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1년이 지나도록 여자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이 없었다. 그저 동성친구들과 열심히 뛰어놀고 가지 말라는 오락실에서 가끔 즐겁게 놀았다. 언제나 등장하는 아이들의 성지 오락실. 초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마음에 쏙 드는 여자아이가 생겼다. 부끄부끄. 얼굴과 이름 모두 기억에는 없다. 그 당시 교실 풍경과 3월의 꽃샘추위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본다.
그 당시 마음에 들었지만 섣불리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주변의 분위기 때문이고 놀림당하기 싫은 마음이 강했다. 어떤 분위기인지는 다들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xx가 xx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라는 놀림을 위한 노래가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면 왜 그렇게 놀릴까. 나는 친구들의 놀림에 상당히 예민했다. 아마도 완벽주의 어머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타인의 피드백에 어려서부터 민감했고, 내가 무언가 행동을 잘못하면 사람들이 나를 떠날 것만 같았다.
나의 아들은 친하게 지내는 여자 친구가 있다. 다른 주변 친구들이 서로 좋아하냐고 묻는다고 했다. 하나의 놀림감이 될 수 있어서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내에게 물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랑 놀면 재미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고 알려줬다. 여러 번 당당하게 말하니 놀림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표현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내가 가해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고통이 없으니 도움받을 일도 사실 없었다고 생각한다.
새 학기 초에 여자아이는 짝꿍이 아니었다. 한 달마다 자리의 재배치로 인해 짝꿍이 되었다. 그때부터 여자아이를 괴롭혔다.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깝다. 왜 그랬을까. 내가 좋아하는 아이인데 내 마음을 들킬까 봐 그 아이에게 정말 못된 짓을 했다. 어느 날 짝꿍에게 침을 뱉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싫은 내색만 하는 아이를 보며 내 마음이 들키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자주 괴롭혔다. 이 정도는 괜찮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초등학생 나이가 되면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이 성장하는 시기다. 사회적 뇌를 키우고 타인의 행동을 보며 공감을 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나는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시기다. 그러나 나는 공감 능력이 전혀 없었고, 사회적 뇌를 키우지 못했다.
나는 그 짝꿍과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학원에는 아이들을 놀이를 위해 조그마한 미니 미끄럼틀이 있었다. 혼자 열심히 놀다가 미끄럼틀 끝에 무릎을 턱에 괴고 앉아있었다. 그때 짝꿍의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오셨다. 나의 짝꿍은 그 자신의 어머니 뒤에 서 있었다.
"네가 우리 xx의 짝꿍 xx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임으로 질문에 응답했다. 속으로는 '정말 큰일 났다. 혼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기하게도 혼나지 않았다. 강력한 체벌 대신 진심 어린 훈육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정말 현명하셨다. 긴장하며 땀을 흘리고 앉아있는 나에게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xx를 왜 괴롭히는 거니?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 그만 괴롭히면 안 될까?" 저는 그 말에 다행이라고 느끼며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혼나지 않은 안도와 함께 그 아이가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 그 아이를 절대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자리 재배치로 그 여자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우리는 보통 신체적 고통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딘가를 다치면 병원을 가고, 응급실을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없어지겠거니 한다. 관계에서 받는 심리적 고통도 신체적 고통과 같은 뇌의 부위에서 반응한다. '상처 받은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닌듯하다.
아이가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면 어른이 나서서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전에 아이가 어른에게 말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도 없다. 아이의 표현은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아이의 표현을 공감해주고 적절한 해결책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도 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양육자가 나서서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 미성숙에서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관심과 공감을 받지 못하는 미성숙한 자아는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고, 낮은 자존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방의 거절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폭력으로 표현한다.
나에게 고통받은 아이는 분명 부모와 소통이 원활한 아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모는 그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잘 들어주셨고, 현명하게 해결하셨다. 그날 나를 혼내지 않으시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알려주셔서 너무나 고맙다. 기억 속에 있는 그날의 경험은 값진 교훈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값진 교훈을 적절히 사용해서 해결했다.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한 아이가 아들의 볼을 엄청 세게 꼬집거나 때렸다. 가끔은 너무 아파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도 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알려주었다.
"하지 마!! 때리지 마. 아프단 말이야!!"
강력하게 대응해도 막무가내였고, 아내는 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물었다. 예전 어릴 시절 교훈을 떠올리며 직접 그 아이를 찾아가서 이야기하라고 알려주었다. 아내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확신할 수 없고, 자칫 잘못하면 부모 싸움으로 번질 수 있어서 신중했다.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다음날 태권도장을 방문하고 아이의 문제를 해결했다. 태권도 관장님에게도 그간 사정을 이야기했다. 태권도 관장님은 친구들 간의 장난으로만 생각하셨다. 눈여겨봐달라 부탁드리고 아내는 집으로 왔다.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많이 힘들고 아팠겠다고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품에 안겨 울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관계 속에는 괴롭힘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우리 아이가 약해서 당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나무라면 아이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런 꾸지람은 아이가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제일 고통이 심한 건 바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다. 아이를 지지해주고 위로해주어야 한다. 양육자마저 아이에게 호통으로 일관하면 아이는 기댈 곳이 없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든든한 버팀목은 언제나 양육자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