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라는 말은 막연히 밝고 단단한 느낌이 나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난 조각들이 참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회복의 시간도 그랬습니다. 나아진 것 같다가도 다시 미끄러지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고요. 약을 3년 넘게 복용했다고 해서, 제 삶이 단번에 다른 얼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예전보다 훨씬 편안한 사람이 되겠지.”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느렸습니다. 명절마다 아버지를 만나면 여전히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도, 아버지가 엉뚱한 말을 꺼내면 금세 속이 끓어올랐습니다. 과거 이야기를 반복하고, 남을 평가하고, 언제나 본인이 옳다는 식의 말투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라,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칼처럼 박혔습니다.
“네가 문제야.”
“부족하면 더 해야지, 그게 왜 힘들어.”
"넌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왜 그래."
그 말들이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올 때마다, 제 안에서는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언쟁이 한 번 크게 오가고 나면, 그날 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약을 먹고도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새벽까지 천장을 바라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약을 먹으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약만으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거의 비명처럼 마음속에서 올라왔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소리가 자꾸 떨려서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엄마, 나. 이제 더 이상 집에 안 갈게요. 아버지랑 같은 자리에 앉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당분간은, 아니.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 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침묵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혹시나 화를 내시지는 않을까, 서운하다고 하시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그렇게까지 힘들면, 그러지 뭐. 엄마는 속상하지만.. 네가 너무 힘들다는데, 억지로 오라는 말은 못 하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와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서운하고 아쉬웠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은 너무 지쳐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날의 통화는 일종의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본다'라는 말은 누구를 벌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대로는 내가 버티지 못하겠다'는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 선언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되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제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조용히 속을 끓이고 계셨습니다. 누나는 못 참고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네가 알아? 그냥 좀 참으면 안 돼? 네가 한 번만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되는 거잖아.”
그 말에 저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30년 넘게 참고 살았는데도, 아직도 더 참으라고 말하는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지금 내 마음이 부서지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워.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어.”
하지만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기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가족보다 자기 마음을 먼저 챙기는 사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이 지나도, 제 마음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약을 줄일 엄두도 나지 않았고, 심리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이어갔지만 '조금 나아졌다'라고 확신을 가지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멈추지는 않았다는 것. 정신과 약은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며 조절했습니다. 혼자 마음대로 줄이거나 끊지 않고, 의사가 먼저 '이제 조금 줄여봐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도 지루했지만, 그만큼 제 마음이 서서히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3년 가까이 약을 복용했을 무렵, 의사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용량을 조금 줄여봐도 괜찮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예상보다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래도 많이 버텼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신경안정제의 강도는 점점 약해졌습니다. 예전처럼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제 감정을 조금 더 잘 알아차리고, 흔들릴 때 스스로를 달래는 법도 조금은 익혀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독서 모임도 계속 진행했고,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억누르기보다는 천천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회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주말 오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옆에서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먼저 제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괜찮겠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저는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긴장감은 있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그걸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 지금 내가 긴장하고 있구나.’
‘그래도 예전처럼 휘둘리지는 않을 거야.’
부모님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저는 길지 않게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왜 힘들었는지, 왜 더 이상 집에 갈 수 없다고 말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약도 줄이고 있고, 예전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때는 정말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예전에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화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본인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 그런 반응을 오랫동안 봐 왔기에, 그날도 비슷한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는, 조용히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미안하다.”
짧은 한마디였습니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어디까지 이해하고 계신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과의 관계가 많이 틀어졌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계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예전과는 다른 장면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마음 건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비난하고 상처 주는 말이 오간다면 그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것 같습니다.
“가족이니까 참아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말들은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상처를 덮어두는 포장지 역할만 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 건강은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심리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와의 갈등, 어머니와의 오랜 오해, 형제자매 사이에서 쌓인 감정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아프다'라는 고백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 상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에,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도요. 그래서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처럼, 버티고 버티다가 병원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가 완전히 회복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아직도 회복하는 중인 사람이라서 더 절실하게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회복하는 시간은 끝이 딱 잘려 있는 직선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는, 울퉁불퉁한 길 같습니다.
그래도 분명 예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마음이 부서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붙들고 힘겹게 하루를 버티다가 제 앞에 와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회복은 빨리 달리는 사람이 이기는 경주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자기 속도로 걸어가는 시간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길을 걸어오신 거예요.”
저 역시 아직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도 천천히, 한 걸음씩 회복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