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남편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나 역시 좋아하는 편이지만 같은 작품을 두 번 이상 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는 봤던 것을 또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는 드라마도 좋아한다. 상황에 따라 정주행, 역주행 가리지 않고 즐긴다. 뿐인가. 나는 챙겨 보는 웹툰이 하나도 없는데 그는 요일까지 챙겨가며 본다.
책은 좀처럼 읽지 않는 그이지만 가만 보면 누구보다 '이야기'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든, 무너지든,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 가끔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 줄거리를 말하면 딴청 한 번 피우는 일 없이 몰입해서 듣고, 장난 삼아 중간에 멈추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계속 말해달라는 거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 남자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우리는 세상 쓸모없고 또 쓸모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매일 끊어지지 않는 대화를 나눈다. 유년 시절 경험한 시시콜콜한 일부터, '만약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가상의 상황과 그때 내릴 선택까지도, 우리의 대화 소재가 된다.
그럴수록 신비감이 사라지긴커녕 오히려 끝나지 않은 소설을 보는 것만 같다. 괜히 '케이블 가이'라며 놀릴 때도 있지만 그 많은 작품들이 그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내게 그는 양파보다 더한, 까도 까도 새로운 속살이 나오는 신비로운 존재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발화하고 또 경청하는 이 남자에게, 나는 매일 반하고 만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이야기에 흠뻑 빠져 사는 남자를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가 뭐래도 TV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 커피를 마시는 이웃도 있고, 자주 찾아가는 자식들도 있지만, 그에게 TV보다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아빠는 밥을 먹다가도 TV 앞으로 간다. 다 먹고 일어나시라고 잔소리를 할라 치면, 밥은 국물에 말아서 호로록.
혼자 사는 노인이니 외로워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면, 천만의 말씀. 아빠는 원래 그랬다. 다섯 식구가 다 함께 살 때도 아빠의 눈은 TV에서 떠나지 않았다. TV 때문에 밥이 다 차려져도 늦게 오기도 했고, 식사가 길어지기도 했고, 엄마의 역정을 듣기도 했다. 그건 곧 싸움으로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이들의 싸움은 어린 내게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평화가 싫은 걸까. 밥상 앞에서 딴청을 피우는 아빠도 못마땅했지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엄마도 야속했다. 당시 두 손 모아 올린 내 기도는 오직 가족의 평화만을 기원했으므로.
식사 시간도 역동적으로 만들었던 내 부모님은 이십 이년 간 함께 하다가 헤어졌다. 다 함께 살며 좋았던 순간도 분명 있지만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는 잔소리가 많았고 아빠는 그걸 잘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일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아빠는 여러 차례의 불륜을 저질렀다. '바람'이라고 가볍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의 반복되는 불륜은 엄마뿐 아니라, 삼 남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뒤틀린 남녀관을 가지기도 했고 남자를 우습게 보기도 했으며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했다. 오직 아빠 때문은 아니겠으나, 아빠 때문이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엄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방 선반을 맨손으로 헤집어 온 접시와 그릇들을 와장창 깨버리기도 했고, 차에 타 쏜살 같이 사라지는 아빠를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백 미터 넘게 쫓은 적도 있다. 나는 그 광경을 3층 베란다에서 지켜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모든 순간이 공포였다.
이혼도 자주 거론되었고 싸움은 치열했다. 줄줄이 낳은 자식들은 '니가'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아빠는 자식은 자고로 여자가 키우는 법이라 했고, 엄마는 경제력 있는 사람이 키우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나는 한참 뒤, 흔히 말하는 '양육권 다툼'이 서로 키우겠다고 싸우는 것이란 것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싸움이 있은 뒤에도, 머지않아 엄마는 밥을 차렸다.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과 눈물이 실렸을 밥상을 받은 뒤에도 아빠가 태연하게 TV를 보았던 것은 기억한다. 그 넓적한 화면을 넋 놓고 바라보며 밥은 뜨는 둥 마는 둥. 곧 평화는 끝났다. 지금의 나는 그 모습을 견딜 수 없던 엄마를 이해한다.
그러니까 아빠는 젊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TV에 빠져 지냈고, 그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딸과 사위가 곁에 있는데도 드라마를 보며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놀랄 것 없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말이 툭 튀어나간다.
"주인공이 죽기라도 하나 봐?"
나의 조롱 섞인 말을 아빠는 눈치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줄거리를 죽 읊기 시작한다. 나는 무슨 남자가 이렇게 드라마를 좋아하냐고, 그렇게나 한가하시냐고, 온갖 혐오적인 말들을 쏟아내려다 멈칫하고 만다. 드라마 좋아하는 것이 뭐가 어때서? 이건 많이 듣던 대사 아닌가. 그 옛날 엄마에게서.
이들 부부의 삶은 과거가 되었다. 현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겠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해석만이 남았을 뿐. 험난했던 결혼생활의 당사자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자녀들이 지난날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굳이 내가 엄마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아빠를 내 나름의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빠를 보는 엄마의 시선, 엄마를 보는 아빠의 시선을 거두고 나만의 시각을 가져도 될 거라 믿는다. 나는 그들의 자녀일 뿐, 분신이 아니니까.
아빠가 신명 나게 말하는 내용을 듣자 하니, 결말까지 다 아는 눈치다. 딩동댕. 내 예상이 맞았다. 아빠는 봤던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울고 또 울고 있다. TV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감정을 쏟아낼 대상이 있으니.
TV 보는 아빠의 모습을 편견 없이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것이 콩알만큼이라도 내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