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앞에서 해맑게 웃고 싶습니다
일 년에 두 번 혈액검사를 한다. 바늘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따끔하지만 순식간이라 아플 틈이 없다. 살면서 총 세 번의 입원을 했고 그로부터 얻은 수확이다. 병으로 아픈 것보다는 치료와 예방을 위해 맞는 주사가 훨씬 덜 아프다. 고열에 시달리던 때는 뭐라도 놔달라 애원했을 정도였으니.
어릴 때는 달랐다. 주사가 몹시 무서웠다.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주사 처방을 받았고 나는 제발 맞히지 말아 달라고 모두를 향해 애원과 통곡을 했다. 당연히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주사실로 이동하는 사이, 나는 쏜살 같이 줄행랑을 쳤다. 엄마에게 혼날 것이라는 계산은 하지 못했다. 본능이 다리를 움직였다고 할까.
눈물 바람을 하고 계단까지 오긴 했는데, 중간에서 멈췄다. 거기가 어딘지 몰랐던 것이다. 다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어서 망설이던 찰나, 재빠르게 쫓아온 엄마가 머리채를 낚아챘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계단참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두드려 맞았고 다시 병원으로 끌려 들어가 주사를 맞았다.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가 분명하다.
병원을 나와서도 엉엉 울었다. 그만 울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우는 내 걸음을 재촉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 살겠어."
그런 엄마가 요즘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녀와 내 삶의 접점, 그 쓰린 기억들을 파헤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수치를 안겨주는 딸일까.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성인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미 형성된 성격구조가 파괴된다. 그러나 아동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성격이 단지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성격을 만들어낸다."
나는 아동학대의 피해자이다. 한국의 '효' 관념은 내게도 깊이 뿌리내려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부정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아동학대를 접할 때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와 무관하다고 여겼다. 물고문을 당하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고, 머리채를 잡힌 채 몇 미터씩 끌려 다녔으면서도.
나를 잘 모르는 이의 냉정한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그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면 무엇이 아동학대겠느냐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웃음까지 나왔다. 아, 내가 아동학대를 당한 거였구나!
과거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벗어날 수 없는 자기혐오와 나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느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와 우울을 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던 적의 정체가 선명해졌으니 내가 이기는 싸움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해질 수 있을 듯했다. 희망이 보였다.
그즈음, 페미니즘을 접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아빠가 가부장제의 수혜자였으며 엄마가 그 체제의 피해자였다는 현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아빠는 여러 차례의 부정을 저질러도 용서되었으며 자식을 남 보듯 해도 무뚝뚝한 성정으로 퉁쳐졌고 가사노동을 일절 하지 않아도 양해되었다. 엄마가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의 책임은 오직 돈을 벌어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 똑바로 하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었다. 어쨌든 주수입원은 그였으므로. 엄마는 집을 반들반들 윤나게 가꾸는 한편, 또 다른 노동들로 가계를 불려 나갔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질 때면 아빠는 엄마를 닦달했다. 당신이 필시 살림을 방만하게 운영한 것이라고.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의 엄마. 그녀가 살아온 고난의 세월을 떠올리면 두통이 몰려온다. 나는 그녀를 온 마음을 다해 연민하고 존경한다.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그녀 덕분에 나는 삶이 경이롭다는 것을 배운다. 같은 일을 겪고 내가 그녀처럼 웃을 수 있을까. 웃음은커녕, 과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었다. 엄마가 내게 포악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 대한 연민과 나의 고통 사이에서 헤맸다. 내 진의를 의심하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아직도 성장하지 못했다고, 남 탓이나 하고 싶냐고, 엄마를 향한 연민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몰아세웠다. 마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지금은 생각한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과거의 엄마와 나를 그 자리에 두고 현재의 엄마와 내가 될 수 있다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당사자들로서 말이다.
나는 늙고 힘없는 엄마에게 사과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모든 글들은 그녀와 무관한 일이다. 내 과거를 질릴 만큼 돌아보고 떠들어댄 후 그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싶을 뿐.
그리하여 내 목표는 빙그레X년이다. 마음껏 말할 것이다. 그녀가 한 일과 내게 미친 영향들에 대해. 그리고 투명하게 웃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