눈앞에 있는 작은 목표를 깨뜨리며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려 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게임이라는 기쁨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세계입니다. 몹을 잡으면 레벨이 오르고, 장비를 맞추면 능력치가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고, 화면 속 캐릭터는 제가 노력한 만큼 성장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게임은 아주 친절한 숫자와 연출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속 캐릭터가 아닌,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성장하고 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책과 글쓰기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을 바꾸고 싶어서, 말 그대로 ‘생존 독서’를 했습니다. 심리학 책을 읽고, 우울과 불안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지금 느끼는 감정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처음에는 글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는 것 같은데, 마음에는 잘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읽고, 밑줄을 긋고, 인상 깊은 문장을 옮겨 적다 보니 언젠가부터 책 속 문장들이 제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문·교양 도서를 읽다 보면 삶의 태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배우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정답 대신 여러 개의 다른 관점을 건네주는 책들이 있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마음의 경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말 한마디 뒤에 숨은 마음결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나는 저렇게 행동했을까.”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나도 그렇게 말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상상해 보는 일이, 결국 나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영화를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재미있느냐, 지루하냐로 영화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이 장면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이 인물은 왜 이 지점에서 무너지는 걸까'를 함께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예쁘다', '잘 그렸다' 정도로 끝나던 그림들이
미술사와 시대 배경을 알고 난 뒤에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아, 이 그림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런 의미였겠구나.”
그 순간, 그림은 벽에 걸린 장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절박함과 기쁨이 응축된 하나의 언어가 됩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이고, 글쓰기는 '내가 아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요. 책을 읽다 보면 늘 그런 깨달음이 따라옵니다.
“내가 아는 건 정말 일부에 불과하구나.”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기분 나쁜 겸손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낮추게 만드는 겸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에는 '반감기'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기술, 지금 제가 이해하고 있는 이론, 지금 제가 옳다고 믿는 생각들이 5년 후, 10년 후에는 낡은 것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바뀌고, 업계의 트렌드가 바뀌고, 심리학 이론이나 사회적 기준조차도 시대에 따라 다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이 태도가 없으면, 사람은 금방 멈추는 것 같습니다. '나 정도면 충분히 안다'라는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 공부는 멈추고, 변화는 더디게 됩니다. 반대로,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니 계속 배우고 싶다.” 이런 마음을 붙들고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자기 계발은 종종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연봉을 올리기 위해,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의 자리를 얻기 위해. 물론 이런 이유도 충분히 중요합니다.
현실을 무시한 채 '성장만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건 책 속에 머무는 이상론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직장인의 자기 계발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고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당장 연봉을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자격증처럼 이력서에 적을 만한 화려함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의 말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삶에 대한 시야와 언어를 확장해 나가게 됩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더라도, 상사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왜 이 일이 중요한지, 어떤 방향이 더 나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제안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학벌이나 경력의 차이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려는 태도의 차이에서 오기도 합니다. 퇴근 후 책을 펼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는데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은 때로 노동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몇 페이지라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그날의 독서는 성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노트나 블로그에 옮겨 적고, 짧게라도 제 생각을 곁들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록들이 쌓여 하나의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이 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떤 직장인으로 늙어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들에 선뜻 답하지 못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꾸준히 배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운 것을 글과 말로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독서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얻은 것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거창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의 제가 조금 더 이해가 되고, 오늘의 제가 내일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값진 자기 계발이라고 조심스럽게 믿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