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요가

삼남 씀

by 구황작물

“집에서는 오늘 일상이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적도 없잖아, 이제 언니들이 훨씬 잘 알겠네.”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건 비겁하지. 당신도 같이 하자고 했었잖아. 당신이 안 한다고 해 놓고.”


누나들과 공유한 폴더에 하루 하나 글을 써온지도 세 달이 되었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내는 내 설명을 듣고는 “재밌겠다. 나도 해야지.”라고 했고, 난 그에게 폴더 공유 권한을 주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뒤에 그가 말한 건 같이 쓴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도 혼자서 ‘하루하나씩 글을 쓰겠다’는 말이었단다. 여러 번 말한 건 아니지만 이후에도 몇 번 같이 해보자는 말에 아내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언니들하고 같이 한다는 건 불만 없는데, 어제 영민 씨 왔을 때 보니까 당신 쓴 글 이야기 하더만. 나는 알지도 못하는 이야긴데 당신들은 신나서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난 낄 수도 없고 좀 서운하더라.”


말이 나온 김에 넌지시 다시 일일일작 프로젝트 참여를 권했다.

“싫어. 당신이나 언니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어느 정도 글을 쓸 줄 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나처럼 스스로 글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글을 쓰라고 하는 건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건데.”

“나 스스로 글을 좀 쓴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을 순 있겠지만, 작가들에 비하면 형편없지. 글을 못쓰는 일반인과 잘 쓰는 일반인의 실력 차이가 서울에서 부산 거리라면, 글을 잘 쓰는 일반인과 작가의 차이는 부산에서 달까지 거리일 거야. 우리가 뭐 작가도 아니고, 나도 그냥 쓰는 거지, 자기 하고 싶은 정도 수준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때.”


“어쨌든 싫어. 언니도 지금은 운동하고 그러니까 운동 재밌는 줄 알지만, 전에는 내가 운동 얘기 신나서 하면 이해 못 하겠다고, 운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사람한테 그걸 권유하는 건 폭력적이라고 그랬었잖아. 나도 준비가 되면 또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영민이한테 보여준 건 걔랑 있던 자리에서 나온 얘길 쓴 거니까 보여준 거고. 어쨌든 글은 종종 당신한테 보내야겠네. 나름 시간 들여서 정리하고 쓰고 하는 건데, 그걸 다시 말로 풀어서 당신한테 전하는 것도 웃기니깐. 당신도 언제든 준비되면 말해줘.”


“몰라. 난 운동할 거야.”

일주일에 네 개의 글을 채우는 게 은근 압박이 있긴 하지만 나름 재밌는데. 아내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설득이 어렵다.


얼마 전 큰 누나가 영어공부와 그로 인한 자신의 변화에 대해 글을 썼다. 난 그 글에 댓글로 볼멘 푸념을 달았다. 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그 욕심에 나름 말을 빠르고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때론 정확한 표현을 위해, 때론 지루하지 않은 표현을 위해 많은 단어, 숙어, 문장형태, 뉘앙스 등을 사용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다.


근데,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항상 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말은 많이 다채롭게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크고 그걸 넘기엔 의욕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항상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면 얼마 안 가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작은 누난 그게 나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단계라고 했다.


어쩌면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우리말과 영어가 다른 것이듯, 우리말과 우리글도 다르다. 우리글로 전달하고 싶은 게 많고 크다 보면 그 능력을 갖추기 이전에 지레 포기하고 우리말로 전달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카드 사용내역 문자가 왔다. 아내가 쓰는 내 명의의 체크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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