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녀 씀
내가 쓴 글을 거의 보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 가령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3년 전 이맘때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때 - 이따금 들춰 보긴 하지만, 뚜렷한 목적 없이는 보지 않는다. 왜? 수치스럽다. 아주 드물게, 나의 오래된 글이 꽤 그럴듯해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곧 부끄러워지므로, 결국 나의 글을 보는 것은 밑지는 장사다. 나는 남의 글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글로 밥을 벌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건 어쩐지 변태적이긴 해도 아이러니는 아니다. 내게 수치심은 남달리 발달된 감각이고,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자주 하게 되니까. 남달리 수치심이 발달되었다고 말하는 이 순간, 나 자신이 수치스럽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리는 말하고는.
자신의 글, 나아가 자기 자신의 팬인 사람들을 좋아한다. 얼마나 일상이 즐거울까. 적어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가졌으니 좋다. 팬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던가.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실실 쪼갤 수 있는 것. 내게 살아간다는 건 성취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나를 넣는 과정이다. 중2병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