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부모님과 함께한 힐링여행

by 곽준원

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날, 저는 혼자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졌습니다.


“아.. 드디어 끝났다.”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정말 제 마음 한가운데에서 올라온 한숨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에서 아주 천천히, 부모님과 함께 떠난 2박 3일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3년 만에 부모님을 다시 뵌 뒤에도, 저는 여전히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완전히 끊은 상태도 아니었고, 어떤 날은 아직도 제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크게 무너져 본 사람은, 다시 쓰러지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천천히 제 마음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약 2년 동안, 저는 제가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만 부모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가족의 일정이 아니라, 제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얼굴을 뵈려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인데, 그냥 참고 자주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예전의 저라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참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더 깊은 상처를 만드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결국 제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붙들고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지오류였습니다.


이상심리학 책을 읽다 보면, 흔히 말하는 인지오류의 10가지 유형이 나옵니다. 흑백 논리, 과도한 일반화, 재앙화, 감정적 추론, 개인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그저 이론처럼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책에 적힌 문장 하나가 제 마음을 세게 찌르고 지나갔습니다.


“자신이 가진 인지오류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일상에서 ‘당연한 생각’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저는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혹시, 나도…?’라는 생각이 조용히 올라왔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안 변해.’

‘나는 평생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나는 결국 문제가 많은 사람일지도 몰라.’


이런 문장들을 떠올려보니, 이미 제 머릿속에는 다양한 인지오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그냥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작은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감정이 강하게 올라올 때, 그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을 적어보기

그 생각이 사실인지, 아니면 '나의 해석'일 뿐인지 구분해 보기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항상', '절대' 같은 단어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이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던 패턴을 찾아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이미 벅찬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을 복용하는 시간과 더불어, 이 인지오류를 수정하는 연습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마치 마음속의 오래된 코드들을 하나씩 찾아내 주석을 달고, 필요하면 고치는 작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금씩 약의 분량을 줄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의사와 충분히 상의한 끝에 완전히 중단해도 괜찮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이 약 없이도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속으로 작은 박수를 쳤습니다.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은 건 신경안정제뿐이었습니다. 이 약도 처음에는 매일 밤 10시에 어김없이 먹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결국 '잠이 잘 오지 않는 날에만 먹는 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알약이 제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 날 달력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이제 약에서 해방됐구나.”


그때 느꼈던 감정은 과장된 환희라기보다는 조용한 안도에 가까웠습니다. 긴 숨을 한 번 내쉬고, 제 마음을 향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수고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진짜 고생 많았다.'


약에서 자유로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회사를 정리하고 다음 회사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약 10일 정도의 짧은 공백 기간이 생겼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시간 동안 게임을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머리를 비우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에,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나 해보고 싶다.'


처음 떠오른 것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몇몇 지인들과의 식사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셋이서만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네.”


돌아보니 그랬습니다. 항상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서만 움직였습니다. 명절, 가족 여행, 친지들과의 모임. 하지만 저와 어머니, 아버지 셋이서만 떠나는 여행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한 번 가볼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마음이 조금 설렜습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제안이었습니다. 불안과 분노가 우선이었던 시절에는 함께 2박 3일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들이 생겼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어머니께 먼저 여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 회사 옮기기 전에 시간이 조금 생겼는데요. 엄마, 아버지랑 셋이서 2박 3일 정도 여행 가보면 어떨까요?”


어머니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얼마나 좋니. 엄마는 당연히 대찬성이야.”


그 한마디에 묵혀 있던 거리감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반응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그동안 어머니도 얼마나 이런 시간을 기다리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행지는 속초로 정했습니다. 멀지만 너무 멀지 않고,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걷기도 좋고, 조용히 앉아 이야기 나누기도 좋은 곳. 숙소를 예약하고, 근처 맛집을 검색해 보고,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저는 의외로 많이 설레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차에 모시고,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케이블카도 타고, 동해 바닷바람도 쐬면서 걸어야지.'


마치 오래 미뤄둔 숙제를 드디어 해내는 사람처럼 기대와 긴장이 묘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여행 당일, 부모님을 뵙는 얼굴에는 예전과는 다른 온도가 느껴졌습니다. 길게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서로의 입장도, 서로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에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부터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회사는 어때?”

“몸은 괜찮으냐?”


예전 같으면 아버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몸이 먼저 긴장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 정도의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편안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마음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안에서 ‘당장 도망가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오지는 않았습니다. 속초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함께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풍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차 안에서 훑어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멀리 펼쳐진 수평선과, 거기에 줄지어 떠 있는 작은 배들, 그리고 그 아래에서 함께 서 있는 세 사람.


'우리 셋이 이렇게 서 있는 건 처음이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했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바닷바람을 쐬며 천천히 걷는 동안에도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릴 적 이야기, 각자의 건강 이야기, 제가 힘들었던 시기와 지금의 상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다짐까지. 아버지는 여전히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셨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쉽게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틈틈이 저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그냥 이 시간이 마냥 좋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꽤 많은 것을 확인시켜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첫째,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아버지, 같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제 감정은 이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분노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저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부모님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다우셨지만, 한 번 무너져내린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 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습니다. 그 표현 방식이 서툴 뿐이라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회복은 결국 '함께 새 장면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장면만 쌓여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언제나 같은 사람으로만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우리는 원래 이런 관계야.”


하지만 새로운 여행, 새로운 대화, 새로운 웃음이 한 장면씩 쌓이다 보면, 그 사이로 작은 변화들이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운전대를 잡고 창밖을 잠시 흘끗 보았습니다. 바다가 점점 멀어지고, 대신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여행은 내가 회복된 증거가 아니라, 회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한 번 용기를 내 본 장면이구나.”


약에서 벗어난 날 혼자 속삭였던 '끝났다'라는 말은 지금 돌아보면 완성형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걸어가 보자'라는 조용한 다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 위에 부모님과 함께한 2박 3일의 속초 여행이 첫 번째 이정표처럼 놓여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관계는 계속해서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어떤 날은 또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다가섰다가 다시 물러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이제 압니다. 회복의 시간은 다시는 아프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파도 무너지지 않고, 서툴지만 서로에게 한 번 더 다가가 보려는 이런 장면들을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요.


속초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걷던 그 2박 3일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제 마음 한구석에서 잔잔한 파도처럼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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