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편과 외출을 했다가 배가 고픈데도 꾹 참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딱 알맞게 잘 익은 열무김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들어오자마자 손만 급하게 씻고 커다란 양푼을 꺼냈다. 보리 가득 넣은 잡곡밥에 열무김치, 얇게 채썬 오이, 새송이볶음,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고 야무지게 비볐다. 군침을 흘리며 이제 막 한 숟가락 크게 맛보려는 찰나,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 이걸 미안해서 어떡하지."
집주인 딸이 차를 타고 나가다가 우리 차를 살짝 스쳤는데 번호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미안해하며 나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나는 이제 막 밥을 먹으려던 참이니 먹고 내려가 보겠다고, 걱정말고 들어가시라고 했다. 금방까지 탐스럽게 비벼진 열무비빔밥에 흥분의 도가니였는데 약간은 김이 새버렸다. 우리는 조금 급하게 먹고 서둘러 내려갔다.
집주인과 그의 딸은 어딜 가지도 않고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밥을 먹지 않고 내려오는 거였는데. 한결 같이 경우 바른 집주인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계속 미안하다고 했고 우리는 괜찮다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마음 쓰지 마시라고.
번호판은 우그러진 채 떨어져 있었고 번호판이 있어야 하는 자리 주위로 약간의 흠집이 있었다. 흠집이 또렷하긴 했으나 대단히 크거나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번호판은 다시 달아야겠지만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닌 듯했다. 보험이 아닌 현금으로 처리하겠다고, 수리 후 비용을 알려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월요일이 되어 카센터에 갔다. 견적을 받아 보니 무려 70만원. 내 예상보다 큰 숫자에 당혹스러웠다. 센터 기사님은 범퍼 밑부분이 깨져서 교체해야 하고 이 차는 범퍼를 뜯으면 휀더(?)의 일부가 깨지기 때문에 그 또한 같이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운전을 할수록 차는 흉포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약하고 재생불가능한 존재임을 실감한다.
수리를 보류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그 금액에 놀란 만큼 집주인도 놀라진 않을까. 차는 그리 크게 손상되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경제적 상황이 다르다 해도 7만원도 아니고 70만원이니, 우습게 여길 수 없었다. 선량한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심란해하자 남편은 우리 돈으로 수리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선택지는 셋이 되었다. 하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으니 견적대로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것. 둘, 우리 돈으로 수리하는 것. 셋, 수리하지 않고 번호판만 잘 펴서 붙이는 것.
세번째 대안은 영 불안해서 금방 제외시켰다. 긁힌 것이야 좀 못 생겨진 것이니 크게 개의치 않지만 깨진 것을 수리하지 않는 것은 무서웠다. 주행하다가 와장창 연쇄적으로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과 공포쪽으로만 상상력이 발달한 나는 그 상태로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도 놀라 자지러질 게 뻔했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아니라 친구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내 답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불필요한 고민하지 마. 사고 낸 사람이 수습하는 게 당연한 거고 정의로운 거야. 괜한 오지랖은 넣어 둬.'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고민에 어이가 없었다. 주차선 안에 얌전히 주차된 차에 사고가 났는데, 피해자가 돈을 낸다고? 이건 또 무슨 사고회로인가.
나는 집주인에게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택했다. 견적서를 첨부하며 '센터에 맡겼는데 이 금액이 나왔고 예상보다 높게 나와서 마음이 좋지 않다, 혹시 아는 센터가 있으면 알려달라, 그리로 가보겠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 뒤 집주인은 내게 마음 쓰지 말라고, 아무래도 미안한데 내가 그러면 더 미안해진다고 답을 해왔다. 아울러 견적 나온대로 수리하고 계좌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럼 우리 서로 미안해하지 말기로 하자며, 난데없이 연인들의 클리셰 같은 말로 화답하며 일은 일단락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고민한 걸까.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선한 의지가 아니라 강박처럼 나를 지배하는지도 모른다. 내 행동이 혹시 염치 없는 것은 아닐까, 비상식적인 것은 아닐까 몇번씩 자문하다가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역으로, 그런 내가 싫어서 불필요하리만큼 까칠하게 굴고는 내가 더 놀라기도 한다.
나는 나를 믿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남도 믿어야 한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이들처럼 악의보다 선의가 많은, 평범한 인간임을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하겠지만 작은 실수는 너그러이 양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아가 타인을 믿어야 한다. 나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타인을 믿을 수 있겠나.
돈 이야기가 마냥 어렵다는 것도 내 고민의 큰 부분이었다. 그 난처함을 피하고자 종종 손해를 택했고 이따금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한두 번은 넘어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뒤늦게 분개하곤 했는데 어쩌면 나의 소심함과 비겁함이 선한 이들의 탐욕을 부채질한 것은 아니었을까. 타인이 지옥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지옥을 만들었단 생각에 부끄러움이 엄습한다.
이럴 때 커플 중 한 명이라도 냉철해야 하건만.심란해하는 내게 두 번째 선택지를 제안한 것은 남편이었다. 다름 아닌 우리 돈으로 수리하는 그 선택지 말이다. 착한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장 터지는 일임을 또 한 번 실감하며 죄 없는 남편을 향해 이를 갈아본다. 우린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