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 나의 시네마 천국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작은 비디오 가게를 했다.
가게를 열기 전에 우리 가족은 각자 가게 이름을 하나씩 지어와 가장 좋은 이름을 고르기로 했다. 가장 어린 나는 그저 ‘넓고 밝은 가게였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아는 영어 단어 중 가장 멋져 보이던 “월드”를 내놓았다. 그때 내 나이 열두 살,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그 시절 내가 알고 있던 비디오 가게는 작고 어둡고, 먼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유리창에는 영화 포스터가 빽빽하게 붙어 안이 잘 보이지 않았고, 포스터 속 원색적인 이미지와 자극적인 문구들은 어린 마음에 많이 낯설고 무섭기도 했다.
가끔은 또래 사춘기 소년들이 포스터 앞에서 낄낄거리며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런 분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 집 비디오 가게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는 당돌하게 주장했다.
내부는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밝아야 하고, 장르별로 구분된 공간 위엔 그 장르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사진을 액자로 걸어두어야 한다고.
이를테면, 홍콩영화 코너 벽에는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주윤발의 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엄마, 아빠, 언니는 어떤 이름을 냈을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지은 ‘월드 비디오’만이, 나의 오래된 시네마 천국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작은 영화관 같은 어린 시절은 시작되었다.
우리 가게는 곧 동네에서 유명해졌다.
크지는 않았지만 밝고 정돈돼 있었고, 무엇보다 사장님 부부의 영화 추천 실력이 소문났기 때문이다.
“아무 영화나 추천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들어오는 손님들이 늘 많았다.
아빠는 그 사람의 취향을 기억해 두었다가 꼭 맞는 영화를 골라드렸고,
추천받은 영화는 늘 ‘정말 잘 봤다’는 감사 인사로 돌아오곤 했다.
시간이 지나 시대 흐름에 따라 치킨집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치킨 튀김보다는 비디오테이프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내게 이동진 영화평론가 같은 존재였다.
우리 비디오 가게에서 항상 틀어져 있던 명작들, 영화 잡지를 끼고 살던 언니,
그리고 유재하 음악이 집 안을 채우던 그 시절의 풍경은 자연스레 내 안에 감수성을 쌓아주었다.
아마 그래서일까.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문득 삶의 장면들이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음악은 여전히 나만의 사운드트랙이 되어 일상의 소리들을 따라다닌다.
그 시절의 여름처럼, 빛나고 선명하게.
예술을 향한 감각을 찾아 헤매는 이 습관은
이제는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을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엔 각자만의 작은 극장이 있을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문을 열면 오래된 영화의 빛이 새어 나오고,
어딘가에서 익숙한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그런 추억의 공간이.
나의 월드비디오는 그 작은 극장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