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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Jul 14. 2023

실업급여 받으러 '웃으며' 갔습니다, 잘못됐나요?

ⓒ 연합뉴스


방금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웹 서핑을 하지도 않았고 타자를 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누가 본다면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이 벌건 대낮에 책을 읽든, 청소를 하든 할 것이지, 가만히 있는 꼴이 한심하다고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이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었다. 공들여 말해도 내 뜻을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 과정마저 없으면 어떻게 내 생각을 표현한단 말인가.


이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는 평생직장을 꿈꿨다. 그러니 놀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성실하게 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신중해지곤 했다. 주변 지인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휴식을 원할 때도 있었다. 컴퓨터도 버퍼링이 필요하고 기계도 적당히 돌렸으면 쉬게 해야 하거늘, 인간이라고 다를 리 없다. 쉼 없이 일하면 결국 그 화가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입원으로 체득했다. 실업자가 된 김에 휴식을 취했던 날들이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휴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돌보는 행위이기에 가치 있지만 생산성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라 해도, 또 다른 생산을 위한 활동으로서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필이면 그들이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라니,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당혹스런 발언


ⓒ 연합뉴스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실업급여 제도 개선 민당정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퇴직하면 퇴사처리가 되기 전에 실업급여 신청하러 센터를 방문합니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방문을 하세요.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은 드무세요. 그런 분들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 정말 장기적으로 갑자기. 그런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그리고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요. 그리고 자기 돈으로 내가 일했을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생각했을 때 '이거는 아니지 않느냐'."


내가 경험한 실업은 늘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으므로 한 번도 마냥 반갑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고 예견된 일이었다 해도 왠지 모를 패배감과 불안,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어차피 결정된 것,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짐짓 밝고 명랑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모습이 양심 없이 돈이나 타내려는 것으로 보였을까.


실업자에게 기대하는 표정이 있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외에도 요목조목 문제적이다.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과 장기간 근무한 '그런 남자분들'이라는 말로 세대와 성별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또한 실업급여의 폐해로 언급된 해외여행과 선글라스, 옷은 과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에겐 허락될 수 없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며 고용보험료를 납부했기 때문에 얻게 된 돈과 시간이다. 그간 번 돈과 시간,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젊은 세대를 부정수급자로 매도하지 말라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5년간 3번 이상 받는 반복 수급 사례와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한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형적인 고용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은 아닌지 진정 궁금하다. 24번의 실업급여를 부정수급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24번의 기묘한 실업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저출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소중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이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은 아닐까.


부디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젊은 세대를 실업급여 부정수급이나 노리는 이들로 매도하지 말고 이들의 고용 현실을 심도 깊게 살피는 정책이 나오길 바라본다.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대감을 갖는 내가 미련한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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