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당신, 포장하지 않겠습니다
이십여 년 전 이혼해 혼자가 된 아빠는 집을 엉망으로 하고 산다.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한숨이 나오고 냉장고를 열면 그야말로 통곡을 하고 싶어진다. 나를 반기는 건 쉰 음식, 썩어 물이 된 채소, 곰팡이로 뒤덮여 원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물질들이다. 뿐인가.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만난 적도 있다.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남자가 뭘 할 수 있겠냐."
아빠 말에 따르면, 남자이기 때문에 냉장고에 음식이 썩어나며, 썩은 것을 제때 처리하기 힘들고, 밭에는 수확 시기를 놓친 작물이 그대로 버려지고, 행여 잘 영근 열매들을 발견해도 장에 내다 팔 수 없으며, 삼시세끼 밥을 차려먹는 것도 어렵고, 먹은 것을 치우는 것도 힘들다. 이건 다 여자의 일이니까.
그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은 판에 박은 여성혐오지만, 아빠는 그 자신이 남성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은 영 모르는 듯하다. 자기 자신을 먹이고 자기 삶의 오물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히 자라지 않는 젖먹이 아이라니, 징그러울 뿐이다.
삶은 너저분하다. 변기는 더러워지고 하수구에는 물때가 끼고 부주의한 틈을 비집고 구린내가 진동한다. 그 사실을 나이 든 아빠가 몸소 알려주고 있다. 삶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끊임없이 단속하지 않으면, 금세 너저분한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을.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워지곤 했다. 나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친구들의 부모님은 한 치의 오점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분이셨을까.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장점들만 마음에 담았을까. 혹은 피가 물보다 진해 객관성이 흐려졌을까.
어떤 것이든 부러웠다. 나도 내 부모를 추앙한다면, 이상화한다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매하고 훌륭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나의 부모라고. 나는 그런 분들의 귀한 딸이라고 말이다. 때로는 그렇게 나마저 속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눈에 보이는 진실조차 은폐하려 했다는 것을. 그렇게 내 뿌리조차 포장하고 싶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진실 그대로를 바라보고 싶다. 나는 내 부모의 합이고, 분명 그들보다 못한 존재이며, 조금은 나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사실이다.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부모님 흠을 들추기엔 낯이 뜨거웠다. 흉을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만 굳이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나. 그러나 무시로 떠오르는 과거는 내 발목을 붙들고 머릿속을 장악하곤 했다. 세 치 혀와 경솔한 손가락이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말리느라 진이 빠졌다. 그러고 나면 아무 말도, 글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꺼내보고 곱씹어보았다. 누군가는 놀라겠지만, 감출만큼 창피할 것도 없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곳에 겹겹이 감춰져 내 안에서 곪아가는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싶어졌다. 당신들을, 그 자녀인 나를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새 마음이 되어 모두를 단정하게 사랑하고 싶다.
지난 주말, 아빠의 김치 냉장고를 정리했다. 총 세 개의 냉장고가 있지만 부족해서 더 사야겠다고 하던 아빠인데, 빈 통을 꺼내고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처리하고 보니 남은 것은 딱 한 통이었다. 그마저도 김치냉장고에 맞지 않는 작은 반찬통 크기. 이래도 냉장고가 더 필요하냐는 말에 아빠는 헛웃음만 흘렸다.
설거지할 김치통이 산을 이루었다. 오롯이 내 몫이다. 아빠는 옆에 와서 물었다. 락스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본인이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위생관념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빠 덕분에, 나는 내 주변을 정돈하며 살아간다. 내 삶의 칙칙한 면을 결코 전시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천 마디 잔소리로도 고쳐지지 않아 혼돈 속에서 살던 내가, 엄마보다 더 깔끔해져버렸다. 아빠가 몸소 가르쳐 준 것을 잊지 않겠다. 당신의 과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 나름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