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게 진짜 당연하냐

by 곽준원

인간의 왜곡된 사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당위적 사고'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만 해'라는 식의 당위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특히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 아닌 어느 일정한 규칙의 굴레에서 생활하도록 강요받았다. 물론 사회 규칙과 규범을 지키려고 관습을 습득하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삶의 모든 현상을 자신의 편협한 생각으로만 판단한다면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권위를 내세워 약자에게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막심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부모와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의 소통이다.


어린 시절 게임을 너무 좋아하여 오락실에 자주 방문했다. 돈이 없더라도 그냥 오락실에 잠시 방문하고 타인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때로는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을 대신하여 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많이 있다. 집에 돌아오면 늦게 귀가한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물으셨다. "조금 늦었네. 무슨 일 있었니?" 어머니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오락실은 어른들이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다녀왔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해봐야 분명 혼날게 뻔했다. 아무 말도 없이 쭈뼛거리는 나에게 어머니는 일침을 가하셨다. "아들! 오락실을 다녀온 것보다 거짓말을 하는 게 더 나빠." 어머니는 좁은 공간에서 오래 있어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나의 상태를 알아채셨다.


그 뒤로 오락실을 다녀오면 당당히 말했다. 오락실을 다녀왔노라고. 그렇게 어머니의 교육 방침으로 10여 년을 지내며 세상 규칙에 강박이 생겼다.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는 모범생으로 행동했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탈을 일삼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방법은 규칙을 잘 지키고 그들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정받으려고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내 안에 있는 기준은 나에게만 적용하면 문제가 크지 않다. 하지만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는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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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5년 차에 완벽주의 성향과 일중독으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종종 해냈다. 강한 승부욕과 집요함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주위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는 목표를 더욱 높게 잡는 계기가 되었고, 나의 성공 기준을 타인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연차에는 똑같은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 정도 연차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냐?" 나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평가는 극과 극으로 치달았다. 성향이 잘 맞고 나의 결과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너무 좋다고 했고, 기준점이 조금 다른 유관 부서 사람들은 최악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최악이라는 평가를 귀로 듣는 순간 분노했다. '내가 어떻게 일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 후로 몇 년 동안 최고라 평가했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러면서 나의 기준과 당위적 사고는 점점 더 확고해졌다. 다른 판단을 내린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나의 문제점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반성적 사고가 당위적 사고를 뚫고 나타날 수 없는 편협함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위적 사고를 알아챈 위기의 순간이 발생했다. 오랜 해외 출장으로 소통이 부재하던 아내와 말다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을 아내에게 강요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일관했다. 아내와 다툼에서 "나랑 살기 싫지?"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아내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내가 했다는 것처럼 인상을 쓰며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 "응". 충격이었다. 그냥 강하게 압박하려는 말로 던진 나의 말에 아내의 긍정은 인생이 끝나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허무한 느낌은 어느새 분노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초자아는 분노한 자아를 억눌렀고 일주일간 입을 다물고 삶을 살게 만들었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회사에서도 드러났다. 초췌하고 침울한 얼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만한 건 내 곁에 소울메이트가 한 명 있었다는 점이다. 회사 동료는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 말을 잘 들어줬다. 그리고 얼마 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오랜 세월 책을 읽지 않았었지만, 선물 해준 사람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동료와 토론하기 시작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알고만 지냈던 나에게 기찻길 딜레마는 그동안의 당위적 사고를 무참히 깨버리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여러 명을 구해야 하는 나의 편협한 판단과 신념은 누군가는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공리주의적 사고로 판단한 나의 생각은 당연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이런 사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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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적 사고는 육아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아이는 아직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고집하던 시기였다.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아빠한테 사과해야지."를 연달아 강요했다. 아이가 위축되고 부끄러운 감정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답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꼭 해야만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 상황 가운데 대답을 못할 수도 있건만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양서를 고르느라 고생을 많이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이 좋을지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책을 선정하고 구입하였다. '아이에게 읽어주면 좋아하겠지. 그리고 아이에게도 유익할 거야'라는 들뜬 마음으로 첫 번째 책을 꺼내 들고 읽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좋아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당연히 아이에게 유익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이의 반응에 화가 났다. 당연한 건 어디에도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가 잠든 저녁에 왜 분노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누구를 위해 책을 샀는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만족감을 얻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음 날, 죄책감으로 인해 너무나 힘든 하루를 보냈다. 시무룩하고 기운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아내는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당위적 사고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시기여서 천만다행이었다. 나에게 엄청난 문제가 있다고 인식했고, 아내의 도움으로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다. 심리상담사는 당위적 사고를 스스로 인식하고 고치는 건 정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사는 매일매일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회사를 쉬면서 상담을 받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그랬구나. 물론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타인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오는 당위적 사고에 고통스러울 때면 주말 시간을 이용해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다.


그와 동시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로부터 2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살길은 독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 고되게 보냈다.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당위적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다. 힘든 여정이지만 하루하루 반성의 시간을 갖고 관점의 폭을 넓혀갔다. 지금도 불쑥 튀어나오는 당위적 사고로 인해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곰곰이 반성적 사고를 해본다.





#당위적사고 #심리상담 #치유의글쓰기 #정의란무엇인가


사진출처 : <SBS 런닝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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