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쉬지 못하고... 대형마트 휴일 의무휴업 폐지가 불편한 이유
전통시장은 불편하다. 주차장이 있지만 대체로 좁아 차를 가져갈 수 없고 양손 무겁게 장을 보고 나면 손아귀가 저릿해지기 일쑤다. 튼튼하고 커다란 시장바구니를 챙기고 다닌 뒤부터 손아귀 고통은 피했지만 이제 어깨가 고생이다. 조만간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마련해야 하나 싶다.
그럼에도 나는 가급적 전통시장을 이용한다. 차를 가져갈 순 없으니 주차에 시간을 뺏길 리도 없고 마트보다 가까이 있으니 쇼핑에 총 소요되는 시간이 반 이하로 줄어든다. 아무리 느긋하게 구경한다 한들 한계가 있어서 마트를 종종걸음으로 둘러보는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다.
짐을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약점이지만 그래서 내 소비를 제한할 수 있기도 하다. 무나 양배추라도 한꺼번에 집어드는 날에는 3만 원을 넘기지 않아도 묵직한 풍요를 만끽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3만 원으로 풍성한 장을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전통시장에서는 가능하다. 이 와중에 배달을 해주는 곳도 생겼으니 반가울 뿐. 전통시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이따금 마트로 향한다. 공산품과 주류 때문이다. 공산품은 온라인 쇼핑으로도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때마다 무더기로 생기는 비닐과 상자를 처리하는 것도 번거롭고 환경을 생각해도 찜찜하다. 주류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천상 직접 가야 하는데 가격을 생각하면 편의점보다는 마트가 딱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살 품목을 꼼꼼하게 정해두고 가도 마트에서는 그것만 사 오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다. 오늘만 세일이라는 물건, 1+1이라는 물건도 퍽 유혹적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온통 내게 필요했던 것만 같다.
어쩌면 조명부터 동선, 음악까지 다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홀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단돈 3만 원으로 마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풍요가 아닌, 결핍감 아닐까. 그러니 나는 아무리 마트가 쾌적하고 편안해도 전통시장으로 향한다.
전통시장이라는 신세계, 이렇게 끝일까
한동안 이 전통시장의 맛을 주변 지인들과 공유하며 즐거웠다. 그 시작은 마트 주말 휴무 때문이었다. 주중엔 너무 바빠 장 볼 틈이 없다는 한 친구는, 처음엔 울며 겨자 먹기로 전통시장으로 향했다가 신세계를 맛봤다고 했다. 주중 내내 함께 한 인공조명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이 통하는 시장 안을 돌아다니니 주말의 휴식이 몇 배 더 진하게 느껴졌다고. 저렴해진 부식비 역시 쏠쏠한 행복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도 곧 끝날 모양인가 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22일 공휴일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원칙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23일, 서울시의회 김지향 서울시의원은 '의무휴업일을 공휴일 중에 지정한다’는 문구를 뺀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로써 사실상 서울의 모든 자치구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링크)
전통시장을 주로 이용하는 나는 직접적인 변화는 바로 체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덜컥 겁이 나곤 한다. 실제로 집 근처의 한 시장은 거의 명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가게 자리는 남아 있지만 열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다. 내가 다니는 곳까지 이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또한 나는 한 명의 노동자로서 마트 노동자가 겪어야 할 변화가 무척 걱정스럽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일요일 휴무마저 빼앗기게 되면 과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한때 동대문 의류 쇼핑몰에서 일했던 나는 당시 오직 월요일에만 쉴 수 있었다. 사정이 있으면 양해를 구해 더 쉬기도 했지만 평일에 한정되었다. 주말에는 손님이 몰려 체력이 쉽게 고갈되었고 일요일 근무를 마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령 체력이 남았다 해도 마땅히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점점 내가 속했던 사회와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 동료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사회를 만들고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했고 나 역시 나중으로 갈수록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회에도 속해 있었고 그 끈 역시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주말 휴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큰 몫을 차지했다.
어렵게 쟁취한 '휴일'이 사라지지 않기를
주말 휴무는 건강권의 문제이자 사회적 성원권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을 박탈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라지만 과연 그것 때문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이것이 전통시장과 마트 노동자들을 동시에 위협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주말에도 근무하는 수많은 직군을 거론하며 반박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마트 노동자의 휴일을 뺏을 합당한 이유는 아니라고 믿는다.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야지, 어렵게 쟁취한 올바른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어떤 지자체도 잘못된 쪽으로 향하지 않길 바란다. 동시에, 함께 상기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노동자라는 것을.
(오마이뉴스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