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밥은 니가 차립니다

by 구황작물

나 어릴 적 엄마는 짜증이 많았다. 등교하기 위해 삼남매 모두 분주한 시간에는 더욱 그러했다. 밥 먹으라고, 빨리 오라고 하는 목소리에는 신경질이 잔뜩 묻어났다. 하지만 옷을 입다 말고 달려가면 아무것도 차려진 게 없는 날이 허다했다. 당장 안 오면 큰일 날 것처럼 재촉하고 언성을 높이더니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 적이 있다. 그는 본인도 같은 일을 겪으며 자랐다고 했다. 우리는 시리즈로 묶을 수 있는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며 우리네 엄마들의 신경질적인 모습을 성토했다. 그때 질려서일까. 우리 부부는 격하게 싸우거나 침묵시위를 할지언정,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일은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느 주말, 남편과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잠을 잤고 나는 일찍 일어나 책을 보다가 계획에 맞게 아침을 차렸다. 대개 식사 준비는 함께 하지만 5분이라도 더 재우고 싶기도 하고 어영부영 버려지는 시간도 줄이고 싶어서 밥과 반찬, 수저까지 다 놓은 뒤에 남편을 불렀다.


그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의 여주인공이 산 위에 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던 장면을 흉내 내며 말했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봐~~~~ 아무것도 안 차려놓고~~~~ 다 차렸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우선,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여섯 가지 반찬과 밥, 수저까지 놓았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안경을 쓰지 않아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그냥 농담한 거라고.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안 웃겼잖아."


그는 예전에 우리가 나눈 대화가 생각나서 해본 말일뿐이라고, 그냥 웃기고 싶었을 뿐이라고 잔뜩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정확히 하자면, 그가 한 말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한 말과 생각들 때문이다. 나는 왜 엄마가 내 밥을 응당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food-photography-g866d137fa_1920.jpg @pixabay


엄마는 늘 지나치게 많은 노동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사 노동은 백 퍼센트 그녀 몫이었고 아빠의 사업을 돕느라 이곳저곳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집 안팎에서 바삐 움직였지만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아빠도, 삼남매도, 엄마의 일을 덜어 줄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 듯하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을 표출했다. 아침부터 내던 신경질도 그 일환이었다.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도 그녀의 고정 멘트였다. 그때마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화난 엄마가 무서웠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과연 나는 정말 몰랐을까. 지금은 나조차 믿기 어려운 말이다. 왜 내 눈에는 엄마의 노동이 보이지 않았을까. 휴일이면 다들 누워 있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몸을 놀려 밥상을 차려내고 청소를 해야 했던 그녀의 노동이 말이다. 내 몸을 끝없이 순환하며 나를 살리고 있지만 뭔가 잘못되어야 겨우 한번 인식하는 피와 같았을까.


가사 노동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아빠는 가부장제가 주는 약간의 고단함과 풍성한 혜택을 동시에 누렸다. 그리고 어린 나 역시 그 시스템에 가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낳은, 그녀를 압박하는 징그러운 가해자로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엄마는 왜 짜증을 부리다 못해 나를 샌드백으로 만들었으면서도, 내 손에 빗자루와 수세미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모호한 푸념 대신 구체적인 가사노동의 방법과 횟수를 알려주고 한번 더 웃어주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을까. 엄마의 헌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을 택하려고 한다. 자녀는 없지만 내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집안의 색채는 가부장제와 멀어지게 만들고 싶다.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로서, 남편보다 더 많은 가사노동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때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일 뿐이다.


다만 조금 더 많은 일을 하는 것과 누군가를 봉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제 밥은 스스로 차려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 기회를 박탈하지 않겠다. 앞으로 식사 준비는 무조건 같이 할 일이다. 부지불식간에 그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그 누구도 일방의 노동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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