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황작물 Oct 02. 2024

공정함을 찾아서

미쳐간 여인들을 떠올리는 아침

엄마 생신을 맞아 언니가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와 엄마의 오랜 남자친구, 언니, 나와 남편, 이렇게 다섯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엄마와 많은 여행을 다니진 않았지만 몇 번쯤은 했고 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긴장이 되었다. 언니에게도 저어되는 마음을 표현했다. 언니 역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모처럼 기분 좋게 떠나 보자며 숙소를 예약하고 모든 준비를 도맡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떠나게 되었다.


여행에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렇게 기대 없이 떠난 여행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호텔의 상태와 서비스에 언니의 기분이 약간 상할 뻔했지만 후발대로 온 엄마와 아저씨 덕분에 그 또한 눈 녹듯 사라졌다. 엄마는 연신 "외국보다 더 좋다! 외국을 갈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외국도 외국 나름이겠으나 그것이 그녀 최고의 칭찬이었으니 언니도 나도 행복할 뿐이었다.


우리는 밥을 사 먹을 계획이었지만 엄마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식사를 준비해 왔다. 엄마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좀 준비해 올 걸 그랬다고 하자 엄마는 "부족해? 모자라서 그래?"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엄마 혼자 고생한 것이 미안해서 그렇다고 했다. 생일상을 스스로 준비하면 어떡하냐고.


식사를 마칠 때쯤 엄마가 물었다. "케이크는 언제 잘라?" 모두 빵 터졌다. 역시 엄마였다. 엄마는 언니에게도 물었다고 한다. 케이크는 샀냐고, 안 샀으면 본인이 사 오겠다고. 우리는 또 밖으로 나가 호텔의 야경을 즐겼고 숙소에 다시 돌아와 케이크를 자르고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신 축하합니다."


다음 날도 호텔의 부대시설을 즐겼다. 엄마는 지난밤과는 또 다른 풍경에 연신 감탄했다. 기분 좋게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나는 아침 먹은 것이 체하는 바람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볕이 생각보다 뜨거워 다 함께 인근의 숲으로 이동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을 숲은 환상적이었다.


숲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엄마는 "밥 먹고 또 어디 갈까?" 물었다. 그녀는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도 그 말을 일축했다. "엄마 왜 그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언니도 "그래, 내일 일하려면 이제 다들 들어가서 쉬어야지." 하며 내 말에 동조했다. 1박 2일의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엄마가 내내 즐거워했으므로 우리 자매의 기쁨도 크기만 했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로 제법 괜찮은 여행이었지만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남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 모르게 뚱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나는 모를 수 없었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조금 더 놀아도 괜찮았지만 엄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와 헤어지고 둘이 되자마자 그는 툴툴대기 시작했다. 운전하기 싫어 죽겠고 졸려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평소 둘이 다닐 때는 내가 운전하지만 난이도 높은 시골길이라 그가 운전한 터였다. 얼른 자리를 바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 도착해 주차할 때도 그는 시비를 걸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조언이지만 "이러니까 계속 운전을 못하지"라고 하는 것은 시비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말할 때가 되면 말할 것이고 결국 그는 본심을 드러냈다. 식구들과 두 끼 이상은 같이 먹는 거 너무 힘들다고, 다신 이런 일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덤덤한 척 이번 여행이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고 했고 그는 괴로웠다고 했다. 즐거웠던 여행은 그가 슬슬 망치고 있었다.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요즘 핫한 흑백요리사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그도 그런 듯했다. 하지만 그는 또 말을 꺼냈다. 본인은 어머니며, 아버지며, 심지어 아저씨까지, 이렇게 우리 집 대소사에 많이 참여하는데 너무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그의 기분을 내 나름으로 이해한다. 나는 시댁에 가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어머니였다. 그녀는 개와 열여덟과 성기를 들먹거리며 나에게 상욕을 퍼부었다. 십여 개가 넘던, 지금도 생각하면 손발이 바들바들 떨리는 그 끔찍한 음성 메시지를 지우지 말고 영구 보존해야 했을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인 듯하다.


그 한 번으로 시댁에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러고도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사과했다. 그러나 내게 다시 상처를 주었고 또 사과했다. 그녀는 술만 마시면 전화해 한풀이를 하기도 했다. 남편은 평생 반복되어 온 그녀의 행동이 지긋지긋하다 했다.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술을 매일 마셔야만 알코올중독이 아니라고. 술 마실 때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같은 실수를 하는데 또 마시는 것도 중독이라고.


그는 그 말을 어머니께 하며 술 문제를 좀 해결하시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격노했고 당신의 딸에게도 그 말을 전했다. 이번에는 시누이가 합세해 거친 욕을 함께 했다. 그 말을 한 것은 언니가 분명하다고, 어디서 감히 그따위 말을 하냐고, 다시는 보지 말자며, 그녀는 오빠가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내가 그녀의 술 문제를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말에 동의하고 전한 것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만을 타깃으로 삼았다. 역시 가정교육이 돼먹지 못한 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편은 그들의 연락을 쉬이 받아들였고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반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버텨낼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명절마다 남편 혼자 본가에 가게 되었다. 그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던 언젠가부터 그는 같이 가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시누이도 내가 함께 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기이한 일이다. 그는 나를 한없이 사랑한다는데 왜 나의 상처나 입장보다 그들의 바람이 중요한 것일까. 또한 우리는 한 번도 가까웠던 적 없는 사이인데 왜 혼인으로 엮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나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집착해야 하는 걸까.


나는 물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어머니 말씀에 한 마디도 못하고 가만있거나 울기만 했잖아. 만약에, 혹시 만약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뭐가 더 낫겠어? 어머니가 해서는 안 되는 말씀을 하시면 전처럼 질질 짜는 거? 아님 따박따박 반격하는 거?"


그는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냥 가지 말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그는 무엇이 끔찍하다는 것일까. 나는 그가 나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절대 참지 말고 한 마디도 지지 말라고 하거나, 본인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하거나.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명절에 혼자 집에 있을 때마다 한순간도 편한 적 없이 가시방석이었지만, 시댁에서 유일한 이방인이 되어 몸 둘 바를 모른 채 종종거리고 있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지났다.


어느 날 그는 또 같이 가자고 하며 말했다.

"너 이러다 엄마 죽으면 장례식장에는 올 수 있겠냐?"


돌아가시는 날까지 안 보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지만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멀뚱멀뚱 물었다.

"내가 왜 못 가? 어머니가 안 계시는데? 나도 상주 아니야?"


그는 말했다.

"이렇게 얼굴 한번 안 비추더니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한다고?"

"그러니까 그게 왜 안 된다는 건데? 당신이 싫어서? 아니면 시누이가 싫어해서? 그 얘기야?"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그는 어물어물 말을 넘겼고 나는 깨달았다. 이건 어머니의 언어로구나. 이 남자는 어머니의 말을 전하고 있구나.


어머니의 잘못된 언사로 사달이 날 때마다 그는 나보다 더 분노했다. 하지만 이내 잊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그 이야길 할 거야?" 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나는 그녀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미 발생한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이미 쓰여진 우리의 역사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왜 이들은 모르는 것일까.


나는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그 정서에 공감한다.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하지만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서 그녀를 알기 전의 백지상태로 돌아가 그녀 앞에 설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그럴 용기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할 능력도 없다. 나는 배우가 아닌데. 왜 이걸 남편은 모르는 것일까.


이 모든 생각으로 터질 것 같음에도, 그는 처가와 많은 시간 함께 하는데 나는 시댁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 역시 불편하게 여겨져서, 천천히 다시 마음을 열어보기 위해 제안하기도 했다. 그가 조카들을 만날 때 나도 함께 가겠다고. 그는 대번에 거절했다. 

"거길 니가 왜 껴. 그게 더 웃겨."


중학생, 고등학생인 시조카들은 남편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내가 그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정글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시댁에서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인데, 그로서는 그 생각이 가당치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애들도 불편하기만 하고 엄마나 시누이가 보기에도 웃길 거라고 했다. 그럴 수도. 나는 웃기는 여자인가 보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나는 불편한 여행을 버텼다는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와 달리, 그는 내게 고맙거나 미안한 게 없는 것일까. 내가 누구도 얼굴 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자신도 처가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협박이라면 실패다. 그가 원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도대체 왜 죄 없는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아가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공정함이라면, 얼마든지. 




다음 날 오후 늦게, 그는 지난 밤 말실수를 했다며 사과했다. 마치 약속 시간에 조금 늦기라도 한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는 이번에도 모르는 것일까. 시댁 일을 빌미로 내게 시비 걸며 상처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런 일은 이미 여러 번 반복되었고 나는 번번이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한다. 나는 사과를 당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같이 일어나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고 같이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것이 빠져나갔다. 우리는 평소처럼 깔깔대고 웃거나 막춤을 추지 않으며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어쩌면 평범한, 남편을 남의 편이라 말하며 웃기지 않은 농담을 하는 부부가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까.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지쳤다는 것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 겨우 나을 만하면 건드리고 들쑤시는 내 상처를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혼이 나갈 것 같다. 그의 입장을 헤아리며 이해하고 연민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오늘도 그와 함께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날씨만큼이나 싸늘해진 우리 부부 사이를 느끼며 문득 얼굴 모를 여인들을 떠올렸다. 남부러울 게 없는 듯한 삶을 살았던, 그러나 서서히 미쳐갔던 여인들을.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날개를 숨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