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내 인생의 화양연화

다시 나로 돌아와 글을 쓰다.

by 소을

서른이 되기 전에 노선을 정해야만 해


유년 시절의 이야기들을 훌쩍 넘어, 결혼을 앞두었던 이십 대 중후반의 어느 날.
그 시절의 분위기가 그러했기도 하고, 나는 늘 앞서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었기에
‘서른이 되기 전, 인생의 노선을 정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을 스스로 떠안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글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안정된 직장에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 살아갈 것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아니, 욕심을 낼 용기도 능력도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이것도 핑계였는지 모른다.
글 쓰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았고, 내 마음속엔 늘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났을 뿐이다.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던 꿈


나는 창의적인 글로 주목받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논설문 쓰기 대회처럼 논지가 분명한 글에서 더 강점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내 글로 누군가를 웃게 하거나 울게 하고 싶은 마음—
그 조용하지만 단단한 열망이 늘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노잼 인간’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반면 내 친구는 말만 하면 주변에서 폭죽처럼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게 몹시 부러웠다.

그런 내가 졸업 후, 선배들과의 추억을 시트콤 형식으로 정리해

당시 핫했던 ‘아이 러브 스쿨’ 게시판에 연재했을 때였다.
그제야 묻혀 있던 나의 유머 감각이 빛을 발했고,
나는 처음으로 글로 공감을 얻는 기쁨을 맛 보았다.

아, 글로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빛을 켤 수 있구나—
그때 알았다.



다시 돌아온, 내 인생의 화양연화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은 인생이 건네준 작은 파편들이었을 뿐이다.
직장 생활 사이로 시나리오 학원을 다니며 길을 찾으려 했지만
그 길은 끝내 나를 향해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고,
나는 아이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물론 그 시간은 따뜻했고 소중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라곤 아이들의 사진 아래 달아두던 짧은 육아일기가 전부였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은 희미해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감정들만이 계절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니,
거의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 긴 계절 뒤에 숨어 있던 ‘나’의 시절을
하나 둘 꺼내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깊고 단단한 순간들이 숨어 있으니까.

내 가족의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 삶을 오래도록 관통해 온 영화와 음악의 기억들—

나는 아직도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내 나이보다 조금 이른 감성의 영화들을 함께 봐주던 부모님,
나보다 앞선 감성의 노래 카세트테이프와 시간을 채워주던 언니.

그 모든 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런 나는 이제

그 영화들과 노래들을 다시 꺼내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나만의 작은 보물 같은 이야기로 풀어보려 한다.


다음 이야기는 어떤 영화로 시작할까.

아마도 비디오 가게 딸내미였던 내게 가장 익숙했던,
그 시절의 홍콩 영화가 아닐까.

한 시대를 풍미하던 홍콩만의 향기.
누아르와 멜로, 배우이자 가수였던 만능 스타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홍콩 4대 천왕.

그 시절 비디오 가게를 드나들던 사람이라면

홍콩영화의 추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는 앞으로 내가 풀어낼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윤곽을 드러내겠지.

내 안에 남아 있던 이야기들이 다음 계절을 기다리듯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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