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녀 씀
회사에서 잘렸다. 퇴근 무렵 갑자기 알았다. 내일부터 회사에 나갈 수 없게 됐다는 걸. 이유는 희미했다.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꿈이란 걸.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왜 나는 잘려야 할까. 내가 그렇게 불편했던 걸까.
이런저런 집기를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 안팎을 오갔다. 사람들이 오간다. 어느 누구도 날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고 눈길을 피한다. 눈길들이 날 미워하는 건 아니다. 저 눈빛은 어쩌면 전염병자를 피하는 눈빛과도 닮아있다. 나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다. 아니 어쩌면 폐암이고, 아니 어쩌면 에이즈 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잘못이라고, 당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몸을 낮추었다면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밤에는 잠을 잤는데.. 잠에서 깨보니 그룹 대화창에 팀원이 새벽에 이상한 말을 했다. 무슨 말인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단말마의.. 별 의미 없던 소리였다. 이때 꿈인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 대화창에 대표가 있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가 그 톡에 자상한 어른인 척, 그러나 마치 남자 친구나 학교 선배 마냥 팀원의 이야기에 답장을 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옷을 입었고 엄마에겐 비밀이었고, 옷을 다시 벗었고, 엄마는 나무로 만들어진 집의 저어기 먼 곳 주방을 분주히 오가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금요일을 끼고 낚시터에 가보자, 우리 그런 데 한 번도 안 가봤잖아” 엄마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몰래 엄마가 언제쯤 나갈지 가늠해 보았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집에 있을 수 있을까.
그녀를 생각했다. 얼마 전에 그만둔 그녀에게 연락해볼까. 답이 오지 않는다. 이런 절망엔 동지가 없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다. 오롯이 혼자 겪어내야 할 치욕이며 슬픔이다.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잠에서 깼다. 멍하니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회사에서 잘렸어야 했을까. 왜. 왜. 왜. 왜. 왜 나는 대화를 통한 타협의 길에 이르지 못하고, 또는 이끌어지지 못하고 대신 밀쳐진 것일까. 왜 나는 혼자였을까. 왜 나는 튄 것일까. 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왜 나는 내 것을 갖고 싶었을까.. 왜 나는. 왜 나는. 알아차렸어야 했을까. 알아야 했을까. 무엇을. 왜.
싫어. 싫어. 싫어. 엄마가 잠든 고요한 집에서 머릿속에서나마 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한참을 침대에 누워 무엇이 꿈인지 생각한 후였다. 어렴풋이 나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고, 지금은 새벽 4시이고, 나는 몇 시간 뒤 회사에 갈 것이고, 어쩌면 내게는 기회가 남아있을 것이고….
어쩌면 어쩌면...
끔찍한 현실이었다. 아니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