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는 멕시코의 최대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3가지 측면으로 바라본다. 생명이 다하는 육체적 죽음, 장례식 장에서 모든 사람이 떠나가는 순간의 사회적 죽음,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사라지면 맞이하는 영혼의 죽음이 그 3가지다. 영화 말미에서 영혼의 죽음을 생생히 표현한다. 코코 할머니의 기억에서 기타리스트인 고조할아버지의 추억이 사라지려는 찰나 손자는 '나를 기억해줘'라는 노래로 추억을 되살린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누군가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다수의 어른들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단순히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서일까. 그들의 눈물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담론> 19p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죽음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냐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며 꼭 해야 할 일이 존재한다. 바로 세계 인식과 자아성찰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세상과 자아는 항상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으로 시작한다. 지식을 습득하고 세상에서 경험을 토대로 타인과 관계 맺으며 공감하는 과정에 이른다. 그런 후에 지식,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 녹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세상은 어떤지 인식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 성장한다.
당연히 세계 인식도 자아의 성찰도 쉽지 않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적절한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에 적절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정보를 축적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논문이나 칼럼과 같은 글도 마찬가지다.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구분이 그냥 생긴 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태에서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물음을 던질지 생각해봐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최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기도 해야겠지만, 어떤 순간에는 70%의 자리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이 쟁취한 권력이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30%의 여유로움 속에서 개인의 능력을 새로이 발전시킨다면 다시 새로운 자리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선순환이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나름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인생을 배운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없는 상대는 없다. 배울 것이 없다는 폐쇄된 사고가 문제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배울 점을 찾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배울 것이 없다는 닫힌 사고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은 무수히 많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자세로 얻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배움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습니다. <담론> 92p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배움으로 다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 싶다. 머리에 가득 담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공감을 장착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다시 그 기운이 내 주변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차적으로 지식의 습득이다. 나를 가득 채우고 그 채움을 다시 나누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영화 <코코>에서 멕시코의 풍습으로 보면 신영복 선생님은 오래도록 '인'을 품으실 분이다.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으실 분이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자아 성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식을 거쳐 정제되어 나오는 텍스트도 어찌 보면 자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쓰는 환경을 만들면 자아 성찰을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환경을 심어주는 공동체에 있다고 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실천하지 않는다면 환경은 그리 큰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아이에게 '독서해라. 일기를 써라. 공부를 해라'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보다 부모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독서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결국 설명이 아니라 성과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책만 많이 읽고 쓴다고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직시하고,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마주하고 대처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지금껏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시도는 전혀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고 관계를 무시했다. 세상을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고 행동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누구인지, 우울감은 점점 심해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후 다양한 심리 서적을 읽고 쓰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과 함께 하며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수많은 기억을 토대로 자아를 형성한다.
우리가 추억을 불러오는 이유는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안겨 주는 위로와 정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담론> 219p
2020년 새로운 독서 모임의 주제로 한해를 시작한다. '자아를 산책하는 시간'에서는 트라우마, 감정, 성향에 대해 알아보고 서로 나누며 자아와 관계를 토대로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 한 가지 글쓰기를 해보려고 준비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읽고, 큰 울림이 있어 최초의 기억부터 최근의 기억까지 추억을 불러오는 글쓰기를 해보려 한다. 과거와 마주하고 그 추억을 객관화하는 삶은 치유, 치료 같은 단어로 모두 포장할 수 없다. 그저 새롭게 만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과거의 일을 기억하여 정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글을 쓰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만, 현실에서 실천하는 건 전혀 없었다. 과거에는 생각만 할 뿐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공상이라고 한다. 엉뚱한 공상만 하며 아이디어라 합리화하며 살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버거웠다. 나의 변화로 주변 관계에서 신뢰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 나의 관계 형성은 어떨까. 내적 동기가 충만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점이 생기고 있다. 지금보다 나은 관계가 지금까지의 내 생애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 인간관계가 좋아졌다고 느낄까. 생각해보면 무언가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이 생겼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다양성을 바라보고 인지하며 메타인지가 올라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는 능력이 조금씩 생겼다.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세상과 내면을 대면하면서 생겼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야말로 최고의 관계입니다. <담론> 284p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싶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다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우리는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받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도움을 주는 의도가 선해야 한다. 받고 싶어서 돕는 행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경중을 따지다 보면 언제나 의견차가 발생하고, 손실회피 편향이 생긴다. 그렇기에 선한 의도와 맥락이 맞지 않으면 진심을 다해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언가 바라지 않고 내가 습득하고 경험해온 수많은 통찰을 수많은 사람에게 나누며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
<담론>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국판 버전 같은 느낌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자유의지는 강력하게 작용하고 삶의 목적을 심어준다. 2년 전 외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외삼촌의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한 명도 없었다. 죽음이 인생의 완성이라는 말이 덧없어 보였다. 혼자 와서 혼자 가는 세상에서 관계를 과연 맺으며 힘들게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렇지만 사회적 죽음이 이루어지는 장례식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늘도 지식을 습득하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기억 속에 남고자 글을 써본다. "Remember Me."
참고 도서 : <담론> by 신영복
참고 영화 :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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