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의존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열세 살, 초경을 하고 한참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부끄럽다기보다 말할 이유가 없었다. 내 스스로 처리해야 할 다소 번거로운 일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영 어색해 그만두었던 기억이 난다.
몇 해 전 뜻하지 않은 유산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격렬한 고통을 겪었다. 의사는 급격한 호르몬 분비로 인해 산통을 겪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일 역시 식구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지나간 일,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에 나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로 이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선천적인 기질도 한몫할 테고. 그러므로 내 모든 것이 부모로 인한 것은 아니나 나는 그들의 양육 방식 또한 이와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행동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배웠다. 내가 파자마를 입고 학교에 가도,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 울며 집에 돌아와도, 엄마 아빠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배움이자 교훈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물론 아기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 나도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무탈하게 자랐을 것이다. 다만 나는 부모를 든든한 언덕이나 여차하면 안길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느껴본 적은 없다. 피치 못해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때면 사랑이나 고마움보다 비굴함과 수치심을 느꼈다.
대학 입시도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한참 뒤에서야 문/이과를 결정하는 것도 부모와 상의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을 알게 돼 놀라기도 했다. 나 역시 누군가와 의논하고 때로 기대고 싶었던 적이 무수히 많았으나 그 상대로 부모님을 떠올린 적은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토록 독립을 강조했던 부모님이 달라지고 있다. 엄마는 틈만 나면 세상만사에 대하여 서운함을 내비친다. 이사를 할 때 돕지 않았다고, 자신의 사업에 무관심하다고, 당신의 삶 자체에 무심하다고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나는 이삿날 찾아갔으며 엄마의 사업용 블로그 운영을 도왔고 다단계 물건을 샀고 만날 때마다 오직 그녀의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듣고 있건만, 턱 없이 부족한 것이다.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더 크다. 당신은 내게 인간은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빠 역시 만만치 않다. 홀로 시골에 사는 그는 내가 내려갈 때마다 너저분한 집과 더러운 냉장고를 내보이며 말한다.
"남자가 뭘 할 수 있겠니."
그는 가엾은 홀아비의 표정을 짓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당당함을 엿본다. 휴일을 맞아 내려온 딸이 한순간도 쉬지 못한 채 냉장고를 청소하고 요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농사일을 도와도, 그는 면구스러워하지 않는다. 당신이 내게 가르친 것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자립이었는데.
심지어 아빠는 내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십여 년 전 귀향한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 채 농사를 시작해 동네 주민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나는 아빠가 이웃에게 신세 지는 것을 보고 접할 때마다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 동네는 원래 이웃끼리 돕는 일이 없었어. 품앗이 같은 것도 안 했다니까. 다들 각자 알아서 했지. 그런데 내가 온 뒤부터 서로 돕고 사는 거야.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신세 지고 또 갚으러 가고 하다 보니 상부상조하게 된 거지."
도움 받고 신세 졌다는 말을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몇 초쯤 지난 뒤에서야 제발 뻔뻔해지지 마시라고, 그 신세 꼭 다 갚으시라고 말했던 것 같다. 신세 진 당사자는 떳떳하기만 한데 나는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요즘, 생각이 바뀌고 있다. 과연 인간이 생애 단 한순간이라도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 있을까.
대학 시절, 나는 용돈을 받는 친구들이 가끔씩 부러웠지만 순간일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내 스스로 벌어서 생활하는 나 자신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 자신이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 사실을 말할 때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부모의 집에서 기거했으며 학비의 절반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감추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취직을 한 뒤에도 무수히 많은 날 엄마의 반찬을 먹었고 언니와 동생의 존재 자체에 크게 의지했다. 사는 게 팍팍할 때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을 깨닫지 못한 나는 자립적이며 경우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거나 신세를 지게 되면 악착 같이 갚으려 했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으로 보답하기 위해 애썼다. 계산적이고 눈곱만큼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얄미웠지만 그럴 때 나는 그 누구보다 이해타산적이었다.
보답을 하고 나면 내 할 도리를 다했다 여기며 받은 것을 쉽게 잊었다. 이런 정산은 보람되긴커녕 진 빠지고 재미없는 일이었기에 차츰 선물도,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싫어졌다.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비뚤어진 환상은 나를 점점 더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받는 자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는 사람이 생색을 내는 것은 꼴사납지만 받는 사람이 마냥 당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것은 미성숙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받는 사람 역시 존재 자체만으로 제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사실을 중년에 접어들고 이런저런 노화를 몸소 겪으면서야 깨닫다니, 나도 참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끝내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위안해 본다. 부모의 부쩍 커진 의존성을 조금 더 고운 눈으로 바라볼 테니. 언젠가 내가 타인에게 의지해야 할 날에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비굴함을 느끼지 않을 테니.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늙고 도움을 받는다. 경제적인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초라함을 느껴야 할까? 언제 또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오늘의 나는, 누구나 당당하게 의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간이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