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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May 14. 2024

그녀의 초대

나는 또 게임을 깔았다 

게임을 유난히 못한다. 오락실게임부터 카드게임, 보드게임, 컴퓨터게임,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까지 몽땅 포함해서 더럽게 못한다. 잘하고 싶은 의사도 없으니 별 상관없다. 하지만 세상은 같이 사는 법. 덕분에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어릴 때 함께 브루마블 게임을 하던 친구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고 내가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건물 팔고 땅 팔아도 안 돼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재밌었는데 그녀가 상처를 받을 줄이야.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다시는 어디 가서 게임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게임을 알려주던 친구가 화를 냈다. 머리도 좋은 애가 왜 이렇게 못 하냐는 것이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그 애의 오해였지만 딱히 눈에 띌 만큼 나쁜 것 같진 않은데도 나는 게임에서만큼은 배움도 더뎠다. 친구들은 나의 늘지 않는 실력과 엉뚱한 질문에 가슴을 쳤다. 왜 이걸 몰라! 왜 그게 궁금해! 쓰러진 캐릭터가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이 게임에 정답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등은 궁금해하면 안 되는 듯했다.


@pixabay


십여 년 전 외국 여행을 갔다가 카지노에 갔다. 친구들과 나는 미련 없이 즐길 수 있는 정도의 금액만 가져가서 재밌게 놀다가 1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든 없든 가차 없이 나오기로 했다. 그날, 내 운이 좋았다. 제일 단순해 보이는 게임을 골라 몇 판 했는데 수십 배(어쩌면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주머니는 두둑한 칩으로 묵직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획한 1시간이 지나서 나오려고 하는데 친구 하나가 나를 강하게 제지했다. 이런 법이 어딨냐는 것이었다. 지금 너에게 대운이 든 거라고, 더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고 친구는 그러면 그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내가 내켜하지 않자 그녀는 화를 냈다. 어차피 너도 거저 번 돈 아니냐고.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아깝냐고. 


길게 실랑이하기 싫어 돈을 빌려줬고 그녀는 5분 만에 몽땅 잃었다. 그날 우리는 제대로 배웠다. 도박장에서 인생 박살 내는 사람들이 그리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는 잠시 돌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인정했다. 게임은 무서웠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게임을 못하고 별 흥미도 없다. 문제는 내가 더럽게 성실하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일을 기획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맹꽁이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을 일 년 내내 사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웬만해선 질리지도 않는다. 


나는 그대로지만 게임은 진화했다. 더욱더 중독성 강하게. 오락실이나 피시방은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스마트폰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 그래도 게임을 일부러 찾는 일은 없지만 친구가 초대장을 보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호기심이 동한다. 


그렇게 나는 그 옛날 애니팡을, 프렌즈팝을 깔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누구도 그걸 하지 않을 때까지 그 게임을 했다. 나 홀로 외롭게 팡.팡.팡. 물론 식음을 전폐하거나 할 일을 제쳐두고 게임만 하진 않았지만 시간을 꽤나 낭비한 것은 사실이다. 화장실에서만 해야지 하다가 볼일 끝났는데도 앉아 있다든가. 밥 먹는 동안만 해야지 하며 밥을 천천히 먹는다든가. 


게임을 한다고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눈만 몹시도 피로해졌으니 이런 낭비가 따로 없다. 몇 년 전 프렌즈팝을 지우며 그것을 알려준 친구에게 말했다. 나 이제야 지운다고. 친구는 기겁했다. 요즘도 그거 하는 사람이 있었냐고. 지금도 업데이트는 되고 있냐고. 


나는 다시는 나에게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사뭇 진지하게 부탁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하도록 성실한 사람이라고. 친구는 엄숙하게 알았다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어코 나를 또 초대했고 나는 잠시 움찔했고... 앱을 깔고야 말았다. 한참을 즐기다 나한테 이러기냐고 묻자 친구는 말했다. 

"게임 이용권이 너무 필요해서 그만...." 


그녀는 천진하게 웃는데 나는 조금 섭섭해졌다. 


나도 안다. 남 핑계 대지 못해 안달 난 자의 추접한 변명이라는 것을. 내 곧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내 시간을 죽이는 자, 양파게임! 이제 쇼핑몰 앱에서 게임을 만들다니, 영악한지고! 


그나저나 친구는 알까. 다름 아닌 그녀가 나와 브루마블 게임을 하다가 울어버린 심성 고운 소녀였다는 것을. 나에게 어디 가서 게임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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